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조선의 두 번째 비행사 이기연을 기억하며

2023. 11. 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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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日서 비행학 배워… 탁월한 조종능력 주목받아 간토 대지진땐 조선동포 구하려 비행 나서기도 비행학교 설립자금 위해 전국서 비행대회 개최 서른에 추락사고… 민초들에 큰희망 주고 떠나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첫 번째만 기억한다. 물론 첫 번째가 된다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간 것일 테니까. 1922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安昌男)이 경성(京城)의 하늘을 최초로 비행했다. 그리고 1년 후 경성 하늘을 누빈 두 번째 비행사가 있었다. 이기연(李基演)이다.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2등이면 어떻고, 꼴등이면 어떤가.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1923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에 '천생(天生) 특재(特才)의 신 비행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경성 시내 묘정에서 장춘(長春)자동차부 주임으로 있던 이기연 군은 원래 두뇌가 명석하고 재주가 표일(飄逸)하여 모든 사람에게 칭예(稱譽)가 적지 않더니, (중략) 그는 자동차의 기계 소리만 들어도 그 자동차 기계의 고장이 어디 있고 없는 것을 능히 판단한다 하는 출중한 재주로, 이 군의 생각에는 자동차도 오히려 시대의 뒤늦은 물건이라 하여 지난달 하순에 시대에 마땅한 기계를 다시 한층 연구해 보고자 일본으로 건너가서 6개월 작정으로 비행학을 시작하였는데, 이 군은 원래 비범한 천재라 입학한 지가 불과 두 달이 못 되어 그 사이 비행기를 타고 항공을 시험하기를 수 삼 차나 하여 그의 난숙(爛熟)한 비행술은 다른 학생으로 하여금 놀랠만 하였다 하며, 그 비행장의 주인 이등(伊藤) 씨는 '지금 비행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비일비재(非一非再)이나 이 사람 같이 출중한 재주는 처음 보는 바이며 3개월만 배우면 능히 비행을 자유로 하겠다'고 척척 칭찬을 한다더라."

이기연은 그해 6월 11일 우등 성적으로 졸업을 하면서 3등 비행사 시험에 합격한다. 그러나 비행사 자격을 딴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간토(關東)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에 이기연은 조선 동포를 구하기 위해 비행에 나섰다. "조선의 새 비행가 이기연 군은 지난 9월 3일에 비행기를 타고 동경과 요코하마의 천공(天空)에서 이재(罹災) 상황을 시찰하였다는데, 어제 그의 친구에게 온 서간(書簡)을 보건대 그는 동경 천공에서 사면에 불타는 광경과 피난민의 복잡한 광경을 내려다 볼 때에 조선 동포들을 구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맹렬한 불길은 1,200미돌(米突; meter)되는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를 흔들어서 심히 위험하므로 어찌 할 수 없이 비행기 머리를 섭섭한 생각 중에 돌렸다 하며, 그 이튿날 도보로 동경을 가서 동포를 구제하고자 하였으되, 그 역시 보병대의 금지로 뜻대로 못하였다고 한다. (후략)" (1923년 9월 23일자 조선일보)

드디어 그는 조국으로 금의환향했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의 하늘을 비행하게 되었다. "조선에 역사가 생긴 이후로 두 번째 있는 공중을 정복하는 용사의 고향 방문 비행이 어제로써 노량진 여의도에서 거행하였다. (중략) 이윽고 푸로페라의 웅장한 소리는 여의도 천지를 진동하며 비행기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다시 서쪽으로 꺾어 가지고 한참이나 땅 위로 굴러가더니, 12시 5분에 또다시 일어나는 박수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땅을 떠났다. 이 군의 용쾌한 조종으로 처음에는 여의도의 약 300미돌(米突) 위로 한 바퀴를 돌더니 비행기는 700미돌 상공으로 높이 솟아 경성의 상공으로 향하였다. 여의도를 떠나 경성으로 향한 비행기 장백호는 웅장한 푸로페라 소리를 공중에 내며 북으로 향하였다. 하늘은 한없이 맑았으나 경성의 저공(低空)은 운무(雲霧)에 싸여 더욱 비행은 그 용사를 시민에게 보이기 불편하므로 그와 같이 높이 날은 것으로 보인다." (1923년 12월 20일자 매일신보)

이기연의 경성 비행을 보고 '노력이 없이 남의 잘 되는 것만 부러워하면'이란 제목으로 경무국 어느 관리가 탄식하는 말이 1921년 12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다. "내가 보안과에서 자동차를 비롯하여 교통에 관계있는 사무를 보는 까닭에 운전수로서의 이 군을 잘 아는데, 한동안은 도무지 볼 수가 없기에 무슨 일인가 하였더니 불과 1년 미만에 저와 같이 되었다. 땅 위에서도 기계 조종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더니 이번에 공중에 날아다니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 사람이 그처럼 진보하는 동안에 나는 의연히 이 책상에서 앉아서 구경꾼 노릇만 한다. 사람은 되기에 있는 것이요 되려면 목적을 관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노력이 없이 남의 잘 되는 것만 부러워하면 무엇을 할까. 평양 비행대의 숙련한 어느 군인은 이 군의 두 번째 날던 날에 그 침착한 태도를 칭찬하여 장래에는 물론 1등 비행가가 되리라고 한다. 침착한 것은 만사의 성공하는 근본이다. 덤비고 황당한 사람은 이것을 보고 주의할 일이다."

이기연은 전국을 돌며 비행대회를 열었다. 생계 유지를 위한 것도 있지만 비행학교 설립을 위해 자금을 모으겠다는 뜻도 있었다. 동포들은 그런 이기연을 '조인'(鳥人)이라는 불렀다. 그러나 사고가 터졌다. 1927년 6월 1일 장백호가 비행 도중 기관 고장으로 경북 문경 점촌의 한 야산에 추락했다. 이기연도 사망했다. 그의 나이 만 서른이었다. 그는 이렇게 역사의 격납고 속으로 사라졌다.

명대(明代)의 격언집 '증광현문'(增廣賢文)에 '장강후랑추전랑 세상신인환구인(長江后後浪推前浪 世上新人換舊人)'이란 글귀가 나온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은 새로운 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로 세대교체나 시대에 따른 변화, 발전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된다. 이기연에게 딱 맞는 말일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이 있어도 두 번째, 세 번째가 없으면 세상이 어찌 발전하겠나. 100년 전 암울했던 시절에 조선의 하늘을 날며 이 땅의 민초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던 안창남과 이기연, 두 분이 날았던 하늘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인다.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듯, 아름답고 푸른 2023년 11월의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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