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탓인지 대본 때문인지 김빠진 '강남순', 그나마 김정은은 빛난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JTBC의 히트작 <힘쎈여자 도봉순>의 후속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이 '힘쎈여자 시리즈'는 웹툰 등으로 여성 히어로물의 세계관을 확장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보여줬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유미의 두 번째 주연 도전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화제 포인트는 강남순의 어머니 황금주 역으로 오랜만에 배우 김정은이 컴백한다는 것이었다.
<강남순>은 초반 이 모든 화제를 다 품고 시작했다. 거기다 몽골에서 찾아온 힘세고 순박하고 엉뚱한 강남순이 가족을 찾는 이야기는 뭉클하고 흥미로웠다. 또한 강남순 주변에서 감초처럼 맴도는 노숙자 거지들인 지현수(주우재)와 노선생(경리) 역시 톡톡 튀는 매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답답한 전개 없이 거침없이 괴력을 발휘하는 강남순의 영웅 서사 역시 가볍지만 나름의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강남순>은 만화 같은 드라마지만 그 만화 같은 가벼움과 전개가 오히려 장점이 되는 타입이었다. 강남순이 악의 무리를 쳐부수는 히어로 장면의 시원시원한 특수효과 역시 좋았다.
하지만 종반에 가까워진 <강남순>은 초반의 힘이 빠진 느낌이다. 그냥 틀어놓고 보는 킬링타임용 드라마지 챙겨보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일단 마약 수사극이 생각보다 깊이 있지도 그럴싸하지도 않다는 것. 그냥 가벼운 장난처럼 느껴지는 수사극이라 차라리 SBS <모범택시> 방식처럼 다른 범죄로 빨리빨리 갈아타는 방법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초반에 강렬한 매력을 보여준 강남순의 캐릭터는 중반부터는 그 빛을 잃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남순은 그저 강희식(옹성우) 형사의 수사를 돕는 조력자처럼 변해버린 인상이 짙다. 혹시 제작비가 부족한가 싶을 만큼 초반에 보여준 강남순의 괴력 특수효과들은 사라진 지오래다.
대신 강남순의 할머니 길중간(김해숙)의 로맨스 같은 부질없는 코미디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당연히 시청자 입장에서는 피식피식 터지는 웃음은 있지만 와, 하는 재미는 없다. 여기에 배우 변우석이 연기하는 악역 류시오는 옴므파탈의 매력에서 시작해 지고지순한 남자주인공으로도 어필하는 중이다. 로맨스에 한정하자면 <강남순> 안에서 류시오가 매력적인 캐릭터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힘센 삼 대 여자가 함께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거의 흔적만 남은 상황이다.
이처럼 <강남순>은 초반 기세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은 드라마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지지부진해도 배우 김정은에게 <강남순>은 꽤 괜찮은 복귀카드인 게 사실이다. 일단 주인공 강남순보다 현재는 황금주가 더 존재감을 발휘한다. 흔한 드라마 속 속물적인 재벌가 사모님과 달리 전당포 골드블루 대표 황금주는 정의롭고 이성적이면서도 뭉클한 감성까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황금주는 겉으로 보기에는 분위기가 무뚝뚝한데 여기서 느껴지는 개그 포인트가 있다. 김정은은 자칫 유치할 수 있는 이 개그 포인트를 잘 살려낸다.
또한 코믹한 한국판 원더우먼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힘센 여자 황금주 캐릭터에 인간적인 매력을 불어넣는 데도 성공했다. 김정은의 연기는 <강남순> 마약에 중독된 아들 강남인(한상조)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해독제를 구하는 장면에서 빛을 발했다. 사실 드라마 자체가 굉장히 허술해져서 대본만으로 보기에는 해독제를 구하는 전개는 그리 긴장감 있거나 몰입도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 장면에서 슬픔을 묵묵히 참는 강인한 모성 연기와 해독제를 구하는 짧은 장면을 긴장감 있게 소화하면서 그나마 극에 집중도를 높여준다.
김정은은 황금주의 무뚝뚝한 성격은 살리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 연기까지 소화한다. 사실 김정은은 수많은 히트작이 증명하듯 코믹과 멜로, 공감 가는 웃음과 눈물의 감정 연기를 자연스레 넘나드는 센스가 돋보이는 배우다. 이번 <강남순>은 힘 빠진 히어로물이 된 것 같지만 배우 김정은은 그녀가 드라마에 없는 재미까지 만들어내는 힘 센 배우라는 걸 오랜만에 다시 증명한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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