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통은 치료 아닌 응답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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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잘 잊어요. 그래서 사회가, 공동체가 응답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은데, 그렇다고 환멸을 느끼거나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통은 본래 그런 면이 있으니까. 인연이 닿아 저에게도 고통의 이야기가 전해졌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차별과 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이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탐구해 온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44)가 자신의 공부를 되돌아본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동아시아)를 22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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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와 가족-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 탐구해와
“차별-건강 주제 교과서 쓰고 싶어”
차별과 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이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탐구해 온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44)가 자신의 공부를 되돌아본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동아시아)를 22일 출간했다. 책은 그간 이어온 여러 매체와의 대담과 기고 등을 묶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날 만난 김 교수는 “좋은 해답이라기보다 좋은 질문을 찾으려 애썼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건강은 사회적이다. 휠체어를 타는 고혈압 장애인에게 이뇨제를 처방하면 외출을 더욱 꺼리게 된다. 거리의 장애인 화장실이 상당수 창고로 변해버린 탓이다. 장애인의 건강과 이동권은 직결돼 있다. 김 교수가 “어떤 고통은 치료가 아닌 응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책 속 소제목처럼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하고, 지워진 존재는 고통에 응답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학자의 길을 택한 김 교수는 그동안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소방공무원, ‘코로나19 취약계층’의 고통을 다뤄왔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비명과 신음소리를 사회적 언어로 해석하는 작업”, “인간의 고통을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연구는 ‘더 나은 질문’을 찾는 과정이었다. 트랜스젠더인 사람에게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봤자 실태에 접근하긴 어려웠다. 성별을 표시해야 하는 서류 심사 자체가 장벽이어서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다른 질문지를 만들었다.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일상적 용무를 포기한 적 있습니까?” 그제야 혐오를 맞닥뜨릴까 두려워 ‘평범한’ 경험마저 포기하며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드러났다.
세월호 생존자와 가족, 천안함 생존자의 건강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정치 사회적 맥락이 너무 다른 별개의 사건이지만 모두 서해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와 동료를 잃은 것이지요. 거기에 집중했을 땐, 다르지 않았어요.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한국 사회의 (부족한) 실력이 일관되게 드러난 일들이었습니다.”
2017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이후 대중서 여섯 권을 펴낸 김 교수는 앞으로 10년간은 ‘차별과 건강’을 주제로 한 교과서를 쓸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의 경험, 우리의 데이터가 담긴 교과서가 필요해요. 제 모든 시간을 교과서 집필에 쓰려고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독자를 언급했다.
“독자들이 저를 지켜주셨어요. 책을 많이 읽어주신 덕분에, 그를 통해 이웃들을 지켜낸 이야기도 많았어요. 그래서 더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깊이 감사합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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