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재해구호협회, 국민 성금 유용 정황… 검찰에 수사 요청”

김경필 기자 2023. 11. 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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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로부터 성금을 받아 재해 구호 활동을 하는 법정 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성금을 유용하고 채용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된다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임직원 채용 비리 의혹과 국민 성금 유용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정승윤 권익위 부패방지 담당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지난 9월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임직원 채용 비리가 있있다는 의혹과 재해·재난 피해자를 돕기 위한 국민 성금인 의연금·기부금을 유용했다는 신고가 권익위로 다수 접수돼 조사한 결과, 여러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재해구호법에 따라 설립된 단체로, 국민들로부터 직접 받은 의연금·기부금으로 재해 구호 활동을 할 뿐 아니라, 다른 단체들이 모집한 의연금을 배분하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국민들이 동해안 산불 화재, 안동 산불 화재, 수해 등의 피해 복구와 이재민 구호를 위해 협회에 모아준 성금은 1833억원에 달한다. 협회는 이 가운데 1500억원을 구호 사업에 쓰고, 나머지 300여억원은 임직원 보수와 여비, 업무추진비, 의연금 모집 비용 등으로 썼다.

그런데 협회가 국민 성금을 재원으로 체결한 구호품 구매, 용역 등의 계약을 권익위가 조사해 보니, 2020년 8월 이후 있었던 계약 380억원어치 가운데 20여억원이 부정 계약인 것으로 의심됐다. 발주 금액을 2000만원 이하로 쪼개 공개 경쟁 입찰을 피하거나, 특정 업체에게 입찰 관련 정보를 미리 제공하거나, 협회 관련자의 차명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한 경우 등이었다. 권익위는 이런 계약들이 특정 협회 관련자의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기 위한 계약이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협회 임직원들이 2020년 8월 이후 현재까지 법인카드를 사용한 내역 23억원어치를 권익위가 조사해 보니, 약 3억원어치 1400여건은 법인카드를 부정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였다. 고가의 상품권을 구매했는데 이를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경우, 법인카드 여러 개를 이용해 ‘쪼개기 결제’나 미리 결제를 한 경우,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등이었다.

직제에 없는 직책을 만들어 협회 간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앉히고, 법인카드를 지급해 쓸 수 있게 하는 등으로 국민 성금 1100만원을 부당하게 쓰도록 한 경우도 발견됐다.

권익위는 협회가 국민 성금을 지출하고도 그 사용명세를 개략적으로만 기재하고 증빙 자료는 아예 남겨두지 않는 등 회계도 불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종 회의를 개최했다며 돈을 쓰고도 회의 참석자 명단, 영수증 등의 증빙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권익위는 “국민의 피땀 어린 성금을 방만하고 불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는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채용 비리 정황도 다수 확인됐다. 지난 4년간 협회가 진행한 채용 33건 중 24건(73%)이 공정 채용 절차를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협회 간부의 지인을 합격자로 내정해놓고 채용을 진행한 경우였다. 합격자로 내정된 사람에게는 채용 관련 자료가 미리 제공됐고, 채용 담당자에게는 서류 심사에서 이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면접 심사위원이 지인에게 미리 면접 예상 질문을 알려준 경우도 있었다. 권익위는 이런 식으로 7명이 부정 합격해 채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권익위는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라 대검찰청에 협회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권익위가 확보한 자료 일체도 보냈다. 권익위는 “태풍이나 산불, 코로나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재해로 피해를 입은 분들을 위해 국민과 기업이 십시일반 모은 의연금·기부금은 무엇보다도 투명하게 사용되고 엄정하게 관리되리라고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며,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의연금·기부금 유용 의혹과 지인 특혜 채용 비리는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기본적 신뢰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권익위가 일방적으로 지적한 사항들에 대해 제대로 된 소명 절차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협회는 권익위 외에도 현재 행정안전부 사무검사, 고용노동부 조사, 자체 감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향후 조사에 성실히 임하며 적극 소명해 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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