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기의 개똥法학] 사법부의 지혜를 기다리며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난 9월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후 이균용 부장판사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고, 11월 초 조희대 전 대법관이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아직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조만간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대법원장 공백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장 공백의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궐위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선임대법관이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대행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10월 대법관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고, 회의 결과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내년 1월 초 퇴임하는 대법관 2명의 후임 제청은 하지 않기로 의견이 모였다. 신임 대법관 제청 권한은 헌법상 대법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기 전보인사 및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권한대행이 정기 전보인사에서 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고법판사 등 발탁성 인사까지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심리를 하는 것에서 나아가 재판장으로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서도 견해가 나뉜다.
법원마저 與野 정쟁 희생양 되면 안돼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인사청문회는 개인신상에 대한 흠집내기식 검증보다는 대법원장으로서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야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더는 장기화되지 않도록 조속히 인사청문회 일정에 합의해야 한다. 법원마저 여야 정쟁의 희생양이 돼서는 곤란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이 두루 신망이 두텁고, 정치적 성향도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필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대법관이던 조 후보자를 여러 차례 대면한 적이 있는데, 공사 구분이 명확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법관으로 기억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조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 지금까지 대통령이 한 인사 중 가장 잘한 인사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고, 대통령이 아무런 개인적 인연이 없는 조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기존 인사 스타일과 달라진 유의미한 변화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대법원장 '독배' 될 수 있는 엄중한 상황
현재 사법부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신임 대법원장에게는 재판 지연 문제 해결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 상고제도 개편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문제의 진단과 해법에 관해서는 사법부 구성원 사이에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사법부가 직면한 문제 중에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시대 변화나 세대의 문제도 있다. 이제 과거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으로는 사법부를 이끌기 어렵다. 대법원장직이 사법부의 수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성배’이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독배’가 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인 것이다.
대법원장직을 한 차례 고사한 뒤 수락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조 후보자가 “한 번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법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라고 답했다는 부분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미국의 윤리학자이자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부어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마땅히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유명한 기도문을 남겼다. 신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부 구성원들에게도 바로 이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법부의 지혜는 법의 울타리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철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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