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노르웨이 유가족 최초 인터뷰...또 확인된 '무책임한 대한민국'

홍주환 2023. 11.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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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유가족을 최초로 인터뷰했다. 노르웨이인 희생자 이름은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Stine Roalkvam Evensen)'씨. 참사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는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159명 중 유일한 노르웨이 국적자다. 

참사 이후 지난 1년간 노르웨이인 유가족들은 극심한 고립감과 정보 부족에 시달렸다. 한국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정보 제공도, 의료 지원도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지난 1년간 (한국 정부가)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뉴스타파는 오스트리아, 이란의 희생자 유가족들을 인터뷰해 보도했다. 뉴스타파 보도로 외국인 유가족이 정부 지원의 철저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정부는 여전히 어떠한 대책 마련도, 개선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1. "한국 정부는 기다리라고만"... 차별받는 이태원 참사 외국인 피해자 (2023.5.30)
2. '이태원 참사' 이란 유가족 최초 인터뷰...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2023.7.10)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유가족, 언론 최초 인터뷰

지난달 30일,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유가족인 '에릭 에벤센(Erik Evensen)' 씨와 '수산나 로아크밤(Susanne Roalkvam)' 씨를 만났다. 에릭·수산나 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부모다. 이태원 참사 1주기인 10월 29일을 맞아 한국에 왔다.

인터뷰 장소에 나온 에릭·수산나 부부는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딸 스티네 씨의 사진과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였다. 한국행을 앞두고 부부가 직접 제작했다. 이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한국 사회에 노르웨이인 희생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인 에릭 에벤센 씨와 어머니 수산나 로아크밤 씨. 딸 스티네의 사진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스티네 씨는 2002년 노르웨이의 서부 도시인 '산네스(Sandnes)'에서 태어났다. 에릭·수산나 부부의 3남매 중 막내 딸이었다. 어머니 수산나 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활동적인 성격으로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았다"며 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스티네는 춤과 노래를 좋아했어요. 10년 넘게 핸드볼도 했어요. 에릭(아빠)이 핸드볼을 가르쳤죠." 

스티네 씨는 여행도 좋아했다고 한다. 스무살이 되던 2022년에 이미 17개국을 여행할 정도였다. 아버지 에릭 씨는 "스티네는 항상 새로운 곳을 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딸과 함께 베트남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스티네 씨가 한국에 온 건 2021년이었다. 평소 K-POP을 좋아해 한국 문화 전반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그해 11월 한국에 와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어머니 수산나 씨는 "평소 스티네가 영상통화나 메신저를 통해 한국어 수업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함께 공부하면서 숙제를 푼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느 20대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교복을 빌려 입고 롯데월드를 갔고, 한복 차림으로 경복궁에서 사진도 찍었다. 여의도 벚꽃축제에 갔고, 친구들과 함께 '인생네컷'을 찍었다. "노래방도 많이 갔다. 한국에 여러 종류의 카페가 있다면서 강아지 카페, 고양이 카페도 가봤다고 하더라"고 수산나 씨는 말했다.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한국 유학 시절 사진. 왼쪽은 롯데월드, 오른쪽은 여의도 벚꽃축제에서 찍은 사진이다.  

K-POP을 좋아하던 막내 딸..."곧 노르웨이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스티네 씨는 1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1월 25일 노르웨이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귀국을 한 달 앞둔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노르웨이 시각으로 10월 29일 밤 9시, 스티네 씨의 노르웨이 친구인 헬레나 씨가 부부에게 전화를 했다. '스티네가 이태원에 갔다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한국의 이태원이라는 장소를 그때 처음 들었다.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가족은 스티네 씨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딸은 받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 스티네 씨 가족이 딸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노르웨이 시각인 10월 29일 밤 9시는 한국 시각 10월 30일 새벽 5시였다. 이미 스티네 씨는 사망해 시신 임시 안치소인 '원효로 체육관'으로 옮겨진 뒤였다. 부모는 까맣게 몰랐다. 걱정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다.

딸이 이태원에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요. 저희는 노르웨이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실종 신고를 넣고 계속 기다렸어요.
- 수산나 로아크밤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의 어머니

유가족 "딸이 죽었는데 12시간도 더 지나서 알게 됐다"

부모는 딸이 죽고 12시간도 더 지나 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 그것도 대사관이 아닌 딸의 친구를 통해서였다.

노르웨이 시각 10월 30일 새벽 4시(한국 시각 10월 30일 낮 12시), 딸의 친구인 헬레나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스티네 씨의 한국인 친구가 스티네 씨를 찾았다는 얘기였다.

