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제대로 썩히거나…무한히 재활용하거나 [긱스]

2023. 11. 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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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아무리 플라스틱 재활용에 진심을 다한다 해도, 현실에서 재활용되는 비율은 한 자릿수라고 하는데요. 재활용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에서 분해되는 대체 플라스틱 소재 기술 역시 상당히 진전됐는데요. 아직 실생활에 크게 확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차지은 인비저닝파트너스 파트너가 한경 긱스(Geeks)를 통해 플라스틱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후하게 친 통계를 찾더라도 한 자릿수다(9%). 그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자면 플라스틱이 주는 당장의 편익은 너무 크고, 플라스틱을 줄일 때 얻는 보상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싼값으로 다양한 물성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플라스틱은 쉽게 얻은 만큼 빠르게 문제의 크기를 늘려왔다.

모두가 더 열심히 재활용에 동참하면 재활용률이 대폭 늘어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를 움직일 경제적 동인이 빈약하고 혁신 재활용 기술들이 스케일업의 문턱에서 고전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가 열성적으로 재활용한 플라스틱은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되살아나지도 못한다.

 재활용, 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가

많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현실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이 원활하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플라스틱의 종류 자체가 워낙 다양하고, 여러 소재가 섞인 제품들이 많은데다, 오염률도 높다.

둘째, 균질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모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 재활용 기술력의 한계로 다운 사이클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용한 페트병을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서, 완벽히 분리수거 한 후, 여러 공정을 거쳐 만드는 물건이 저품질 인형 솜이라면 어떨까).

셋째, 석유계 새 플라스틱이 너무나 저렴하다 (재활용된 그 인형 솜이 석유계 소재로 만든 깨끗하고 값싸고 더 잘 부풀어 오르는 폴리에스터 솜보다 몇 배나 더 비싸도 살 것인가).

지지부진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3단계를 다시 가설화 해본다. 1단계, 절대적인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꼭 필요하다면 재활용이 용이한 방식으로 만들고, 이것을 소비한다. 2단계, 수거와 분류 시스템을 선진화하여 널리 확산하고, 이를 위한 분리수거 원칙을 모두가 지킨다. 3단계, 플라스틱을 무한히 재활용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완전히 분해해서 자연으로 되돌릴 기술을 빠르게 스케일업하고 보급한다.

각 단계가 순차적이지 않아도 된다(사실 순차적으로 할 시간이 없다). 임팩트 투자자로서 3단계가 먼저 되면 1단계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유수의 스타트업들과 머리를 맞대왔다. 그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배움을 정리해본다.

 A를 A로, 무제한 반복 재활용

가장 이상적인 플라스틱 재활용은 어떤 모습일까? 플라스틱이 최초에 만든 목적 그대로 다시 쓰이는 것이다. 물병은 물병으로, 옷은 옷으로, 가방은 가방으로. 이러한 접근이 ‘무한하게 반복할 수 있는 재활용’과 ‘비용 최소화’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그러려면 플라스틱의 원재료로 완벽히 분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 기업인 서크(Circ)는 폴리에스테르와 면의 혼방 섬유를 각각의 원료로 분리해서 완전히 재생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의류를 의류로 재활용하는(textile-to-textile) 흔치 않은 사례다. 매년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오는 의류 폐기물은 여러 품목 중에서도 재활용이 특히 까다롭다. 그 이유는 섬유 염료 제거가 어려운 데다 대부분 혼방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간 의류 폐기물을 다루는 기술들은 특정한 소재만 재생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재활용한 제품의 품질이 충분히 좋지 못했다.

서크는 폴리에스터·면 혼방직물을 폴리에스터와 면으로만 분류하는데, 이때 폴리에스터의 원료인 EG(에틸렌글리콜)와 PTA(고순도 테레프탈산), 면의 원료인 셀룰로스 단위까지 분해해서 재생해낸다. 폐섬유를 고품질의 원료로 무한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크 솔루션은 탁월하다. 기존 섬유 재활용 기업들이 폴리에스터 혹은 면과 같은 한 가지 섬유 소재의 시장을 공략하지만, 서크는 전체 섬유 시장의 76%를 목표로 삼는다.

