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에 국 끓이고 치킨 튀기는 로봇···조리사 폐암·근골격계 질환 해결될까
점심시간을 1시간가량 앞둔 22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숭곡중학교 급식실. 학생과 교직원 등 720명이 먹는 이 날 점심 메뉴는 볶음밥과 양념치킨, 쇠고기 탕국, 김치볶음이다. 치킨이 튀겨지며 지글거리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급식실을 넘어 복도까지 진동했는데 조리실 튀김기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기름이 펄펄 끓는 튀김기 3대를 분주하게 오가며 치킨을 튀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육중한 로봇 팔이었다. 조리사들이 손질한 닭고기에 튀김옷을 입히고 2㎏씩 소분해 튀김망에 넣어 놓으면 로봇 팔이 통째로 들어 튀김기에 넣고 탁탁 흔들어가며 골고루 익힌다. 로봇이 완성된 치킨을 꺼내 기름기를 뺀 뒤 조리원이 다가와 내부 온도를 체크하고 배식용 그릇에 옮겨담으면 급식 준비가 끝난다.
튀김기 옆에 있는 볶음용 로봇에서는 교반기가 쉴 새 없이 돌며 잘게 썬 채소와 밥을 섞어 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다. 국탕용 로봇은 손질된 두부와 고추, 다진 마늘 등을 번쩍번쩍 들어서 조리 솥에 부었다.
최근 ‘급식 로봇’이 시범 도입된 숭곡중 조리실에서는 매일 로봇이 닭고기를 튀기고 국을 끓인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폐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 2학기부터 숭곡중 조리실에 로봇 팔 4대를 시범도입했다.
로봇 팔은 조리 삽으로 쉴 새 없이 저어야 하는 볶음, 조리원이 뜨거운 기름 앞에 계속 서 있어야 하는 튀김, 무거운 재료를 들고 붓고 섞어야 하는 국 등의 요리를 사람 대신 한다. 폐에 치명적인 조리흄(고온의 기름에서 나오는 미세분진)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손목이나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단순 반복 작업을 기계로 대체하자는 취지다. 사람이 로봇 근처에 접근하면 이를 감지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다.
조리실 종사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김혜영 숭곡중 영양사는 “뜨거운 기름 앞에서 오전 내내 서 있던 조리사들은 집에 가서도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로봇 도입 후 불 앞에 서 있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라며 “사람이 하면 힘이 달려서 처음 나온 튀김과 나중에 나온 튀김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로봇이 조리하면서 튀김 맛도 균일해졌다”라고 말했다.
급식 로봇은 매일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로봇 산업에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날 로봇 공개 행사에서 숭곡중 학생회장 조형찬군(3학년)은 “로봇이 정말 삶에 가까워졌단 걸 느꼈고, 로봇에 관심이 생긴 친구들도 많아졌다”며 “견학 등 로봇을 체험할 다른 기회도 마련됐으면 한다”고 손웅희 로봇산업진흥원장에게 ‘깜짝 건의’를 하기도 했다.
급식 로봇이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조건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기는 어렵다. 학교마다 조리시설 크기와 구조가 모두 달라 전면 도입은 어렵고, 환기 시설 자체가 미비해 시설 개선이 필요한 곳도 많다. 급식실 노동자들은 조리사 1인당 식수 인원 감축,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숭곡중 급식실을 둘러본 뒤 “급식 로봇 도입과 함께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 식판 세척 외주화 등을 통한 업무경감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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