한국인 친구 다니엘 씨는 참사 소식에 스티네 씨의 행방을 수소문했고, 경찰로부터 "여기 당신이 찾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길로 바로 현장에 가서 신분증을 찾아봤고, 스티네 씨가 맞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부부는 딸의 친구를 통해서야 참사 발생 12시간 만에 스티네의 죽음을 알게 됐다.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당장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딸이 죽었는데 몇 시간 동안 알지도 못했어요. 뒤늦게 알고 큰 충격에 빠졌죠. 한국에 가려면 그런 상태에서 15~16시간 비행기를 타야 했어요. 그런데 스티네는 이미 떠난 뒤였고, 한국에 간다고 해서 스티네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죠. 여기서 스티네를 잘 받아주자고 생각했어요.

-  에릭 에벤센 씨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의 아버지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 있는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영정. 

궁금한 것 많았지만, 시신 인도 뒤 연락 끊은 한국 정부... "정보 찾을 수 없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약 1주일 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던 스티네 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에 가족은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보내준 것이라고는 사망 시간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사망진단서뿐이었다.

이태원 참사는 10월 29일 밤 10시 15분경 발생했고, 스티네 씨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망 시각은 '2022년 10월 30일 오전 11시 59분 이전.' 스티네 씨 실제 사망 추정 시점과 무려 12시간이나 차이가 나지만, 정부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 시신 인도와 장례, 구호금 지급 등이 끝난 뒤 한국 정부는 아예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에릭 씨는 "오슬로(노르웨이 수도)에 있는 한국 대사관과 연락해 본 적이 없다. (이태원 참사 직후) 스티네에 대한 실종 신고를 했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는 스티네 씨 한 명 뿐이다. 그래서인지 노르웨이 사회에서 이태원 참사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 현지 언론 보도도 거의 없었다. 취재진이 직접 노르웨이의 유명 일간지 두 곳(다그블라데트, 아프텐포스텐)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각각 지난해 11월 1일과 11월 4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기관의 잘못인지, 한국 정부는 어떤 후속조치를 내놓았는지 찾아보는 건 모두 유가족의 몫이었다. 노르웨이인 유가족이 한국 언론 기사를 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영어가 가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미권 언론 보도도 사라지다시피했다. 

인터넷에서 '이태원', '스티네'를 검색했고, 이태원에 대한 모든 걸 검색했어요. 하지만 다 한국어로 된 것뿐이어서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영어로 된 뉴스를 통해 알아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많이 없더라고요. 
- 수산나 로아크밤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의 어머니

최근부터 노르웨이인 유가족과 소통해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이태원 참사 대응 TF 소속 조인영 변호사는 이들이 이태원 참사 이후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발의 사안 △이태원 참사 유가족 활동 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그 긴 기간 동안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고, 알고 싶다고 해도 어디에 얘기를 해야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어서 (스티네 씨 가족이)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14개국 외국인 유가족, 정보 부족 시달리지만... 방치하는 한국 정부

한국 정부로부터 정보 제공 등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건 노르웨이인 유가족만이 아니다. 14개국 26명에 달하는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도 비슷했다. 일단 이들이 쓰는 언어가 영어, 이란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오스트리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우즈벡어 등 10여 개에 달해 언어 장벽으로 인한 정보 부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희생자가 발생한 14개국 언론의 이태원 참사 보도량도 한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어서 유가족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 정부가 외국인 피해자들을 위해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후속조치 등에 관한 정보를 현지 언어로 번역해 제공하는 등 지원 정책을 펴야 했던 이유다. '참사 당사자로서 알권리 보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이태원 참사의 외국인 희생자는 모두 26명이다. 국적은 14개다. 쓰는 언어도 이란어와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우즈벡어, 태국어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유가족들을 방치했다.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가족을 지원하겠다며 외교부에 담당 공무원까지 배치했지만, 한 번도 선제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한국 정부로부터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어떤 얘기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는 (참사 이후)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 수산나 로아크밤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의 어머니

뉴스타파 보도 뒤에도... 한국 정부는 외국인 유가족에 '소방 구급일지' 존재 안 알렸다

노르웨이인 유가족들은 참사 희생자의 구조 당시 정보가 담긴 '소방 구급활동일지'를 받는 과정에서도 소외됐다. 구급일지는 사망 직전 구조 방식과 환자 상태, 병원 이송 내용 등이 적힌 희생자의 공식 기록이다. 정부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희생자 신원이 확인된 유가족에게 구급일지를 발급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유가족에게는 달랐다.

