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08] 다시 만난 첫눈과 대중가요
이별의 눈물처럼 비를 흩뿌리더니 그렇게 가을이 떠난 자리에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로 첫눈을 보낸다. 흔히 낭만의 표상이라 하는 눈을 달갑지 않은 대상으로 느낄 때 어른이 된다지만 첫눈은 그래도 조금 다르다. 정호승의 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처럼 특별한 약속이 없는데도 첫눈을 보면 괜스레 설레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 겨울의 인사에 어찌 화답하지 않으리.
동심, 순결, 사랑 등을 상징하는 눈은 대중가요의 단골 소재인데, 그중에서도 첫눈은 처음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띠고서 최근까지도 노래에 곧잘 등장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동화처럼 그린 슈퍼주니어의 ‘첫눈이 와’가 있기는 하나, 대체로 ‘첫눈’을 소재로 한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을 첫눈과 견주어 그 아련하고도 그윽한 정감을 부각한다.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는 첫눈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표현했고, 박정현의 ‘첫눈’, 엑소의 ‘첫눈’, 정준일의 ‘첫눈’ 등은 “가슴 뛰게 아름다웠던 너와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유호가 작사하고 한상기가 작곡해서 나애심이 노래한 ‘초설(初雪)’은 감독 김기영이 연출한 동명 영화 주제가다. 1958년에 개봉한 이 영화 필름은 현재 전하지 않으나, ‘픽처 유성기 음반(사진이나 그림이 있는 음반)’을 소장한 분의 배려 덕분에 주제가 ‘초설’은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배우 박암과 앳된 모습의 김지미가 음반 표지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나애심의 얼굴이 노래 정보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홀로 맞이하는 첫눈을 ‘폐허에 내리는 눈’이라며 부재로 인한 결핍과 대비되는 첫눈의 인상을 쓸쓸하게 표현하고 있다.
임원직 감독의 1968년 영화 ‘흑화(黑花)’의 주제가 ‘첫눈 내린 거리’는 이미자가 노래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의 기세에 눌려 영화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으나 주제가만은 인기를 얻었다. 1978년에 화가 천경자가 ‘이미자론(論)’에서 이 노래를 듣고 ‘그 처절한 애환이 내 가슴에 스며와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를 툭 내려주고 밀려드는 쾌감이 오관을 돌아 그만 울고 싶어진다’고 하였는데, 슬픔이 다한 후에 찾아오는 후련함을 적절히 표현했다.
첫눈 오는 날 함께할 수 없는 임 때문에 가슴 아픈 심정을 대중가요가 주로 그렸지만, 마냥 첫눈을 기다렸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근심 걱정 잠시 잊고 해맑게 웃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한 웃음을 웃고 싶다. 첫눈 오는 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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