 생분해 대체 소재, 어떤 조건에서도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플라스틱 폐기물의 90% 이상은 소각되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땅에 매립되거나 바다에 버려진다. 국가 간 통용되는 폐기, 수거, 분류에 대한 공통의 기준도 없다. 선진국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출해오다가 해당 국가들이 금지 조처를 내리자 곧바로 쓰레기 대란을 겪기도 했다.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힘쓰는 한편, 플라스틱을 잘 썩도록 만드는 방법도 궁리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에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다. 요즘 비닐봉지로 흔히 볼 수 있는 PLA(폴리락트산) 등의 천연물 기반 소재부터, 의료용 재료로 많이 쓰이는 PCL(폴리 카프로 락톤), PGA(폴리 글리콜산) 등도 원료는 석유계이나 가수분해 또는 촉매 분해가 가능해 생분해성 플라스틱 범주 안에 놓인다.

그런데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모두 자연 상태에서 빠르게 분해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대량의 처리 시설에서 특정한 과정을 거쳐 ‘퇴비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실제 자연 상태에 놓이면 분해까지 수년의 기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마저도 높은 온도나 습도와 같은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 처리 과정에서 생각보다 에너지 소비가 많고 분해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기대만큼 널리 쓰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국 런던에 기반한 인트로픽 머티리얼(Intropic Materials)은 이러한 기존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효소(enzyme) 물질을 추가해 분해력을 대폭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기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제조 공정을 바꾸지 않고도, 플라스틱이 펠릿이나 파우더처럼 소재 단계일 때 첨가제 형태로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의 자체 실험 결과 이 효소 첨가제를 넣은 PLA와 PCL에 40℃ 정도의 상대적으로 낮은 열과 물을 가했더니, 첨가제를 넣지 않은 것보다 98% 더 빨리 분해됐다는 결과가 소개됐다. 사용할 때는 기존의 물성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제품 수명이 다해 버려지면 더 쉽게 퇴비화할 수 있도록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호주 스타트업 샘사라 에코(Samsara Eco) 역시 효소를 활용해 PET나 나일론 같은 플라스틱 소재를 상온 수준의 환경에서 빠르게 분해하여 단량체(monomer)로 재생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인공지능(AI) 기술로 특정 플라스틱을 잘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분석하고 맞춤화된 레시피를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복합 플라스틱이나 오염된 플라스틱도 재생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외에도 미국의 버치 바이오사이언스(Birch Biosciences), 프로틴 에볼루션(Protein Evolution) 등이 효소를 활용해 플라스틱의 분해 또는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는 솔루션을 고도화하는 중이다.

 최대 과제는 결국 스케일업

기존의 한계를 극복한 재활용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물성과 분해성이 모두 뛰어난 플라스틱 대체 소재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큰 이유는 스케일업의 문턱을 넘기가 매우 험난한 탓이다.

대규모 설비 시설이 필연적인 분야에서는 초기부터 매우 큰 단위의 자본지출이 일어난다.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매출 전망이 가시화되거나 그에 준하는 보증을 해야 하는데 초기 기업이 이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 어렵게 투자받아 어느 정도까지는 스케일업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형태와 관행상 채택되기 어려운 방식이라면 오랜 기간 시장 진입에 애를 먹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초기부터 큰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방식으로 스케일업의 돌파구를 찾는 스타트업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스위스의 스포츠 브랜드 (On)이 여러 기후 테크 솔루션 기업들과 협업해 지속가능한 소재의 운동화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신발 밑창의 경우 미국 기반 스타트업인 노보루프(Novoloop)가 개발한 TPU(폴리우레탄계 열가소성 탄성체) 공정을 적용했다.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온(On)이 노보루프(Novoloop) 등 기후테크 기업들과 협업해 만든 운동화. / 사진=On Website

노보루프는 오염된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와 같은 폐플라스틱을 화학적 재활용 방식을 통해 PU(폴리우레탄), TPU, 합성 가죽과 같은 다양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전환하는 플랫폼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노보루프는 펠릿(pellet)이나 필름 단위의 재생 소재를 만드는데, 무엇보다도 기업 고객이 생산 시설을 전혀 바꾸지 않고 이 소재들을 기존의 생산라인에 곧바로 적용하는 데 주력해왔다.

