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노인을 위한 공연장은 없다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 때 가려던 것이 코로나로 미뤄지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다녀오자며 큰 맘을 냈다. 남편이 비행기 옆 좌석에 타신 70대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다 그분이 가수 임영웅 콘서트를 위해 LA에 가신다는 걸 알게 됐다. 임영웅이 어르신에게 아주 인기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콘서트를 보러 미국까지 가다니 싶어 꽤 놀랐다.
현지에 도착해선 더 놀랐다. 임영웅의 콘서트가 열렸던 돌비 시어터(Dolby Theatre) 주위가 온통 팬클럽의 색상인 파란색으로 채워져서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으로 쓰이는 돌비 시어터(구 코닥 극장)와 할리우드 거리를 돌아보는 도중 팬클럽이 전세 낸 듯한 관광버스도 두어대 봤다. 임영웅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은 이미 한국에서도 경험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있어 서울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을 찾았는데 마침 임영웅의 콘서트도 옆 건물에서 예정돼 있었다. 주변은 온통 파란색 물결이어서 그 자체로도 굉장했다.
최근에 열린 임영웅의 콘서트는 다른 이유로 부러움을 샀다. 콘서트가 끝난 후 팬이 커뮤니티나 온라인에 올린 사진을 보니 대형 모니터가 족히 5~6개는 설치돼 있었다. 어르신 팬이 다수를 차지하는 팬덤을 위한 가수의 배려였다. 실제로 콘서트가 자주 열리는 체육관 같은 곳 2층 좌석에서는 가수의 얼굴이 손톱만 하게 보인다. 그래서 팬들은 그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싶은 마음에 공연용 망원경을 따로 구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도 공연 내내 들고 있기도 번거롭다. 이런 팬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추가로 모니터를 설치하는 배려가 참 따뜻했다.
게다가 간이 화장실도 더 마련했다. 보통 콘서트는 3시간 정도로 진행된다. 급한 용무가 있어서 화장실에 가려면 좁은 좌석을 헤치고 옆 사람에게 불편을 주면서 지나가야 하는 데다 화장실에서도 줄을 길게 서야 한다. 그런 불편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한 거다. 가장 감동적인 포인트는 연로한 팬이 좁고 어두운 데다 가파르기까지 한 통로를 지날 때 혹시 다치기라도 할까 봐 가는 길을 손전등으로 비춰줄 인력까지 배려해 둔 점이다. 콘서트가 끝나면 부모님을 모셔갈 자녀의 대기 공간까지 마련한 세심함도 놀라웠다. 가수나 배우 연예인 등 팬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은 항상 팬에게 감사하다 사랑한다 소중하다 말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러 시간을 내 찾아온 팬을 이렇게 살뜰히 챙기는 경우는 드물다.
꼭 임영웅 팬이 아니더라도 공연계에서 어르신 관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공연은 온라인으로 예매가 이뤄지고 티켓도 종이 실물이 아니라 큐알코드만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인기 있는 가수의 예매는 ‘피켓팅’(피가 튀는 티켓팅)이라 불릴 정도로 어렵고 마우스를 미친 듯 눌러야 한대서 ‘광클’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르신이 할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예매부터 진입장벽이 높은데 다행히 가족이나 자녀 등이 대신해 넘어섰다면 그 이후 공연장을 찾아 안전하게 즐길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걸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 노인이라 새로운 걸 배우지 못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모습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눈이 침침하고 손가락은 무뎌지고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 노화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노인이 됐을 때 그런 불편을 이해받지 못하게 된다.
커피숍이나 음식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거나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예약하는 일이 누군가에는 아예 불가능하다면 이건 문제다. 소득이나 연령에 따른 디지털 격차는 이미 사회문제가 됐다. 초고령화와 인구 소멸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별명을 가진 부산에서부터 고령 관람자를 위한 공연장 배려가 자리 잡는다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럼 부산은 ‘노인과 공연의 바다’가 돼서 배려와 매력이 넘실거리는 도시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최영지 독자여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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