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미사일에 ‘눈’ 달린다···뒷배엔 러시아 기술 지원까지
북한이 2전3기 끝에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며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핵·미사일 공격력을 정교화할 전기를 마련했다. 러시아 기술 지원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향후 북·러 군사협력이 더욱더 불붙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핵심 성과를 거둔 자신감을 토대로 추가 군사정찰위성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시험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북한 공식매체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한 신형 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이 전날 밤 10시42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돼 정상 비행하며 ‘만리경-1호’를 궤도에 진입시켰다. 발사를 참관한 김 위원장이 발사 관계자들을 축하하는 등 발사에 성공했다고 통신은 주장했다.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은 올해 급격히 고도화한 핵 무력을 한층 더 강화한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지는 한·미의 군사적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속속들이 관찰하며 핵·미사일 선제·정밀타격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올해 전술핵탄두 ‘화산-31’과 핵무기 통합운용체계 ‘핵 방아쇠’ 등을 공개한 상황에서 핵·미사일에 군사정찰위성이라는 ‘눈’까지 달게 된 것이다. 한·미가 압도적 우위였던 정찰·감시역량을 북한이 일부 따라잡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공화국 무력이 이제는 만리를 굽어보는 ‘눈’과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을 다 함께 자기 수중에 틀어쥐였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이 이날 촬영된 서태평양 미국령 괌에 위치한 미 앤더슨 공군기지와 아프라항 등 미군 주요 군사기지 위성 사진을 살펴봤다고 통신은 밝혔다.
북한이 두 차례 발사 실패를 딛고 세 번째 만에 성공한 배경에 러시아 기술 지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북·러 군사협력의 본격화를 상징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시사한 위성 기술지원이 현실화한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전 무기를 제공한 정황이 확인된 데 이어 러시아가 북한에 주요 기술을 지원한 모습이 드러나며 ‘쌍방 협력’이 실체를 갖게 됐다.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여태껏 자력으로 기술을 획득해 개발해왔다면 지금은 러시아와 협력을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과거보다 더 진전되고 엄중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러 협력으로 핵·미사일 능력 시위에 성공한 전례를 남겼다”며 “북한은 핵심 군사기술을 얻어오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군사적 성과가 절실했던 김 위원장에게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크다. 지난 5월 첫 번째 발사 실패를 “중대한 결함”으로 규정할 정도로 올해 최우선으로 추진한 국방 과업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로 경제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제 발전을 희생시키며 핵 무력 고도화에 몰두한 결과물을 주민들에게 과시할 수 있게 된 측면이 있다.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 지도자와 차별화되는 ‘우주 강국’ 업적을 취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은 추가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다양한 정찰위성들을 더 많이 발사하여 궤도에 배치하고 통합적으로, 실용적으로 운용하여 공화국 무력 앞에 적에 대한 가치 있는 실시간 정보를 풍부히 제공하고 대응 태세를 더욱 높여나가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다음 달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2024년도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결정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정찰 범위를 확대하고 안정적인 기술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군사정찰위성 추가 발사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도 오는 30일 첫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면 남북 군비경쟁이 우주 공간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위성 경쟁처럼 보이지만 북·러가 밀착해 기술을 과시하고 한·미·일이 대응하는 진영화된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반도의 ‘신냉전’ 정세는 악화 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성공하자 남한은 즉각 군사적 충돌의 안전판인 남북 9·19 군사합의를 일부 효력정지했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성공을 발판삼아 각종 핵·미사일 발사 시험 등 도발적 군사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은 향후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을 추가 발사하며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안정적으로 갖추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고체연료 엔진 시험에 성공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남한의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겨냥한 군사분계선 일대 무인기 도발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은 2021년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전략무기 최우선 5대 과업’ 달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은 과업으로는 수중 고체엔진 ICBM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핵 추진 잠수함 보유 등이 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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