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21잔, 맥주 19잔 마시고 운전대 잡은 경찰관, “음주운전 아냐” 주장한 이유는
소주 21잔, 맥주 19잔, 소맥 2잔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도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일로 ‘강등’ 처분을 받은 한 경찰관이 “법률적으로 음주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계 불복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도합 41잔의 술을 마시고서 차를 몰았는데 ‘음주운전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제1-2 행정부(재판장 소병진)는 순경 A씨가 인천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강등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8년 12월 31일 순경으로 입직해 2022년 2월 경장으로 승진했다. 경장 계급을 단 그해 9월 14일 0시 28분쯤 ‘뺑소니(사고 후 미조치)’ 사고를 냈다. 본인 소유 그랜저 차량을 운전하다가 도로에 설치되어 있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했다.
A씨의 뺑소니는 사실 ‘음주 뺑소니’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사고를 내기 전날, 오후 6시 9분부터 자정 무렵까지 식당 두 곳에서 동료들과 회식을 했는데, 말 그대로 술을 들이부었다. 1차에서 소주 21잔(소주잔), 소맥 2잔(맥주잔)을 마셨고, 2차에서는 맥주 19잔(맥주잔)을 들이켰다. 식당 내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사고 30분 뒤 순찰하던 다른 경찰관이 중앙분리대가 파손된 것을 확인하고 사고를 낸 차주를 A씨로 특정했다. 관할 지구대 경찰관들이 곧바로 A씨 자택에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새벽쯤 A씨와 연락이 닿았고 그는 경찰에 불려나왔다. 그러나 음주 측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A씨가 당시 근무했던 부서의 팀장이 담당 수사관에게 “한번만 봐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가 입건된 사실은 경찰서 내에 공공연하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A씨는 당일 오후 무렵 음주 측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A씨는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음주 시점으로부터 10시간 넘게 지난 시점에 측정됐기 때문이다다. 위드마크(Widmark) 공식을 적용해 추정한 A씨 혈중알코올농도도 처벌 기준(0.03%)을 넘지 않았다.
A씨는 결국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와 별개로 인천경찰청은 지난 1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으로 경장이었던 A씨를 순경으로 강등하는 처분을 했다. A씨는 징계에 불복해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징계가 부당하다며 인천경찰청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소송에서 ‘징계 처분의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위드마크 공식으로도 형사처벌 기준 미만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왔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음주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비위는 경찰공무원 징계령 처리기준 상 정직이나 감봉 수준의 징계가 내려지는 것이 맞는데, 강등은 너무 가혹해 위법하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원고는 음주운전 등 교통 범죄를 예방하고 수사할 책임이 있는 경찰 공무원이었는데도 비위행위를 저질렀다”며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고의 당시 비위는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됐고, 상급자도 원고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담당 경찰관에게 부탁했다가 직무 유기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며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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