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9·19 군사합의 부분 효력 정지…“평화 안전판 제거하는 대북 정책”
북한도 접경지대 군사활동 부담 덜어
“우발적 충돌 위험 더욱 높아져”
정부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남북 9 ·19 군사합의 중 일부를 효력 정지했다. 군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대북 정찰을 재개하기로 했다. 북한도 접경지대에서의 정찰 등 군사 행동에 면죄부를 얻게 됐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한층 더 높아졌으며 우발적 충돌에 따른 위험을 관리할 안전핀이 추가로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늦은 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현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의 소위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 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 향상에 그 목적이 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실행에 옮기는 조치”라며 대응책을 지시했다. NSC 상임위는 별도 입장문을 내고 “9·19 군사합의 1조 3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하고, 과거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활동을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조치는 빠르게 진행됐다. 정부는 22일 오전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남·북한이 다시 신뢰가 생길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안을 즉각 재가했다. 국방부는 이날 효력 정지 조치에 따라 “MDL 일대 북한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정찰활동을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새벽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관하며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군사적 대응책을 논의했다.
남북 간 합의를 한국이 먼저 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그해 9월 체결된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남북의 적대적 군사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9·19 군사합의 이후 북한의 군사행동이 줄어들면서 남북의 우발적·국지적 충돌을 예방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부터 9·19 군사합의 파기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는 군사행동을 잇따라 감행하고 핵 무력을 급속도로 고도화하자 합의 파기가 거론됐다. 정부는 특히 지난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되자 접경지역에서 북한의 ‘하마스식 기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정찰·감시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며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강하게 추진해왔다.
한국 측의 선제적 남북 군사합의 효력정지 선언의 실익은 모호하다. 북한 주장대로 정찰위성 발사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위성의 성능은 검증 대상으로 남아 있다. 군은 지난 5월과 8월에 발사됐던 북한의 위성 잔해물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2차 발사 실패 3개월 만에 발사한 위성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면 한국이 합의를 먼저 파기함에 따라 북한은 MDL 일대에서의 군사 행동에 대한 국제적 비난 부담을 덜었다. 군의 대북 정찰에 맞대응해 북한도 정찰 제한을 풀어 군사분계선 기준으로 25km 이내, 40km 상공에 무력을 진입시키거나 9·19 군사합의 이후 철수했던 지상에서 감시초소(GP) 복구, 공동경비구역(JSA) 내 무장병력 진입, 동·서해상 완충 지역 무시 등 다양한 군사적 도발이 가능하다. 미국 당국자나 전문가 역시 한국의 9·19 군사합의 선제 파기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해진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한의 서로에 대한 신뢰수준이 최저 수준이고, 상호 적개심은 높아졌으며 지도자들이 역대 유례없는 방식으로 전쟁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는 우리가 북방한계선(NLL)이나 MDL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정찰 활동과 포 사격 등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오해, 오인, 오판에 의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북선전 방송이나 심리전 등과 결합이 되면서 대단히 걱정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2015년 개성공단 철수 등을 보수 정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기존 상징이나 정책에 ‘파기’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다”며 “안보가 평화의 수단인데 안보를 최종 목적을 두면서 남북 간 평화의 안전판을 계속 제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정서상 이번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전략적 인내는 어려웠다. 지금 북한이 우리 정부 운신의 폭을 너무 좁혀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9.19 군사합의는 한·미의 군사적 능력을 현저하게 제약했던 한편 군사적 충돌을 막아주는 완충효과도 있었다”며 “향후 긴장관리를 위한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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