뉴스타파는 지난 5월, 이태원 참사 오스트리아인 유가족에 대해 보도하며 한국 정부가 구급일지의 존재를 외국인 유가족에게는 안내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유가족이 구급일지 발급을 요청하자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부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정부가 애초에 구급일지 발급 제도를 만들며 외국인은 배제했던 것이다. 

결국 정부는 뉴스타파 취재 이후인 지난 5월 말, 오스트리아인 유가족에게 구급일지를 발급해 줬다. 소방청과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앞으로 외국인 유가족들에게도 구급일지를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30일 뉴스타파 보도 영상. 5월 17일 이태원 참사 오스트리아인 유가족 김나리 씨가 희생자인 동생의 소방 구급일지를 받기 위해 한국에 와 소방서를 찾았지만, 정부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구급일지 발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정부는 뉴스타파 보도 이후에도 외국인 유가족에게 구급일지 발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내하지 않았다. 여러 외국인 유가족은 여전히 구급일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스티네 씨 가족 역시 그랬다.

스티네 씨 가족은 뒤늦게 다른 외국인 유가족을 통해서야 구급일지의 존재를 알게됐다. 에릭 씨는 "(오스트리아인 희생자) 김인홍 씨의 누나인 김나리 씨와 얘기하고 나서야 소방 구급일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구급일지를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고, 소방 구급일지 2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스티네 씨 부모는 참사 발생 8개월이 지난 올해 6월 말에야 딸 스티네 씨의 구급일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인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구급일지. 유가족은 이 구급일지를 참사 발생 8개월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고립감 호소하는 외국인 유가족...심리 상담, 치료비 지원도 전무

지금까지 뉴스타파와 인터뷰한 외국인 유가족들은 모두 참사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스티네 씨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단 1명인 노르웨이 사회에서 스티네 씨 가족과 같은 슬픔을 공유할 사람은 없었다. 우울감이 커졌고, 고립감도 심했다. 

저희는 계속 혼자였던 것 같아요. 물론 자녀를 잃은 다른 부모들의 모임에도 나갔어요. 하지만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분들은 노르웨이에서 자녀를 잃었죠. 너무나 먼 타국에서 자녀를 잃는 건 많이 다릅니다. 계속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 에릭 에벤센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의 아버지

이태원 참사의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치료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지원은 크게 두 가지다. 심리상담 서비스 지원과 치료비 지원이다. 지난 1년간 한국 유가족과 생존자 등 피해자 수백 명이 이용했다. 

하지만 스티네 씨 가족은 하나도 이용하지 못했다. 심리상담 서비스에 대한 안내는 받아 본 적이 없고, 한국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비 지원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정부가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했을 때만' 치료비 지원이 가능하게 정책 구조를 설계해 놓은 탓이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직후 외국인 유가족도 내국인에 준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심지어 스티네 씨 가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현재 건강 상태가 어떤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 안부 연락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수산나 씨는 "우리가 기억 못 하는 이메일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심리 치료와 관련해 (한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아본 적이 없다. 심리 지원에 대한 이메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변 이태원 참사 대응 TF 소속 조인영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에서 외국인 유가족들이) 본국에서 치료를 받을 방법이 있는지 한번 알아봐 줄 수 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심리 지원도 전혀 안 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외국인 유가족이 있는 곳이) 선진국이라고 해도... 저희가 프랑스 유가족을 면담했을 때 '어떻게 심리 지원 받고 계시냐'라고 여쭤봤더니 프랑스 본국 내에서도 재난 피해자 유가족을 위한 심리 지원이 별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그걸 인지해서 원래 성폭력 상담하는 단체에서 (심리상담) 지원을 받고 계신다고 한다. 그러니까 더 열악한 국가에 있는 유가족들은 그냥 무방비 상태에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 조인영 변호사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태원 참사 대응 TF

지난달 30일 뉴스타파와 인터뷰 중인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 에릭 에벤센 씨(왼쪽)와 어머니 수산나 로아크밤 씨(오른쪽). 이들은 지난 1년간 극심한 고립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 노르웨이인 희생자는 1명이다. 

외국인 유족들 "한국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 한 목소리로 비판

결과적으로 외국인 유가족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은 지난해 11월 말 이미 끝난 구호·장례금 지급과 시신 인도 등이 전부였다. 참사 이후 1년 동안 알권리 보장을 위한 정보 제공, 회복을 위한 의료적 지원은 없었다. 

