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도 여전한 클래스의 폴, 역시 포인트 갓

김종수 2023. 11. 2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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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 존재하는 다섯개 포지션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리기는 정말 어렵다. 일단 포인트가드는 이른바 신장에서의 메리트가 없는 포지션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직 존슨, 오스카 로버트슨, 엔퍼니 하더웨이 등 극히 일부의 장신 1번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190cm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최소한의 사이즈가 요구되는 다른 포지션과 달리 그래도 작은 선수가 도전하고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인 이유가 크다. 아무리 평균 신장이 높아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190cm안팎의 장신자는 여전히 귀하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눈에 확 띌만한 사이즈다. 하지만 농구에서는 다르다.


그 정도 사이즈로는 크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맡을 수 있는 포지션도 한정되어 있다. 하물며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 사실상 포인트가드가 유일한 답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간혹 단신 슈팅가드나 스윙맨도 존재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극소수다. 기본적인 운동능력에서 괴물급이어야 가능하다.


때문에 1번 포지션에서 주전 혹은 그 이상을 원한다면 신장의 메리트는 포기한 채 정말 순수하게 농구를 잘해야 한다. 보통 잘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일반 성인 남성 중 키 좀 크다는 이들이 180cm~190cm에 몰려있는지라 경쟁률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역대 레전드중 포인트가드가 유독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포인트가드의 교과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몇 있다. 지금은 전설이 된 존 스탁턴(61‧ 185cm)이 대표적이다. 그는 데뷔 당시만 해도 큰 관심은 받지 못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곤자가대학을 나온 키 작은 백인 가드로, 스탁턴 본인조차도 NBA진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유럽리그를 알아봤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지만 유타 재즈는 198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6순위로 그를 깜짝 지명한다. 어찌보면 도박에 가까웠고 그로인해 지명 당시 유타 팬들의 야유가 쏟아져나왔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지명은 대성공이었다. 스탁턴은 2003년까지 무려 1504경기를 뛰며 역대 최다 어시스트(15,806개), 역대 최다스틸(3,265개)을 기록하며 유타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영구결번은 물론 이거니와 홈구장에 자신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어시스트왕 9회, 스틸왕 2회, 퍼스트팀 2회,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5회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엄청난 운동능력을 자랑하는 흑인들의 주 무대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와 빼어난 기량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철강왕, 기록의 사나이로 이름을 떨침으로서 비슷한 입장에 놓였던 많은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됐다.


20세기에 스탁턴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크리스 폴(38‧183cm)의 이름을 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리딩, 볼 핸들링, 볼 운반, 볼 간수 그리고 득점과 수비까지 공수 전반에 걸쳐 흠잡을데없는 야전사령관의 최신판 교과서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포인트 갓(Point God)’이라는 애칭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폴은 스탁턴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탁월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우승이나 정규시즌 MVP같은 큼직한 타이틀이 없다.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에 더해 득점능력도 좋으며 수비까지 강하다. 부상과 노쇠화로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한창 때의 폴은 스탁턴에게 부족했던 운동능력까지 탁월했다. 다만 아쉽게도 커리어 내내 그를 괴롭혀온 크고 작은 부상은 철강왕 스탁턴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었다.


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드리블이다. 익히 잘 알려진 일화이기는 하지만 작고한 그의 할아버지는 폴이 어릴 때부터 오른손을 묶어놓고 식사를 하게 했다. 왼손의 어색함을 줄여 양손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지간하면 반발할만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진심을 알고있었던 폴은 그러한 방식을 순순히 따랐다.


외려 한술 더 떠 개인훈련 때도 스스로 오른손을 묶고 드리블 연습을 하기도 했다. 타고난 재능에 지독한 노력이 더해지자 어느 순간부터 양손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드리블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정상급 볼 핸들링은 그가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최고의 무기가 되어주었다.

