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부터 의료보험제도까지···미스치프의 ‘뼈 있고 값비싼 장난짓’
‘뼈 있고 값비싼 장난짓’.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대림미술관이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 ‘MSCHF: NOTHING IS SACRED(미스치프: 신성한 것은 없다)’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1억원에 달하는 의료비 청구서를 세 장의 대형 유화로 제작해 의료비 청구액과 같은 금액에 판매한 뒤 청구서 주인의 빚을 갚아준 ‘의료비 청구서 회화(Medical Bill Art)’ 프로젝트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을 풍자한다.
95년간 유지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저작권이 2024년이면 소멸되는 것을 앞두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 ‘Famous Mouse’와 교환할 수 있는 토큰을 판매한 프로젝트는 디즈니의 과도한 저작권 독점을 비꼬고 저작권법의 모호한 지점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가방을 현미경으로만 간신히 볼 수 있도록 작은 사이즈로 제작해 경매에 부쳐 6만3000달러(약 8400만원)에 판매했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해체해 그 가죽으로 버켄스탁 샌들을 만든 ‘버킨스탁(Birkinstock)’을 선보여 9000만원대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에게 금단의 영역은 없다. ‘장난짓(Mischief)’이란 이름처럼 정치·경제·종교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비 걸고 도발한다. 비판과 풍자를 서슴지 않고, 그를 통해 큰돈도 벌어들인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미국에서 뜨거운 화제가 된 미스치프의 전시는 개막 전부터 관심을 불러모았다. 만화 주인공이 신을 법한 ‘빅 레드 부츠(BIG RED BOOT)’는 래퍼 릴 웨인, 프로듀서 디플로 등 유명인들이 인증샷을 올리며 화제에 올랐고, 나이키 에어맥스 97의 에어솔에 성수를 넣은 ‘예수 신발’은 2019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신발이었다.
좋은 일로만 화제가 된 것은 아니다. 사람 피 한 방울을 넣은 ‘사탄 신발’을 666켤레 제작해 나이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법정다툼은 이들에게 관심을 주목시키는 또 하나의 소동이 됐다.
이번 전시는 미스치프가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세계 최초의 전시로, 화제작 100여점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회화부터 인터랙티브 게임 등 장르의 경계가 없는 다양한 작품을 망라한다. 나이키나 반스로부터 당한 소송과 관련한 문서도 전시 대상이다.
미스치프는 뉴욕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 그룹으로 예술가, 디자이너, 개발자, 변호사 등 3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2주마다 홈페이지에 다양한 범주의 한정판 작품을 ‘드롭(drop·공개)’하는 방식으로 선보인다. 이들의 도발 대상엔 거대 기업, 불합리한 사회제도만 있는 건 아니다. 희소성 있는 상품을 좇고 충동구매를 저지르는 대중의 심리도 꼬집어 비튼다.
지난 8일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루카스 벤텔 미스치프 최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CO)는 “우리는 ‘농담으로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는 영역을 건드리고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게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싶다”면서 “힘 있는 거물이나 대기업, 브랜드 같은 영역을 자꾸 건드리고 세상을 작동시키는 시스템을 건드려야 필요한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총기소지에 대한 비판을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다. 판타지물이나 게임에 등장할 법한 장검을 진열한 ‘Guns 2 Swords’는 총기를 가져오면 검으로 바꿔주는 프로젝트였다. 강도가 약한 소재로 만든 가짜 검이다. 무기의 위력에 비례해 검의 크기가 다른데, 가장 큰 검 앞엔 바주카포가 그려져 있다. 시민들의 청원에 무관심한 공무원과 정치권을 비판하기 위해 어린이 글씨체로 편지를 써주는 로봇을 만든 ‘어린이 십자군(Children’s Crusade)’ 프로젝트에 전시된 편지 다수가 총기소지를 불법화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미술계 또한 이들의 도발 대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불리는 데미안 허스트의 그림을 구매한 뒤 88개 조각으로 잘라내고 남은 프레임까지 판매해 7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또한 앤디 워홀의 드로잉 ‘Fairies’를 2만달러에 구매한 후 999개의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 진본과 섞어버려 누구도 진본과 복제본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판매한 작품도 전시돼 있다. 미술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진품의 가치와 미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프로젝트다.
미스치프는 기성 권력을 조롱하면서 주머니도 두둑히 채웠다. 미스치프가 한정판으로 판매한 상품들은 고가에 팔렸고, 재판매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미스치프는 현대인의 소유에 대한 집착, 희소성 있는 ‘한정판’ 상품에 대한 선호 등을 들여다보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블러(Blur)’는 낮은 해상도로 인쇄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가상의 돈다발을 20달러(약 3만원)에 판매한 프로젝트다. 돈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만에 완판됐는데, 이는 현대인의 충동구매를 극단적으로 실험한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 남발되는 간접광고(PPL)을 풍자하는 ‘Branded Books’도 재치있다. <오만과 편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소설 4권의 텍스트 일부를 간접광고로 대체해 각색한 작품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가 애플워치를 차고 시간을 확인하는 식이다.
미스치프 스스로도 “아티스트 그룹이자 하나의 사업체”라고 소개한다. 케빈 위즈너 CCO는 자신들을 앤디 워홀의 스튜디오였던 ‘팩토리’에 비유하며 “우리의 작업 구조는 많은 예술 작업을 창출할 수 있고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 2층에서는 유명한 ‘빅 레드 부츠’, 크록스와의 협업으로 출시한 ‘빅 레드 부츠(옐로)’, 검정색인 ‘빅 레드 부츠(블랙)’를 직접 신어볼 수 있다. 미스치프가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 운동화의 디자인을 변형해서 만든 신발들도 전시돼 있는데, 반스의 대표적인 신발 올드스쿨을 재해석한 ‘웨이비 베이비’는 법정다툼에 휘말려 신발 대신 소송 서류를 전시했다.
미스치프는 첫 미술관 전시로 한국을 선택한 것에 대해 “한국은 충만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뉴욕에 버금가는 에너지와 열정을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작 중에는 방탄소년단(BTS)을 소재로 한 게임 프로그램과 5만원권 지폐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Blur’) 등 한국과 관련된 작품도 있다.
‘우리에게 성역은 없다. 판매할 수 없는 것도 없다.’
미스치프는 전시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비판과 풍자에 재미와 상업성을 더한 미스치프가 현재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내년 3월31일까지. 3000~1만7000원.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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