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리 뒤덮은 ‘초록 낙엽’···“기후위기의 ‘산증인’”

김세훈·최혜린 기자 2023. 11. 2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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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잎 대신 초록 이파리만 ‘우수수’
따뜻한 10월~11월 후 급 영하권 기온에
엽록소 파괴되기 전 ‘떨켜’ 세포층 생겨
‘에너지 절약’ 위해 잎 떨어뜨린 나무들
서울 용산구 용산중학교 인근 도로에 ‘초록 낙엽’이 흩어져 있다. 최혜린 기자

22일 서울 용산구 용산중학교 앞 인도. 예년 같으면 우수수 떨어진 은행잎으로 거리가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었어야 할 시기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옅은 초록빛을 띈 낙엽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약간 누르스름한 빛깔의 ‘설익은’ 낙엽들도 눈에 띄었다.

인근에서 낙엽을 쓸던 청소노동자 홍성재씨(62)는 “지난주 금요일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뒤에 토요일 나와 보니까 나뭇잎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며 “이곳 일대를 13년간 쓸고 있는데 이렇게 초록색 이파리가 한꺼번에 진 것은 지금껏 처음 보는 일”이라고 했다. 홍씨는 “시기도 보통 11월 말쯤 되어야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데 평소보다 1주일 정도 빨리 떨어진 거 같다”고 했다.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도 지난 주말부터 ‘초록 낙엽’ 목격담이 쏟아졌다. 엑스(구 트위터)에는 초록 은행잎 사진과 함께 “은행잎이 노랗게 되기 전 다 떨어진 풍경보고 뭔가 낯설더라…뭐가 그렇게 급했니, 초록 은행잎이 가득”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인스타그램에도 “첫눈 내렸는데 은행잎은 아직 초록인 게 무슨 경우냐” “은행냄새가 아니라 풋풋한 풀 내음이 난다. 뭔가 이상하다”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초록 낙엽의 출현에는 널뛰듯 변한 가을철 기온이 영향을 줬다. 낙엽이 노란빛으로 물드는 것은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가을철 일조량이 줄어들면 나무는‘에너지 절약’를 위해 잎을 떨어뜨리기 위한 준비작업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잎 안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잎은 노란색·붉은색으로 변한다. 통상 9월 말에서 10월 초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 엽록소의 분해작용도 빨라진다.

지난 1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10번 출구 인근 인도에 초록색 은행잎이 떨어져 있다. 독자 제공

그러나 올해는 평년과 달리 10월에 들어서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11월 들어서도 초순까지 평균 최저기온이 10도를 웃돌았다. 그러다 지난 18일 전국의 최저기온이 갑자기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나무가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겨울 날씨가 찾아온 것이다.

김재근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는 “가을에 기온이 낮아지면서 잎 안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이후에 잎을 줄기에서 분리하는 ‘떨켜’라는 세포층이 생기면서 낙엽이 된다”면서 “두 작용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올해는 엽록소가 채 파괴되기도 전에 떨켜가 생겼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초록 낙엽’이 기후 위기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최근 급격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올해 10월이 역대 가장 더운 10월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온난한 날씨가 이어지다 갑자기 추워지니 나무 입장에서는 영양분을 이파리에 뺏기지 않기 위해 급하게 잎을 떨어뜨린 것”이라고 했다. 최진우 가로수시민연대 대표는 “이상 기후로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은 짧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나무가 잎의 엽록소가 빠진 뒤에 남아있는 영양분을 이동시키고 잎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지난 주말에 첫눈이 오면서 급격하게 추워지니 나무로서는 ‘갑자기 겨울이네. 잎이 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낙엽과 단풍은) 달라지는 절기에 식물이 적응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기후 변화에 식물의 적응이 영향을 받고 있다. 활엽수들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20년 이후로 지리산 등에서 단풍이 사라지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면서 “기상 변화로 앞으로는 가을에 단풍 보기가 힘들 것이라는 진단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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