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모든 암컷의 교활함, 어리석음, 음탕함의 속성을 여자 안에 한꺼번에 투사한다”···최강욱 ‘암컷’ 발언의 기원[토요일의 문장]
“여자? 아주 간단하지”라고 단순한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여자란 자궁이고, 난소이며 암컷이다. 여자를 규정하기에 이 말이면 충분해.”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암컷’이란 수식어는 모욕 같은 울림을 갖는다. 그렇지만 남자는 자기의 동물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가 “저건 수컷이야!”라고 말하면 자랑스러워한다. ‘암컷’이란 말이 경멸적인 이유는 여자의 동물성을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를 그녀의 성(性) 안에 가둬 놓기 때문이다. ……남자는 모든 암컷 동물의 무기력하고 성마르고 교활하고 어리석으며, 무감각하고 음탕하고 사납고 굴종적인 속성을 여자 안에 한꺼번에 투사해 버린다. <제2의 성>(이정순 옮김, 을유문화사) 중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책 제1권 ‘사실과 신화’ 제1부 ‘운명’ 제1장 ‘생물학적 조건’에 쓴 첫 문단 내용이다. 보부아르는 ‘포식한 괴물 같은 흰 여왕개미’, ‘짝짓기 뒤 수컷을 갈아 삼켜 버리는 암컷 거미’ ‘사악한 냄새를 풍기는 발정기의 암캐’ ‘위선적 교태를 부리는 긴꼬리원숭이 암놈’을 예로 들며 ‘속성과 투사’ 이야기를 한다. 남자가 투사한 속성 중엔 ‘결여’도 있다. 책 서론에 “암컷은 어떤 자질의 결여로 인해 암컷이다. 우리는 여자들의 본질을 자연적 결함 때문에 고통받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인용한다.
보부아르는 생물학과 생리학, 철학의 ‘암컷’ 문제를 들여다본 뒤 “생물학의 지식만으로는 종을 영속시키기 위해 양성이 수행하는 역할에서 그중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생물학은) 여자가 왜 타자이냐는 질문에 답변을 주기에 부족하다”며 “존재론적·경제적·사회적·심리적 상황에 전체적으로 비추어 생물학의 조건들을 밝혀야만 한다”고 했다. 이어진 서론에서 “여자를 규정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라고 했다. 책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그 유명한 명제로 이어진다.
보부아르의 책 내용이 떠오른 건 국가인권위 인권교육 전문위원도 지냈던 최강욱의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는 여성 혐오 발언 때문이다. 1949년 출간작인 <제2의 성>은 2023년 한국 사회 현실도 앞서 이야기한 듯하다. 보부아르가 ‘암컷’ 설명에 담은 비판은 최강욱의 발언에도 적용된다. 그의 발언은 김건희를 겨냥한 것이란 추정이 나왔는데 정작 이 발언은 공화국의 ‘권력자 김건희’에 관한 문제를 희석한다. 2016년 광장에서 박근혜를 두고 나온 여성 혐오 발언이 권력자에 대한 비판 취지와 진보의 가치와 동력을 떨어뜨린 점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인용문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였던 이정순이 2021년 낸 번역본에서 따왔다. 파리 4대학에서 ‘보부아르의 철학 사상과 문학 표현’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정순은 보부아르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보부아르 사망(1986년 4월 16일) 3주 전이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612082111015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11211016001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11220932001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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