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는 성장”…韓 야구 세대교체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류중일 감독 [이한주의 APBC 뒷 이야기]

이한주 MK스포츠 기자(dl22386502@maekyung.com) 2023. 11.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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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이 더 꽉 차야 하는데…”

지난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2023 예선 2차전 일본전을 앞둔 류중일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이었다. 적지에서 열리는 일전인데다, 일본 팬들이 많이 입장해 열광적인 응원을 벌이면 선수들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지만, 사령탑은 오히려 더 큰 악조건 속에서 이들이 성장하길 바랐다.

24세 이하(1999년 1월 1일 이후 출생) 또는 프로 입단 3년 차 이내(2021년 이후 입단) 선수(와일드카드 3장·1994년 1월 1일 이후 출생 선수 출전 가능)들만 나설 수 있는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류중일 감독은 누구보다 선수들의 성장에 진심이었다. 그는 당장의 성적보다는 성장을 강조하며 이번 APBC에서 한국 야구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류중일 감독은 아시안게임과 APBC에서 대표팀의 성장을 이끌었다. 사진=천정환 기자
APBC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사진=KBO 제공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APBC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진=KBO 제공
한국 야구는 최근 분명한 위기에 몰려 있었다.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17 WBC에서 연달아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노메달(4위)의 수모를 겪었다.

이후 절치부심한 한국 야구는 올해 초 진행된 2023 WBC에서 부활을 꿈꿨으나, 일본에 4-13으로 대패하는 등 고전 끝에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쓰라린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자 한국 야구는 대표팀 세대교체라는 방책으로 이를 타개하고자 했다. 시작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였으며, 지휘봉은 류중일 감독에게 돌아갔다.

자체 연령 제한으로 인해 역대 최약체 대표팀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았지만, 류중일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수들의 성장은 물론 성적까지 필요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우승을 견인했다. 조별리그에서 대만에 0-4로 일격을 당하긴 했으나, 이들이 역대급 전력을 구성했고, 당시 선발로 나섰던 린위민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마이너 팀에서 공을 들여 키우고 있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결승전에서는 린위민을 공략해 2-0으로 설욕에 성공했다.

아시안게임 기간 만났던 류중일 감독. 사진=이한주 기자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류중일 감독. 사진=김영구 기자
이어진 APBC에서도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선수들의 성장을 도왔다. 특히 그는 APBC 만큼은 성적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두기를 바랐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문동주(한화 이글스)를 불펜으로 투입시키지 않은 것이 좋은 예다.

지난 2022시즌 프로에 데뷔한 문동주는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가 트레이드 마크인 우완투수다. 올해까지 36경기(147.1이닝)에서 9승 11패 2홀드 평균자책점 4.09를 올렸으며, 호주와의 APBC 예선 1차전에서는 5.2이닝 5피안타 1피홈런 4사사구 5탈삼진 2실점 쾌투로 한국의 3-2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다.

초대이자 직전 대회였던 APBC 2017에서 준우승을 거뒀던 한국은 만약 매서운 구위를 자랑하는 문동주가 불펜에 가세할 시 첫 우승에 한 발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령탑은 단호했다. 경기 전 만났던 류중일 감독은 이와 관련된 질문을 듣자 “말도 안 된다”며 손사레를 친 뒤 “이 대회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이 젊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이 목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성적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선수들을 기용하고 싶은데, 늘 성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류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일본 선수들이 마운드에 올라와 어떤 구종으로 스트라이크 및 삼진을 잡는 지 그런 패턴을 봤으면 좋겠다. 일본 투수들은 전체적으로 제구가 좋다. 패스트볼과 변화구도 좋고 떨어지는 볼도 좋다”며 “우리 선수들이 이런 것을 보고 배우면 굉장한 공부가 된다. 이런 대회를 많이 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됐으면 좋겠다. 한국 야구가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긴 했으나, 이런 사령탑의 전폭적인 믿음 아래 대표팀 선수들은 도쿄에서 매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먼저 각각 예선 호주전과 일본전, 대만전, 결승 일본전에 각각 선발투수로 출격한 문동주, 이의리(KIA 타이거즈·6이닝 6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3탈삼진 2실점), 원태인(삼성 라이온즈·5이닝 3피안타 1피홈런 5탈삼진 1실점), 곽빈(두산 베어스·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6탈삼진 1실점)은 국제무대 선발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불펜진의 활약도 눈부셨다. 김영규(NC 다이노스), 최승용(두산), 최준용(롯데 자이언츠), 최지민, 정해영(이상 KIA 타이거즈) 등이 구축한 한국 계투진은 이번 대회에서 15이닝 3실점 2자책점을 합작하며 짠물투를 선보였다.

장타자 보강이라는 분명한 숙제가 있지만, 야수들의 성장도 돋보였다. ‘NC 듀오’ 김주원과 김형준은 한층 날카로워진 타격과 안정적인 수비로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 및 포수로 발돋움했고, 노시환(한화)도 많은 견제에도 불구하고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중심타자 역할을 잘 해냈다. 여기에 캡틴 김혜성(키움 히어로즈)도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선수들이 부쩍 성장하자 류중일 감독은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또 하나의 과제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겨울 기간 동안 몸 관리를 충실히 할 것.

일본과의 결승전이 3-4 패배로 끝난 뒤 류 감독은 “그동안 일본 야구와 한국 야구의 격차가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보니 조금만 더 열심히 하고 기본만 지킨다면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과거 미야자키에서 진행된 소프트뱅크 (호크스) 캠프를 간 적이 있다. 2월 1일 연습을 하는데 투수들이 140km 이상을 던지고 타자들은 홈런을 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왔다. 일본은 날씨가 좋아서 일년 내내 야구할 수 있는데, 우리는 추우니 그런 훈련은 안되겠지만 12월과 1월에 쉬지말고 그 시기에 각각 할 수 있는 훈련을 해서 몸을 만들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APBC를 통해 밝은 미래를 본 한국 야구는 이제 전임 감독제를 비롯해 다른 대표팀과의 평가전 등을 추진하며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시안게임과 APBC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류중일 감독은 전임 감독 유력 1순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APBC에서 성장과 함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박수를 받은 대표팀. 사진=KBO 제공
APBC에 나섰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사진=이한주 기자
도쿄(일본)=이한주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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