뉴스타파가 만난 이태원 참사 이란인, 오스트리아인, 노르웨이인 유가족은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무엇을 안 했는지조차도 모르겠어요. (외교부 담당 공무원이 있다는데) 기억이 나는 일이 없습니다. 
- 수산나 로아크밤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 어머니

우리는 정보가 없는 완전히 깜깜한 방에 있습니다. 한국 대사관이랑 외교부에서는 우리한테 아무도 이태원 참사 문제로 연락이 없어요. 한국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차별 대우할 것이라고는 절대 믿지 않았습니다.
- 마나즈 파라칸트 / 이태원 참사 이란인 희생자 고 알리 파라칸트 씨 고모

외교부나 대사관에선 우리한테 먼저 물어보지 않아요. 저희가 하도 답답하니까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해보고 해도 별 답이 없습니다. 빈(오스트리아 수도)에 있는 유가족도 저희뿐인데 말이죠.
- 김나리 씨 / 이태원 참사 오스트리아인 희생자 고 김인홍 씨 누나

"치료 받고 싶으면 한국 와라" 행안부의 무책임, 무대책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가족에 대한 지원은 행안부와 외교부로 양분돼 있다. 행안부가 지원의 내용을 정하고 유가족의 요청 사항 등을 논의하면, 외교부는 담당 공무원을 통해 유가족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두 부처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외국인 유가족의 요청이 있을 때만 반응할 뿐, 먼저 지원이나 연락은 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다음은 취재진과 행안부 내 '이태원 참사 지원단' 관계자의 통화 내용. 

○ 뉴스타파 기자 : 외국인 유가족들이 원하시는 거는 어쨌든 한국 상황을 모르시잖아요.
● 행정안전부 관계자 : 그 부분은 제가 답변을 어떻게 드릴 수가 없는 부분이... 저희는 지원이 결정된 부분으로만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참사 진상규명 이런 부분은 전혀 아는 게 없어요. 한 번 더 여쭤볼게요. 외국인 피해자분들이 어떤 부분이 지원이 안 된다고 하는 건지.
○ 뉴스타파 기자 : 최소한 지금 국회 국정조사가 끝났다. 무슨 (국정조사) 보고서가 나오면 보고서 내용을 외국인 유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게 요약이라도 해 주든지 그런 거. 그거를 외신들이 보도할 리는 없잖아요.
● 행정안전부 관계자 : 맞습니다, 예.
○ 뉴스타파 기자 : 뉴스레터 형식으로라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자기들이 좀 이게(이태원 참사 후속조치) 진행 중이라는 걸 알 수 있게.
● 행정안전부 관계자 : 그 부분은 저희 소관 밖인데요. 
○ 뉴스타파 기자 : 그럼 그건 어디서 결정하는 건가요? 위에서 (가이드라인을) 줘야 되는 건가요?
● 행정안전부 관계자 : 그 부분은 제가 답변을 드릴 수가 없어요.  
- 뉴스타파 - 행정안전부 '이태원 참사 지원단' 관계자 통화

해외 거주 외국인 유가족에게 치료비가 지원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유가족이) 한국에 오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참사의 후유증은 단기간에 치료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지난 10월 28일까지 1년 동안 후유증에서 회복되지 않아 계속 의료비를 지원받은 피해자는 모두 66명이다. 또 외국인 유가족 중 절대다수는 한국에 살아본 적도 없다. 결국 행안부 설명대로라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치료의 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와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에도 한국을 오가는 교통비와 체류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사실상 무의미한 대책인 셈이다.

취재진은 행안부에 연락해 "외국인 유가족 중 절대다수는 교포가 아닌 외국인들인데, 그분들이 어떻게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겠느냐. 직장과 생계 수단, 커뮤니티가 현지에 있는데, 다 버리고 오라는 것이냐" 같은 질문을 던졌다. 행안부 관계자는 "치료비 지원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라며 말을 돌렸다. 

외교부 "외국인 유가족 지원은 직접 업무 아니다"

