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논의 10분만에 '파행'…의협 "최후수단 동원 강경투쟁"(종합)
정부 "의사 부족하다면서 의대생 증원 반대하는 건 모순…의협 퇴장 유감"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권지현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 수요 조사 발표 후 처음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정원 문제를 놓고 마주 앉았지만, 대립각만 세우다가 10분 만에 회의가 파행으로 끝났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2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18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전날 복지부가 대학들의 의대정원 확대 수요 조사를 발표한 뒤 처음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양동호 의협 협상단장(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회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 작심한 듯 먼저 입을 열어 "(정부에서) '핵폭탄'을 날리셔서 우리 협상단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필수·지역의료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로 했는데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이는 고양이(대학)한테 생선이 몇 마리씩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고 덧붙였다.
양 단장은 또 "일반 여론조사 기관도 아닌,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에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비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건 여론몰이"라며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듯 하지 말고, 국민 건강을 위해서 어떤 게 가장 올바른 방향인지 숫자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전날 의대정원 수요 조사 결과 발표 후에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이대로 정원 확대를 강행하면 총파업 등 2020년 파업 수준을 넘어서는 강경한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양 단장은 "정부가 어떤 방안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의료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돼야 하는데 유감스럽다"며 "전국의사대표자 회의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의협은 오는 26일 오후 전국의사대표자 및 확대입원 연석회의를 열고 의대정원 확대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의협 측의 지적에 대해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학교에서 교육이 가능해야 하니까 진행한 기초 수준의 조사였다"며 "세부적으로 학교별 교직, 교원의 수, 수련받는 병원의 역량까지 조사했는데, 이를 고려해야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한 차례 '설전'을 벌인 양측은 모두발언 직후 본격적으로 회의를 한 지 10여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마쳤다. 모두발언이 끝나고 의협이 퇴장함으로써 사실상 회의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정 정책관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제 막 의대정원 증원의 첫발을 뗀 상황에서 벌써 의료계에서는 총파업과 강경 투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병원의 인력이 부족하고, 수억원 연봉으로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면서도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언제 다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의사들이 실력행사에 나설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단체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의협의 양 단장은 "정부는 지난 6월 회의에서 적정한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겠다고 약속했다"며 "정부가 의료계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신중한 검토 없이 의대 정원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면 의료계는 최후의 수단을 동반한 강경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향후 발생할 필수·지역 의료 붕괴와 의료 공백에 따른 국민 피해의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와 의협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냉담했던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양 단장은 "오늘 회의에 나올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한 건 사실"이라며 "오늘은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강력한 유감만 표명한 채 서로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끝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요 조사를 정부가 할 수는 있지만 결과를 국민에게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의료 접근성 등 건강 지표를 가지고 의사가 부족한지 따져야 하는데, 데이터 없이 대학에 물어보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라고 탓했다.
26일 열릴 전국의사대표자 회의를 두고는 "의료현안협의체를 계속할지, 파업 일정은 어떻게 할지 등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단장은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현재 국민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파업을) 강행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의료계 내부에 많다"고 전했다.
정 정책관은 "필수의료를 위한 정책 패키지를 논의해왔는데, 오늘 18차 회의가 충분한 논의 없이 종료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날 저녁 참고자료를 내 재차 유감을 표명하며 "정부는 앞으로도 의협과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 패키지 마련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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