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방패’ 정조대왕함 타봤습니다…1등 조선소가 만든 놀라운 ‘무기’ 실체 [그 회사 어때?]
내년 말 해군 인도 앞두고 시험평가 진행
탐지·추적에 탄도탄 요격 기능까지 갖춰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울산)=김은희 기자] “가장 뿌듯한 순간은 세계 1등 조선소가 만들면 함정도 남다르다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정조대왕함은 설계, 디자인 면에서도 세계 최고급입니다.”
지난 20일 찾은 울산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안벽에는 시험평가 출항을 앞둔 해군의 신형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이 정박해 있었다.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정조대왕함은 거대했지만 동시에 날렵한 위용을 뽐냈다. 나란히 선 신형 호위함인 충남함과 비교하니 웅장함은 배가됐다.
특히 앞으로 매끈하게 뻗어있는 함수(배 앞부분)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는 정조대왕의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했다.
정조대왕함은 세종대왕함에 이은 해군의 두 번째 이지스 구축함으로 지난해 7월 진수돼 현재 시험평가를 진행 중이다. 시험평가를 마친 후 내년 말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다.
구축함은 대함·대잠 임무를 수행하는 군함으로 이지스 전투체계를 갖춘 함정을 이지스함이라고 부른다. 미사일 방어 능력이 핵심이라 ‘아테네의 방패’에서 이름을 따왔다.
함포가 큰 게 최고였던 과거와 달리 해전에서도 적의 미사일을 탐지·추적·요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미국, 일본, 스페인, 노르웨이, 호주 등 주요국은 이지스함을 도입하고 있다. 7000t급 이지스함 건조 기술은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 3개 나라만 보유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이지스 구축함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이지스 구축함의 설계부터 건조까지 수행하는 국내 유일한 기업이다.
정조대왕함은 길이 170m, 폭 21m, 무게 8200t으로 세종대왕함에 비해 더 길고 더 무겁다. 음파를 활용해 수중 목표의 위치를 알아내는 통합소나체계와 하이브리드 전기 추진체계를 추가로 탑재하는 등 능력이 획기적으로 보완됐다.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는 탐지, 추적만 가능했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세종대왕함보다 더 조용하게 움직이면서 더 먼 거리에 있는 잠수함이나 어뢰를 발견할 수 있고 해상에서 탐지·추적한 적의 탄도탄을 요격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탄도탄 요격미사일은 SM-3와 SM-6가 모두 운용 가능한데 현재는 SM-6만 탑재가 예정돼 있다.
정조대왕함은 이날 오후 항해시험평가를 앞두고 출항 대기 중이었다. 시험평가에선 HD현대중공업은 물론 해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등 관계자 100여명이 함정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근래에는 매주 월요일 오전 출항해 바다에서 다양한 평가를 하고 금요일 오후 입항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직접 승함해 둘러본 정조대왕함의 내부는 다소 어수선했다. 좁은 복도를 따라 500여개의 격실이 펼쳐져 있었고 함내 곳곳에는 비닐이나 부직포로 꽁꽁 싸매진 장비가 수두룩했다. 아직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곳은 테니스공으로 감싸져 있었다. 시험평가가 한창이지만 깨끗한 새 선박으로 해군에 인도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 최종 도장 작업은 시험평가가 끝난 이후 진행할 예정이다.
함수 중앙에는 거대한 함포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뒤로 각종 근접방어무기와 전자광학추적장비, 다기능위상배열레이 등이 설치돼 있었다. 함미(배 뒷부분)에는 2대의 헬기를 보관할 수 있는 헬기 격납고가 준비돼 있다. 정조대왕함에는 2024년 도입되는 시호크(MH-60R) 해상작전헬기가 탑재된다.
합판에서 바라본 정조대왕함의 외관은 매끄러웠는데 레이다 탐지를 어렵게 하는 스텔스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현장 관계자는 귀띔했다. 가스터빈과 함께 전기 추진체계가 결합돼 있어 저속 항해 시에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운항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이 관계자는 “실제 운항을 하면 중후한 세단을 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서 “세종대왕함도 타 봤지만 승차감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정조대왕함은 시험평가 항목만 500개가 넘고 평가 기간만 2년에 달한다. 상선이 열흘 이내로 시운전 평가를 한다는 점과 비교하면 길고 까다로운 평가다. 정조대왕함처럼 처음 건조한 선도함이 아니어도 통상 함정은 1년 반 이상의 긴 시험평가를 거치는데 이는 해상전투체계가 워낙 복잡하고 엄격한 성능을 요구하는 데다 함정의 품질이 곧 해군력,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장 관계자는 “함정이라는 제한된 플랫폼에서 전투성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설계, 생산을 관리하고 운용시험을 수행하는 체계통합 능력은 함정 건조의 핵심 역량”이라며 “HD현대중공업은 이지스구축함 배치 1·2 전투체계 통합을 모두 수행하며 능력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곳 울산 조선소에서는 전체 9개 도크(선박 건조 공간) 중 6·7번 도크를 특수선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별도의 잠수함 전용 도크 1곳까지 더하면 총 3곳에서 함정을 건조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상선 건조와 가장 큰 차이점은 보안”이라며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관계자 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며 건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날 통합디지털관제센터도 함께 공개했다. 관제센터에서는 안벽에 계류 중이거나 해상 운항 중인 모든 선박의 실시간 현황과 시운전의 주요 공정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은 향후 관제센터의 활용 범위를 특수선 사업 분야로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장 관계자는 “현재는 상선 위주로 운영 중이지만 보안 이슈가 없는 범위 내에서 특수선사업부의 군함 건조와 수출 함정의 MRO(유지·보수) 사업 등에도 폭넓게 활용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이 최근 함정사업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방산 분야가 군의 현대화를 넘어 산업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함정 소요는 제한적이지만 해양 위협과 분쟁의 증가, 노후함정 교체 및 현대화 수요 확대 등으로 글로벌 함정 소요는 확대되고 있다.
실제 대한조선학회에 따르면 세계 함정시장 규모는 2020년 340억달러(약 44조9000억원)에서 2030년 444억달러(약 57조3000억원)로 연평균 2.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한국이 수출 가능한 함정시장 규모는 2022~2031년 기준 총 590억달러(약 76조2000억원) 수준이라고 산업연구원은 예측한다.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 사업 연간 매출은 2022년 기준 7073억원으로 전체 매출(9조455억원)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영업이익률은 6.6%를 기록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은 편이다.
HD현대중공업은 수출에 매진해 2030년까지 특수선 사업 매출을 2조원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미래형·수출형 함정 자체 개발을 통해 수출을 적극 늘려 K-방산이 함정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발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게 HD현대중공업의 포부다.
HD현대중공업은 이를 위해 현재 3000t급 이하 중소형 잠수함 개발에 착수했고 수상함 분야에서도 동남아, 남미, 중동 등으로 수출 전선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본부장은 “함정을 건조하는 세계 유수의 조선소 경쟁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반면 우리는 세계 1등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미 수출 성과를 냈고 호평을 받고 있다”면서 “지금보다 매출을 2배 정도 늘려 특수선 사업만으로 독자 운영이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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