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날씨와 마음의 관계

김민경 당근정신의학과의원 원장 2023. 11.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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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당근정신의학과의원 원장

가을치고는 지나치게 포근하다 싶은 날씨가 지속됐다. 우리 의원에 방문한 내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땀까지 흘리는 건가 의아한 시점에 “선생님 오늘 많이 덥네요”라는 말을 듣고 무심결에 에어컨을 켜다 흠칫했다.

‘세상에! 지금이 11월인데 날씨가 이렇게 덥다니.’ 그러나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닥쳤다. 출근길에 패딩으로 무장하고 나서는 사람이 늘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처럼 우리 마음도 왜 이렇게 한순간에 얼어붙는 것일까?

날씨와 계절은 우리의 마음에 제법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영국처럼 흐린 날이 많고 해를 보기 어려운 날씨는 우울증 환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더 많다. 날씨가 흐리다는 것은 기압이 낮다는 것인데, 저기압일 때 사람은 보통 기분도 같이 저하되고 의욕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고 기분이 나빠 보이는 사람을 보면 ‘오늘 저 사람 저기압이니 조심하자’고 다들 속닥거리지 않는가.

실제로도 화창하고 고기압인 날씨보다 저기압이고 흐린 날씨에는 상담을 예약하고도 오지 않는 내담자가 더 많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가도 날씨나 환경의 영향으로 집밖을 나설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갈등이 심해진 사람에 대해 우리는 흔히 서로 간의 관계가 얼어붙었다는 표현을 쓴다. 대개는 서로 활활 태우며 열정적으로 싸우다 지쳐서 냉전기를 맞이하고 차라리 싸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휴전 상태를 맞이한다. 사실 서로 상처 받을까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상태다. 긴밀한 관계에서만 그런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찬바람이 쌩쌩 부는 예민한 사람 앞에서 또 무슨 말을 들을까 염려가 돼서 입을 떼기 두려웠던 경험이 한번 씩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실제로 따뜻한 온도와 감각은 마음까지 녹이는 효과가 있다. 상담자들은 부부 치료를 할 때 상담공간을 조금 더 따듯하게 한다. 한여름이라도 에어컨을 켜서 서늘하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덥게 에어컨을 끄는 식이다. 따듯한 공기가 옆에 앉은 배우자나 상담자와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데 더 효과가 있는 듯하다. 한 실험에서 모의 면접을 보게 하고 면접자에게 한 곳에서는 시원한 음료를, 또 다른 곳에서는 따뜻한 음료를 대접했다. 비슷한 조건으로 실험을 통제했는데 면접자는 따뜻한 음료를 받은 쪽에 더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 두뇌는 실제 덥거나 혹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것과 몸이 긴장되고 설레고 기분이 좋아 흥분되는 것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마침 독감에 걸려 열이 펄펄 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고백을 해 온다면 ‘그가 좋아서 내 가슴이 이렇게 뛰는 것인가’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 초반에 애인과 놀이공원에 가거나 함께 무서운 영화를 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한 경험이 춥고 서늘하다면 행복하다고 느끼기가 참으로 힘들다. 내담자들이 힘든 상처를 떠올리며 꺼내는 기억은 추위와 연결된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추우면 몸이 얼어붙고 누구나 허전하고 쓸쓸함을 느낀다. 부모님에게 혼나고 집 밖을 나와 앉아 있을 때의 서늘함. 혼자 텅 빈 집에 귀가했을 때의 외로움은 모두 싸늘한 공기와 연결되어 있다. 혼자 남겨진 공간은 온기가 없고 차갑기 마련이다.


혹시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 낭만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눈이 낭만적이려면 먼저 따뜻하게 체온을 보호해주는 털모자와 부츠가 필수품목이다. 내 몸이 따뜻한 상태에서 시각적으로 즐기는 눈의 풍경이 아름다운 법이다. 만약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면 지금처럼 추운 계절이 제격일지 모른다. 아무래도 포근한 봄 가을이나 뜨거운 여름에는 웬만한 따뜻함으로도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차 한잔, 호호 불며 먹게 되는 갓 구운 붕어빵 하나로도 내 마음을 온전히 전달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시기가 상대와 따듯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자연스레 감정의 온도를 높이기 참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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