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로봇이 국 끓이고 치킨 튀긴다…학생들 "똑같이 바삭바삭"
조리사들, 무거운 식기와 조리흄에 산재 계속
"폐암 의심 1명…조리사 전원 근골격계 질환"
위험환경 노출 최대한 줄이고 레시피도 입력
[서울=뉴시스]김정현 기자 = 22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숭곡중학교 2층 급식실은 수업 시간이라 조용한 복도와 달리 분주했다.
이날 급식 메뉴는 양념치킨과 야채볶음밥, 김치볶음, 소고기 탕국과 근대 무침. 조리사들은 낮 12시까지 전교생과 교직원까지 730인분의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치킨이 대량으로 튀겨지고 있는 솥 위에는 하얀 연기가 뿌옇게 올라왔다. 급식 조리사들의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던 일명 요리매연, 조리흄이다. 기계에는 150도라는 온도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솥 앞에 사람은 없었다. 팔에 튀김망을 단 로봇 팔이 위아래로 털며 다 튀긴 치킨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국이 끓여지는 솥 앞에도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숭국이'라는 명찰을 단 로봇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선반에는 두부, 고추, 다진 마늘 등 국거리 재료 통이 놓여 있었다. 로봇은 재료를 선반에서 가져다 솥에 빠트려 넣었다. 재료가 완전히 다 들어갈 때까지 여러 번 터는 모습은 전문 요리사를 연상케 했다.
재료가 다 들어가자 로봇은 전용 조리 삽을 들어 국을 저었다. 조리사가 열기 속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했던 일이다.
국이 제 맛을 내려면 재료 넣는 순서도 중요하다. 개발사 측은 조리법이 100여가지 입력돼 있다고 했다.
시간별로 어떤 재료를 넣고 온도는 몇 도로 할 지도 다 로봇에 입력해 알아서 맞춰 준다는 이야기다. 조리법은 조리사들이 원할 때 수정하고 바꿀 수 있다. 개발사인 한국로보틱스 관계자가 상주해 작동을 돕는다고 한다.
로봇이 만든 음식은 학생들도 만족하는 듯 보였다.
이 학교 부총학생회장 한다희 양(3학년)은 "(도입 이후) 급식이 좀 더 맛있어진 것 같다"며 "튀김은 어떤 건 조금 눅눅하고 어떤 건 바삭해서 차이가 있었는데 도입되고 나서 전체적으로 바삭바삭하다"고 말했다.
로봇이 만드는 메뉴가 제한적이지 않느냐고 묻자, 총학생회장 조형찬 군(3학년)은 "오히려 인기 있는 메뉴가 더 나오는 느낌"이라며 불편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혜영 숭곡중 영양사는 "아무래도 사람이 하면 힘이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 하게 된 튀김과 나중에 나온 튀김 질이 확실히 차이가 있다"며 "불 앞에 서 있지 않다는 점도 조리실무사들이 만족한다"고 말했다.
조리사 7명은 로봇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히 반찬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다.
위생 관리도 마찬가지다. 개발사는 물청소를 매일 해야 한다는 조리사들의 요구를 반영해 로봇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 학교가 갖춘 급식 로봇은 볶음용 2대와 국탕용, 튀김용 각각 1대씩이다. 시교육청이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한국로보틱스의 도움을 받아 공동 개발했다.
시교육청은 급식실 종사자들이 겪는 어려운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로봇 도입을 추진했다고 설명한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종사자 대상으로 검진을 벌였다. 고용 당국이 2021년 학교 급식실 종사자의 폐암이 산업재해임을 처음 인정한 데 따른 조처였다. 대상자 2만5480명 중에 0.12%인 52명이 폐암 확진자였다.
'폐암 의심' 또는 '매우 의심'도 379명이었다. 숭곡중에서도 1명 있었다.
개발사 측은 이날 설명회에서 "거의 대부분 종사자가 근골격계 질환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량의 식사를 만들기 위해 솥과 음식들을 들었다 내리고, 돌리다 기울이며, 쏟아내고 긁고 젓고 뒤집는 일까지 하다 보니 겪게 되는 재해인 셈이다.
로봇이 도입되면 자동화로 조리사들이 해직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뒤따르지만 시교육청은 선을 그었다. 올해 4월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급식실 근무자를 채용하지 못해 부족한 인원만 873명이라고 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고용 안정을 전제로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며 "인력을 대체하기보다 (근무 환경을) 보완하는 분업 체계로 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숭곡중학교에서도 조리 인원 감축은 없었다고 한다.
개발사 측에서도 개발 단계에서부터 조리흄 노출시간과 조리사들이 힘쓰는 일을 아예 없게 하기보다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완전 자동조리가 아닌 수동조리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수용했다.
도입 후 개발사 측이 근로 환경을 조사한 결과, 조리흄 노출시간은 튀김의 경우 종전 대비 92.4% 줄었고 근력을 쓰는 횟수도 63.8%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때문에 시교육청은 근무 환경 때문에 인력난을 겪고 있는 학교에서 로봇 도입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교육감은 "숭곡중 사례를 가지고 시스템을 보완하면 (다른 학교로) 확대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 같다. 조리 종사원 인력이 부족한 학교를 중심으로 (급식 로봇이 도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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