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톡' 상표권 업체 1천여 곳에 합의금 요구 사태 논란
'그립톡' 상표권 소유한 '아이버스터' 1천여 곳에 합의금 요구
판매업체들 "판매액 0인데도 300만 원" "3일 내 안 주면 고발 협박"
변리사 "상표권 침해 여부 아직 몰라… 무효 판단 나오면 돌려줘야"
상표권 보유 업체 "무단 사용으로 피해 막심… 경우 따라 선처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그립톡' 상표권을 보유한 업체가 상표권 침해를 주장하며 타 판매자들에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내용증명을 받은 판매자들은 “수백만 원 합의금이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법적 판단을 받기 전엔 상표권 침해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고 해당 업체 대표는 “상표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며 “경우에 따라 선처하는 식으로 끝낼 때도 많다”고 말했다.
'그립톡' 상표를 가지고 있는 주식회사 '아이버스터'는 최근 1천여 곳에 합의금을 요구하는 내용 증명을 보냈다. SBS는 지난달 30일 <'그립톡' 명칭 두고 분쟁…고유 상표? 보통 명사?> 기사에서 “이 업체는 지난 2017년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등지에 '그립톡'을 상표권으로 등록해 인정받았다”며 “그런데 온라인에서 '그립톡'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만 개의 제품이 팔리고, 그중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도 많아 이미지와 매출 타격이 크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립톡'은 스마트폰 뒤에 붙여 손잡이와 거치대로 쓸 수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내용 증명을 받은 업체들은 합의금 요구가 과도하다며 공동으로 무효심판을 청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아이버스터는 '오늘 12시 안', '3일 내' 등 시간제한을 두고 합의금 및 답변을 요구하거나 판매액이 '0원'인 곳에도 수백만 원 상당의 합의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체는 “상표권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내용증명을 받았다. 실제 판매액이 20만 원도 안되는데 300만 원 금액을 내야 하냐”고 했고 다른 업체는 “상품 매출이 0원인데 200만 원에 합의하자고 한다. 전화로 상표권 침해 여부를 몰랐고 매출도 없었다고 하니 120만 원에 합의해주겠다고 오늘 안에 입금하라고 하더라”고 했다.
네이버스토어에서 위탁 판매하고 있는 A업체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실제 '그립톡' 제품은 아니고 해외에서 들여 왔다. 수입하시는 분들이 보편적으로 '그립톡'이란 말을 많이 쓰니까 그렇게 올리신 것 같다. 등록된 것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구조라 나도 모르게 '그립톡' 이름이 올라간 것”이라며 “두 달 정도 됐는데 실질적으로는 판매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합의금 내용증명이 왔다. 보통은 상표권 침해가 되니 상품을 내려 달라고 먼저 하지 않나. 무조건 300만 원 내라면서 '3일 내로 답변 안 주면 고발하겠다', '300만 원은 조정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메일이 오니 협박처럼 느껴질 뿐”이라고 말했다.
A업체는 “네이버 스토어 플랫폼 자체에도 상표권 침해를 모니터링하는 제도가 있다. 정말로 상표권을 보호하고 싶었다면 플랫폼을 먼저 통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상표를 인지했으면 당연히 안 썼을 것이다. 인지 못 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대응하니 화가 났다. 상표권 보호 목적이 아닌 '합의금 장사'를 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민흥 변리사(와이즈업특허법률사무소)는 통화에서 “권리 주장을 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합의금 요구 답변에 시간제한을 두거나 실제 판매 여부를 따지지 않고 수백만 원을 요구하는 등의 부분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연락이 오면 80만 원 깎아준다든지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법리적으로 합의금 문제를 규정할 순 없지만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돈부터 유도하고 보는 것이 합의금 장사라고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판매업체들의 법적인 '그립톡' 상표권 침해 여부는 불분명하다. 상표권은 등록돼 있지만 이미 보편적으로 스마트폰 거치대 제품을 통칭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그립톡을 대신해 관련 제품 자체를 특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딱히 없다. '그립톡'이 새로운 의미를 제공하는 '식별력'이 있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변리사는 지난달 16일 <비즈한국>에서 “그립톡을 검색 포털에서 검색 시 특정 회사의 그립톡이 아닌 스마트폰 거치대로서의 그립톡의 모든 제품이 검색돼 표시되고, 그립톡을 대신해 그립톡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명칭 또한 없어 보인다”며 “나아가 일반 수요자 대부분은 그립톡을 일반명칭으로 사용하는 사실 또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그립톡이 상표로 등록돼 있지만, 일반명칭이나 보통명칭으로 인식되어 식별력을 상실한 상태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박 변리사는 “내용증명을 받은 업체들이 단체로 무효심판을 청구한다면 특허법원, 대법원까지 가야 하는 사안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보통명칭'으로 생각하고 있어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봐야 한다”며 “판단이 나오기 전에 합의금부터 요구하는 상황이다. 누군가 무효 심판을 청구해 시간이 걸리지만 무효 판단이 나온다면 합의금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버스터는 강경 대응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남동훈 아이버스터 대표는 22일 통화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판매하면서 '그립톡' 이름을 사용해 피해가 막심하다”며 “판매액이 없거나 하는 분들은 법무 대리인 비용만 받고 선처하는 식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다. 제가 열심히 해서 특허를 냈는데 무효화시키는 게 더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이 상표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들과 합의를 본 상황”이라며 “GS리테일이나 LF패션 등도 저희와 합의를 보면서 정품 그립톡으로 대체 발주했다. 정식 그립톡 스토어로 정품 매장도 국내에 5곳이 있다. 제품 식별력을 높이기 위한 R마크도 다 돼 있다. 해외까지 등록하며 상표권 인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 특허인데 피해가 생기고 있다. 법무 비용도 계속 들어가는데 악의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상표권자가 노력하지 않아야 식별력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저는 엄청난 노력을 했던 게 다 증빙되고 있다. 이번에 공론화가 됐으니 강경하게 대응해서 브랜드를 확실히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영방송 이사들 “방통위, 짜고치는 고스톱 중단하라” - 미디어오늘
- 이동관 방통위원장 조선·중앙 인터뷰 발언 팩트체크 결과는 - 미디어오늘
- ‘전두광의 밤’ 다음날 조선-동아 호외엔 뭐라 적혔을까 - 미디어오늘
- 정청래 “쿠데타 세력 앵무새 방송 시절 그립다면 꿈깨야” - 미디어오늘
- [언론계 역사 속 오늘] 1968년 11월29일, ‘신동아 필화사건’ - 미디어오늘
- 뉴스 검색값 변경 ‘재앙’ ‘갑질’ 반응 속 “설마 네이버도?” - 미디어오늘
- 반복되는 광주MBC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은 - 미디어오늘
- [아침신문 솎아보기]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한겨레 “촬영 논란과 별개로 엄정히 다뤄
- 尹정부 소통 방법…해외 매체 인터뷰 20여곳, 국내는 조선일보 유일 - 미디어오늘
- “잡지 회수하고 다시 찍어” 시사저널 이례적 판갈이 왜?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