[취재플러스] 관세청 국감 앞두고 갑자기 왜…초유의 마약 수사 두고 잡음
지난 10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마약 유통 조직원을 검거했다는 자료를 냈습니다. 최소 74㎏에 달하는 순수 필로폰을 밀반입한 조직원의 검거 소식이었습니다. 단일 유통 적발 사례로는 국내에서 역대 두 번째 규모여서 더 주목받았습니다. 단순 마약 밀반입으로 생각했던 사건은, 붙잡힌 마약 조직원들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진술'로 확대됩니다. 필로폰을 옷에 숨겨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조직원들이 경찰 조사에서 "한국 세관 직원들이 먼저 알아보고, 길을 잘 안내해줄 것"이라고 들었다는 겁니다. 진술 내용이 사실이라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는 건데, 경찰은 세관 직원과 마약 조직원의 유착 여부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 갑작스레 찾아와 "이첩" 언급…브리핑서 '세관' 결국 빠져
영등포경찰서는 세관 직원이 연루된 정황을 서울경찰청 등 윗선에 보고합니다. 그런데 관세청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인 10월 초, 내부 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서울경찰청 소속 고위공무원인 A 경무관이 갑자기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왔고, 바로 다음 날 서울청이 해당 사건을 이첩해, 즉 가져가서 직접 수사를 하겠다고 전한 겁니다.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0월 5일 A 경무관은 이 수사를 이끄는 영등포경찰서 B 과장에게 전화를 겁니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는데, A 경무관과는 '전 영등포서장'이라는 이력과 함께 '세관'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직전에 인천국제공항단장을 지냈던 A 경무관, "본인이 수사했다면 타 기관에 부담되지 않도록 예우 차원에서 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B 과장은 수사와 무관한 고위급의 전화를 받고 일종의 압력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전화가 온 바로 다음 날, 사건 이첩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서울청은 "지휘부 차원에서 사건 이첩 결정이 떨어졌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10월 10일 기자단에 예고한 브리핑을 위해 준비한 보도자료에서는 수사 밀행성을 이유로 '세관 직원 연루' 부분을 삭제하기로 결정됐습니다.
◇ 이첩 결국 무산…"수사 위축에 모욕감까지"
이첩이 결정됐다는 말을 듣고 주말을 보낸 수사팀은 일단 10일 오전 기자단 브리핑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서울청으로부터 "팀원들 서명을 받아 의견서를 제출해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수사를 이첩하지 않고 영등포서에서 계속 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문에 담아 보내라는 뜻밖의 내용이었습니다.
사건 이첩을 결정했다는 말을 번복한 것.
다음날 영등포서 수사팀 15명의 이름과 함께 서명이 전달됐고, 그날 밤 '사건을 이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공문이 메신저 사진 파일로 전달됐습니다. 서명을 받아 사건을 다시 '돌려받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A 경무관의 전화, 서울청의 이첩 통보, 이후 무산까지. 의도가 어찌 됐건 수사팀 내부에선 이례적 '수사 프로토콜'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B 과장은 "처음 이첩 얘기를 꺼냈을 때 '흐르는 대로 따르라'는 윗선 언급도 있었다고 들었다"며 주장했습니다. 윗선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처럼 느꼈다는 겁니다.
굳이 서명받으면서까지 돌려주겠다고 한 이유는 뭘까. B 과장은 "우리 사건을 받을 곳이 없으니 다시 돌려줄 명분을 쌓으려고 서명을 요구한 것 아니겠냐"며 "경무관 전화로 위축된 상황에 모욕감까지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 경찰들 "합리적 의심 갈 수밖에…이례적인 이첩 검토"
경찰에게 사건 이첩은 수사의 투명성과 직결됩니다. 수사팀의 권한과 성과가 옮겨지는 등 민감한 문제인데요.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등 합당한 사유가 있으면 규정에 따라 서울청이 이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사 경험이 많은 경찰관들은 경무관의 전화와 서울청의 사건 이첩 검토 시기가 겹친 데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수사가 제법 진행이 됐는데 이첩을 논의하는 건 의아하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서울청의 이첩 통보 이후 다시 서명을 제출받아 사건을 돌려줬다고 하는 부분은 더욱 석연치 않습니다. 청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서울 일선의 한 경정은 "요즘 사건 이첩은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인데 서명까지 받았다는 것도 이상하다"며 진위 확인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청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사건 이첩을 검토했고, 기존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냥 두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첩 결정이 내려진 적도 없다고 했는데요. 이례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유사한 대규모 마약 압수 사건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이나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도 비슷하게 이첩됐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중요한 수사 앞두고 경찰끼리 사실관계 다툼
다만 일부 내용에 대해선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이첩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고 통보했거나 서명받아 제출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누군가 한 명은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셈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떻든 관세청 국감이 진행되기 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수사와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의심의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본청 차원에서 진상 확인하고 있으며 좀 지켜봐야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거로 생각된다" 말했습니다.
마약 밀수입을 감시해야 할 직원이 직접 길을 내준 게 사실이라면 발본색원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사는 사실상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각종 압수수색을 해봐도 직원들에게서 마땅히 잡히는 증거가 없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수사가 맥없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들려오는 지금, 경찰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잡음을 보고 있는 범죄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요.
김유아 기자
ku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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