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비빌 언덕 "자립은 함께 잘 살기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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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피해 여성의 자립을 돕는 자활 지원센터 '윙'의 최정은(57) 대표.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윙 건물 1층에 있는 '비덕살롱'에서 만난 최 대표는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윙을 졸업한 여성들이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으며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 대표와 윙의 사회복지사들, 피해 여성들이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며 지난 삶을 재해석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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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피해 여성의 자립을 돕는 자활 지원센터 '윙'의 최정은(57) 대표. 사람들은 그를 '비덕'이라고 부른다. 피해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찾아와 최 대표가 '비빌 언덕'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윙이 지난달 설립 70주년을 맞았다. 1953년 최 대표의 할머니 백수남 원장의 '데레사 모자원'(미혼모 보호)으로 출발해 아버지 최주찬이 '은성원'(저소득층 여성 직업훈련)으로 이어받았고, 1997년부터 최 대표가 '윙'을 맡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윙 건물 1층에 있는 '비덕살롱'에서 만난 최 대표는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윙을 졸업한 여성들이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으며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최 대표는 그간의 활동을 정리한 책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오월의 봄 발행)도 내놨다. "성매매 피해 여성이 숨어서 울고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그가 밝힌 집필 계기. 그는 "책을 쓰면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 윙의 친구들(피해 여성)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라 집필 내내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책은 단체에 관한 백서나 자료집이 아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중서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최 대표의 철학은 '여성과 공부' 장에 담겼다. 최 대표와 윙의 사회복지사들, 피해 여성들이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며 지난 삶을 재해석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내용을 담았다. 윙은 2006년부터 인문학 아카데미 운영을 시작했다. 피해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하루하루의 생계)보다 ‘장미’(내면의 힘)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철학과 역사, 여성학 공부를 통해 피해 여성들이 자활·자립의 기본이 되는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하는 게 공부의 목표였다. 성매매에 대한 기사 분석, 자신의 이야기 쓰기,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상상하기, 소설 재구성하기 같은 치유적 글쓰기 프로그램을 피해 여성들에게 병행시킨 과정도 책에 담겼다.
최 대표는 특히 '능동적 신체에 능동적 영혼이 깃든다'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강조해왔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0년 동안 함께 관악산에 올랐다. 많은 여성이 등산을 하면서 트라우마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증을 극복했다. 최 대표는 "당시에는 등산을 하기 싫어 센터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여성들도 있었는데, 윙의 졸업생들은 지금 등산했던 일을 가장 많이 추억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여성들이 윙 밖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윙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우리끼리 행복했는데 밖에 나가면 잘 섞이지 않는 거였어요. 함께 살기 위해서는 나부터 스스로 잘 살아야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자립은 나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 함께 잘 살기 위한 거예요."
그래서 그는 여성들에게 '일상을 잘 살아가는 법'을 강조했다. 윙 안에서 도움받는 것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윙을 나간 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기 일쑤였기 때문.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 약속을 잘 지키는 것, 손수 밥을 짓는 것,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의 중요성을 되풀이해 얘기했다.
그가 가장 안타까운 점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도 많고, 안다고 해도 나와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다른 삶과 다양한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과 서로 한 번씩 기웃거리면서 맞닿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까.
문이림 인턴 기자 yiri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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