그럼 참사 초기 외국인 유가족도 내국인에 준해 지원하겠다던 외교부의 입장은 어떨까. 외교부는 참사 1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유가족 지원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가 아니라며 발을 뺐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 내에서 외국인이 피해를 보면 일차적으로는 주한 (외국) 대사관에서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가장 앞서 대응한다. (노르웨이인 유가족 지원에 대해서도)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일차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 외교부는 노르웨이 대사관 요청을 받고 지원해 주는 게 업무"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태원 참사는 일반적인 사고가 아니고, 한국 정부의 실책으로 생긴 것인데 노르웨이 정부 소속인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에 맡겨두는 게 맞느냐"고 묻자 외교부 측은 "행안부가 주관하고 있고, 외교부가 지원 업무에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외교부가 그동안 외국인 유가족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했던 일은 뭘까. 뉴스타파는 서면 질문지를 통해 '그동안 외교부가 노르웨이인 유가족들에게 지원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외교부는 '참사 직후인 지난해 11월 구호금을 지급'하고, '깊은 위로를 표한 것'이 유가족 지원 사항이라고 적었다. 또, 올해 6월 말 유가족이 뒤늦게 신청하고 나서야 구급일지를 발급해 준 것도 지원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7개월간은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취재진은 '현재 진행 중인 외국인 유가족 지원은 어떤 게 있는지'도 물었다. 외교부는 "유가족 측이 요청하는 사항에 대해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만 답했다. 먼저 외국인 유가족에게 연락해 애로 사항을 묻거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직접 알아봐서 연락하지 않으면 (어떤 걸 요청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체계로 만들어 놓고서는 '우리는 (지원)하려고 했는데 (외국인) 유가족들이 연락이 안 와서 안 하고 있다.' 정부가 그런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다. 위에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지 않는데 굳이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르웨이인 유가족이) 저와 미팅하면서 많이 물으셨던 게 '원래 한국 정부가 이렇게 하냐,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이렇게 대우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원래 희생자 유가족들에 대해서 이렇게 대우하냐'였다
- 조인영 변호사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태원 참사 대응 TF

8000km 날아와 추모제 참석한 유가족... '5km 옆'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노르웨이인 희생자 스티네 에벤센 씨의 유가족들은 지난 10월 25일 한국에 왔다. 10월 29일 있을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을 찾은 건 이태원 참사 이후 처음이었다. 스티네 씨의 아버지 에릭 씨는 "스티네에게 한국에서 작별을 고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1주기 추모제 전까지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여러 장소를 갔다. 먼저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골목을 처음 걸었다. 당시 소감을 묻자 에릭 씨는 "끔찍했다. 정말 많은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유가족들도 만났다. 스티네 씨 가족은 다른 유가족을 만나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수산나 씨는 "다른 유가족과 포옹도 했다. 비록 같은 언어를 쓰진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심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으로만 봐 왔던, 스티네 씨의 영정이 있는 서울광장 분향소도 찾았다. 에릭 씨는 "분향소가 그렇게 큰지 몰랐다. 한 어머니가 분향소에 계셨다. 아들을 위해 케이크를 만드셨더라. 아들의 생일이었던 거다. 케이크를 들고 아들의 영정 앞에 서 계셨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1주기 당일인 10월 29일, 노르웨이인 유가족은 다른 수백 명의 유가족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고, 추모제에 참석했다. 에릭 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대하는 모습이 좋았다. 한국의 유가족들이 1년째 싸우고 있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서울광장에 있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노르웨이인 유가족. 노르웨이인 희생자인 고 스티네 에벤센 씨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유가족 에릭 에벤센 씨(가운데 왼쪽)와 수산나 로아크밤 씨(오른쪽). 

이날 추모제를 위해 스티네 씨 가족은 노르웨이에서 비행기로 15시간, 약 8000km를 날아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모제에 오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제는 정치적 행사'라는 이유였다. 추모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대통령 관저까지 거리는 약 5km, 차로 20분 거리다. 

수산나 씨는 "노르웨이라면 총리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 같다. 여기 문화는 어떤지 모르니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에릭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보내긴 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노르웨이라면, 정부 인사들은 거의 다 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인 유가족의 마지막 부탁 "진실을 찾아달라"

스티네 씨 가족은 지난달 31일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언제 다시 한국에 올 지 알 수 없다. "한국에 다시 올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일 가능성이 큰 부탁이었다. 

답을 찾아주세요, 진실을 찾아주세요. 스티네한테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스티네가 그 골목에 들어선 뒤 사망하고, 또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옮겼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스티네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나요? 구조하려고는 했나요? 도와주는 사람들은 있었나요? CPR은 했나요? 정말 모든 노력을 다한 게 맞나요? 
- 수산나 로아크밤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 어머니

인터뷰를 마치며 에릭·수산나 부부는 한국 땅에서 세상을 떠난 딸에게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겼다. 직접 만든 티셔츠 위에 곱게 새겨진 딸의 모습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게 악몽이었으면 싶어. 하지만 항상 꿈이 아니더구나. 항상 널 그리워 해. 이제 막 스무살이었고, 너에겐 참 꿈이 많았는데... 너는 항상 이 모습이겠구나. 스무살 모습 그대로, 늘 언제까지나. 항상 거기에 너는 멈춰 있겠구나. 20년 동안 함께 해줘서 고맙구나.
- 에릭 에벤센 /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에벤센 씨 아버지

이태원 참사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인 에릭 에벤센 씨(왼쪽)와 어머니 수산나 로아크밤 씨가 티셔츠에 있는 딸의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부모는 한국 정부에 '진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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