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방패' 정조대왕함 내년 해군으로... 세종대왕함 만든 세계 3대 기술진 독자 개발
이지스함 자체 건조 가능국은 한미일뿐
20년 쌓은 노하우... 필리핀 등 해외 개척
“수출형 함정 개발, 패키지 딜 강화해야”
20일 오전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이곳의 11번 안벽(계류시설)에 높이가 9층 건물만큼 되는 육중한 회색 함정 '정조대왕함'이 정박해 있다. 중량이 8,200톤에 달한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작업자들 사이를 걷던 최태복 특수선사업부 기술이사는 "미사일 공격 징후를 자체 판단할 수 있고, 적을 공중 요격하거나 적 근거지 타격도 가능한 첫 국산 함정"이라고 정조대왕함을 소개했다.
내년 11월 말 해군 인도를 앞두고 올 초부터 시험평가 중인 정조대왕함을 HD현대중공업이 언론에 공개했다. 정조대왕함은 한 척으로 대잠·대함·대공·대지 능력을 아우를 수 있어 '신의 방패'라 불리는 '이지스(Aegis)함'이다. 국산으론 두 번째다. 이런 배를 자체적으로 설계, 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일본뿐이다.
이지스함 설계·제작 기술 국산화 선봉
정조대왕함 내부로 들어가 보니 좁은 복도를 따라 약 500개의 격실이 배열돼 있었다. 침수 같은 만일의 상황에서 파손이 확산되지 않도록 내부를 여러 구역으로 나눴다는 설명이다. 가스터빈과 전기추진체계가 결합돼 있어 육중한 선체가 시속 55㎞의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면서 1,000km 거리의 표적 1,000여 개를 동시에 탐지·추적하고, 20여 개 표적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다. 더불어 적 탄도미사일을 해상 요격하는 기능도 국내 최초로 갖췄다. 다양한 무기의 목표 발견부터 교전에 이르는 모든 단계를 유기적으로 조합해 통제하는 '이지스 전투체계'다.
정조대왕함 구축의 주역은 HD현대중공업의 전투체계통합팀(ITT)이다. 이 팀은 HD현대중공업이 2004년 국내 첫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을 수주하고 미국 해군과 록히드마틴에서 이지스 전투체계를 도입하면서 구성됐다. 세종대왕함 건조 당시 직면한 과제 중 하나가 다중 표적을 전 방향에서 동시 추적할 다기능위상배열 레이더(팔각형 레이더)를 선체에 부착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회전형 레이더와 기능과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레이더를 달아야 하는 임무였다. 당시 미국 측 실무자는 자국 설계도 차용을 제안했으나, ITT가 자체 설계를 결정했다고 HD현대중공업 측은 설명했다. 최 이사는 "이지스함 설계 능력을 갖추면 해외 제작사의 기술과 일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품질과 서비스 제고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ITT는 세종대왕함 설계 노하우를 기반으로 2019년 정조대왕함 수주 이후 계약부터 연구개발, 기본설계, 상세설계, 검사, 시험 등 건조 전 과정에 참여했다. 특히 이지스 전투체계 설계는 세종대왕함 건조 당시(12개월)보다 훨씬 줄어든 4개월 만에 완료했다.
필리핀 해군 현대화 사업의 파트너
1975년 한국 최초의 전투함 '울산함'을 필두로 이지스함까지 총 102척의 함정을 건조한 HD현대중공업의 시선은 해외를 향하고 있다. 주원호 특수선사업본부장은 "세계적으로 구매 수요가 많은 1,000~2,000톤급 원해경비함 모델도 자체 개발해 필리핀으로 수출했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 해군력 증강사업에 참여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척의 함정을 수주했다. 이 가운데 3,200톤급 초계함의 기공식이 22일 울산 조선소에서 열렸다. 주 본부장은 이날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수출 협상을 확대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함정산업의 국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한조선학회와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함정산업 세계 시장 규모는 340억 달러(2020년 기준)에 달하지만, 국내는 작년 기준 17억 달러(약 2조3,000억 원)에 불과하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함정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수출형 표준함정 개발, 함정 건조와 정비를 묶은 '패키지 딜'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울산=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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