노보루프는 현재 온(On)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 및 산업 소재 기업들과 협업 중이다. 재활용 소재나 생분해 기술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비교적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는 접근 방식을 제시해 스케일업 단계에서부터 이들과 함께 상업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4월 패션 브랜드 자라(Zara)가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컬렉션에는 앞서 소개한 서크(Circ)의 재생 기술로 탄생한 옷이 포함됐다. 서크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차원에서 글로벌 의류 브랜드나 대형 유통회사들이 폐기 재고를 공급하고 서크가 이를 재활용해 새로운 소재로 제공하면, 브랜드에서 다시 신제품을 생산하는 형태의 파일럿 파트너십도 모색 중이다. 의류 브랜드는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서크와 같은 스타트업은 원료 수급처와 제품 판매처를 동시에 확보하면서 상업화 속도를 높이는 유효한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초기 협업을 통해 어느 정도 상호검증을 마치면 큰 기업이 선구매 계약(offtake agreement)을 통해 스타트업의 매출을 보장하는 방식도 고려하기 쉬워진다. 이는 기술 스타트업이 이후 생산 시설 확대를 위한 자본이나 보증의 기반이 되어준다.

올해 4월 공개된 패션 브랜드 자라(Zara)와 섬유재생 기업 서크(Circ)가 협업해 만든 옷 / 출처: Circ

 스케일업의 버팀목이 되어줄 자본의 다각화

스케일업 단계에서 기존 기업들과 선제적으로 손을 맞잡는 스타트업도 있지만, 모든 기술 분야가 이런 접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럴 때 혁신 기술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은 때론 그 등장만으로 강력한 동인을 만든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9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패션산업의 기후 환경 대응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의제로 설정하고, 이를 촉구하는 협약인 더 패션 팩트(The Fashion Pact)를 제안했다. 현재까지 17개국 160개 이상의 브랜드가 이에 동참하면서 다양한 탈탄소 생산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의 3분의 1을 맡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올해 3월부터 소비자가 재사용하기에 부적합한 의류나 섬유 제품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관리 시스템을 생산자가 수립하도록 요구하는 섬유 회수 법안(Responsible Textile Recovery Act)이 발의됐고, 법제화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정책이 공식 발효되면 기존 기업들은 혁신 재활용 기술을 적용하거나 플라스틱 대체 소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될 것이다. 수요를 일으키는 정책은 혁신 기술이 기존 솔루션과의 가격 패리티(동등성)를 어느 정도 맞출 때까지 유용한 방어막이 되어준다.

기후 테크 영역의 스타트업들은 기술이 완벽하게 검증되기 전부터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스타트업 입장에서 초기부터 모든 자금을 지분 투자를 통해 조달하는 것이 부담이다. 벤처캐피털(VC)도 기업 가치가 낮은 상황에서는 그만한 규모의 자금을 집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지분 희석을 일으키지 않는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자본이 늘어나면, 스타트업에 매우 유용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장 물리적인 담보 없이도 외부 기관으로부터 투자받은 이력이 있다면 벤처 대출(venture debt)을 해준다거나, 공장을 건설할 때 생산량의 일정 부분에 대한 선구매 계약 또는 구매의향서 정도를 확보하면 은행에서 이를 근거로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국(DOE)이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활성화된 것처럼 정부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초기 딥테크 기업에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도움이 된다. 성장 단계별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본의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져야만 연구 난도가 높은 기술들이 스케일업의 과정에서 좌초하지 않고 비로소 시장으로 나올 수 있다.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후 테크의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산업의 탈탄소 전환 속도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차지은 인비저닝파트너스 파트너 ㅣ 인비저닝 파트너스 합류 전, 옐로우독, 라인벤처스, 네이버 투자개발실, 라인 글로벌사업팀 등을 거치며 다수의 투자 및 인수합병(M&A), 해외시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기후 대응을 위한 딥테크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과 스케일업을 위한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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