 


사이즈가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려면 드리블은 필수다. 마음대로 공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내외곽을 오가며 원하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리그 최고의 드리블 실력이 받쳐주었기에 폴은 안정적으로 볼을 운반하고 배급하는 것은 물론 순간적으로 수비수를 벗겨내듯 따돌리는 움직임을 자유로이 가져가는게 가능했다는 평가다.


폴이 화려하지 않은 선수는 아니지만 크게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화려함은 적고 무리하지 않으며 기본에 충실한 유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비치는 것에서 폴의 위엄이 더욱 느껴진다. 야구경기를 보면 뛰어난 수비력으로 극찬받는 선수 중 이른바 '설렁설렁과'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말 수비를 잘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경기를 보면 화려한 다이빙캐치도 없고 공이 날아온다 싶으면 몇걸음 가지 않고 멈춰서서 가볍게 받아내기 일쑤다. 그냥 일반적인 선수들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비 정도로 보여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더 어렵고 대단하다. 특유의 예측능력과 위치선정을 통해 미리 해당 자리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지라 어려운 것도 쉽게 잡아버린다. 구태여 허둥대면서 도박성 다이빙캐치를 시도할 일이 적은 것이다.


폴 또한 그렇다. 워낙 기본기가 탄탄하고 순간 판단력이 좋은지라 사실은 어려운 플레이인데도 쉽게 보일 뿐이다. 어지간한 포인트가드 같으면 우당탕탕 할 상황도 차분하고 부드럽게 풀어 버린다. 토탈패키치 야전사령관이라는 평가답게 플레이 하나에도 여러가지 테크닉과 속임동작을 쉴새없이 섞어 수비진을 어지럽게 하는데 능숙하다.


드리블, 패스, 슈팅, 돌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철저한 계산이 들어간 페이크가 마치 대전 게임속 캐릭터의 움직임처럼 반복되는지라 매치업 상대는 조그만 움직임이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폴은 간단한 시선 처리만으로도 눈앞의 수비수를 속이는데 능하다. 레이업슛을 시도하려 림으로 달려드는 과정에서 그의 눈이 외곽에 있는 동료를 힐끔 쳐다보면 수비수는 순간적으로 움찔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패스 마스터 폴이기 때문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타이밍은 어긋나게 되고 상대적으로 폴의 공격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거기에 안정적인 미드레인지 점퍼의 존재는 수비수의 선택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폴이 가속을 내기 시작하면 무엇을 염두에 두고 막아야 할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 모든 과정들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사이즈가 크거나 화려함을 즐기는 가드같은 경우 거기에 맞춰 수비수도 크게 속는 인상을 준다. 반면 폴은 평범하게 플레이하는 것 같은데 수비수가 움찔거리며 길을 내주는 느낌이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페이크가 섞이는 경우가 많아 뭐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이른바 허허실실이 돋보인다.


현재 폴은 한때의 라이벌 스테판 커리가 간판스타로 있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올 시즌부터 합류해서 뛰고 있다. 전성기가 한창 꺾인 나이인지라 한창 때의 움직임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골든스테이트는 그의 클래스를 믿었다. 아니라 다를까 폴은 핵심 멤버들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팀에서 특유의 노련미를 앞세워 노익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일 그는 평균 7.6득점, 8어시스트(전체 7위), 3.7리바운드, 1.6스틸의 성적을 올리고 있었는데 23일 현재는 9.8득점, 7.7어시스트(전체 7위), 3.9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 중이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가운데 소폭 상승한 득점이 눈에 띄는데 세부스탯을 들여다보면 더욱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당시만해도 폴은 잘하고는 있지만 특정 부분에서 우려를 받았다. 3점슛 성공률이 7.7%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트랜드에서 포인트가드가 그렇다는 것은 심각성을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폴이 상대 팀의 새깅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물론 팀은 물론 대다수 팬들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의아할 정도로 외곽슛 성공률이 고꾸라지기는 했지만 거의 바닥까지 친 이상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선수들도 있지만 폴의 멘탈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실제로 현재는 32.8%까지 올라간 상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은 폴같은 선수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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