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노병 "국가 발전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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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발전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미국 버지니아주(州)에 거주하는 6·25전쟁 참전용사 강홍건(93)씨가 이 전 대통령 동상 건립에 거액을 기부하며 밝힌 이유다.
강씨는 편지에서 "국가 발전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영향으로 생각한다"며 "이승만 박사의 동상 건립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만에 6·25전쟁이란 국난과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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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발전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미국 버지니아주(州)에 거주하는 6·25전쟁 참전용사 강홍건(93)씨가 이 전 대통령 동상 건립에 거액을 기부하며 밝힌 이유다. 이 전 대통령은 구한말에는 사회 개혁 운동,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독립운동에 각각 몸담았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정부수립 후 초대 대통령(1948∼1960년 재임)을 지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만에 6·25전쟁이란 국난과 맞닥뜨렸다. 소련(현 러시아)에서 최신 무기를 공급받으며 오랫동안 전쟁 준비를 해 온 북한군은 1950년 6월25일 개전과 동시에 우리 군을 밀어붙였다. 변변한 무기가 없었던 한국군은 북한의 기습남침 사흘 만인 1950년 6월28일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미국을 필두로 유엔 참전국들이 앞다퉈 병력과 물자를 보내며 한국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3년 넘게 이어진 전쟁이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의 형식으로 종결된 뒤 이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성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애초 한국과 동맹을 맺는 데 회의적이었던 미국은 이 대통령의 집요한 설득으로 결국 조약 체결에 동의했다.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에서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미동맹 덕분에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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