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대격변, 한국엔 자원·농산물 투자 기회”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3. 11.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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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하상섭 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의 ‘극우 대통령 당선’ 분석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통령 후보 당선은 코로나 사태 때 좌파 정권의 돈풀기 정책으로 유발한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중앙은행이 제대로 잡지 못한 결과입니다. 새 대통령은 시장 친화적 정책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엔 자원과 농산물 투자의 호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상섭(53)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교수는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최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경제학자 출신 비주류 정치인이던 ‘자유의 전진’ 소속 하비에르 밀레이(53)가 당선된 것과 관련해 “좌파가 정치세력을 넓혀가던 남미의 소위 ‘핑크 타이드’ 흐름을 꺾는 큰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이같이 분석했다. 하 교수는 2000년대 초 발생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 관련 분석으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5년째 중남미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있다.

하상섭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의 대격변은 한국 자원외교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기훈 기자

―밀레이 후보가 당선된 이유는?

“여당인 좌파 페론정의당이 포퓰리즘 때문에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 물가가 폭등한 결과다. 팬데믹 해결책으로 공공요금 동결, 무이자 할부 정책, 현금 지급, 세율 대폭 인하 등 무리한 정책을 사용해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는 하락을 거듭했고, 설상가상으로 올해 기후변화 영향과 전 세계적인 가뭄으로 농업국가인 아르헨티나의 곡물 생산량이 대폭 감소해 수출과 경상수지가 타격을 입었다. 특히 연방제인 아르헨티나에서 주정부들이 재정적자를 많이 냈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외채 협상에서 줄기차게 요구한 에너지 요금 인상, 공공 급여와 연금 억제를 통한 정부지출 통제는 올해 대선 국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적 처방보다 유권자의 표심에 맞춘 정치적 선택이 먼저였다. 정부 지출이 크면 세금을 걷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코로나 사태 때 왕창 푼 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올해 1월에 전년 대비 98.8%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월에는 142.7%로 뛰어 올랐다. 1991년 이후 3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연말엔 물가 상승률이 170%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정권 교체를 불러왔다.”

―물가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중앙은행은 뭘 했나?

“기준금리를 10월에 118%에서 133%까지 올렸으나 항상 뒷북 치기였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더 큰 폭으로 올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기업 투자와 소비의 위축을 가져온다고 보고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다가 이번에 정권을 내주게 됐다. 소비자, 시민, 빚 많은 중소기업의 표를 의식하는 경제정책을 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밀레이의 개혁 방안은?

“그는 밀튼 프리드먼을 신봉하는 통화주의자이다. 물가 폭등은 중앙은행이 무분별하게 퍼주기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며 중앙은행이 선량한 서민들의 돈을 훔치는 수단이 됐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중앙은행을 폭파하고, 아르헨티나 페소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통화로 채택해 인플레이션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실현 가능한가?

“아르헨티나는 1989년에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거의 3000%에 달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적이 있다. 당시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통화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1달러 대 1페소로 태환하는 환율 정책을 시행해 물가를 두 자릿수로 끌어내렸다. 중앙은행이 외환을 보유할 필요 없이, 환율을 달러에 고정시키고 금리를 자율 조정하는 방식의 고정환율제도였다. 또 공기업 민영화와 긴축재정으로 해외 투자를 끌어들여 부족한 달러를 보충했다. 하지만 동시에 금리 폭등, 금융시스템 와해 등의 위험을 감수했다.

밀레이도 공약은 과격하게 내걸었지만 이러한 이전 통화개혁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 축소 개편 작업을 하면서 중앙은행과 통화의 이름을 바꾸고 달러와 1대1 환율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9월 12일 선거 유세 당시 정부 조직을 대폭 잘라 축소하겠다는 의미로 기계톱을 들어 보이고 있다./AP 연합뉴스

―현재 달러당 353페소인 공식 환율을 1대1로 끌어내리면 어떤 효과가 있나?

“이 환율 정책을 쓰면 수입이 늘어 단기간에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수출이 줄어 무역수지 적자가 나는 데다 현재 외환보유액도 많지 않기 때문에 사실 좋은 처방은 아니다. 비공식 통계이기는 하지만, 밀레이 당선자는 1990년대 이후 거의 10년간 태환법(1달러 1 페소)을 시행하는 동안 아르헨티나 민간자본이 페소를 달러로 바꿔 국내외 금융시장에 숨겨둔 돈이 1250억달러에 달해서 현재 아르헨티나 대외부채보다 많다고 본다. 페소를 폐지하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면 신규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이 돈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달러를 자국 통화로 채택한 선례가 있나?

“중남미 지역에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가 있다. 하지만 자국 통화 폐지는 경제 주권을 잃는 일이다. 경제 위기 때 통화 정책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선 때마다 자국통화 부활이 이슈로 등장한다.

아르헨티나 페소 폐지는 개헌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입법부를 아직 여당인 페론정의당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큰 장애 요소이다. 게다가 중국과 무역거래에서 위안-페소 스와프(통화교환) 계약을 맺고 있어서 달러화 정책은 중국이 반발할 수 있고, 미국도 달러 가치 하락을 우려해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월 1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스포츠 상점에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암시장 환율이 고시되어 있다./AP 연합뉴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밀레이가 공약대로 정부 간섭을 줄이고 시장 자율성을 높이는 개혁을 한다면 리튬, 농작물, 셰일가스 등 한국에 없는 자원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새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면서 자원을 담보로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개혁 국면이므로 아르헨티나 국채, 자원 관련 회사의 주식 등을 주목해 볼 만하다. 다만 새 정부가 과거 부채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럽게 관망해야 한다. ESG(환경, 사회적 책임, 기업지배구조) 투자는 후퇴할 전망이다. 정권이 바뀐 뒤 공약대로 정부조직 개편이나 정책 전환이 진행되는지 상황을 일단 지켜보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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