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고 책임은 하청의 몫?’…과실 인정 않는 현대제철

김지환 기자 2023. 11. 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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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의 작업 중지 요청 무시
현대제철, 사고나자 손해배상 청구
하청업체는 감봉 처분 ‘중징계’
현대제철이 인천공장에 붙여둔 작업중지권 안내 포스터. 금속노조 제공

지난 8월28일 오전 7시30분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 철근을 옮기는 작업 도중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제철 자회사인 현대ISC 소속 노동자가 철근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 옮기다 기중기가 주행 레일에서 이탈했다. 다행히 운전석도, 운반 중인 철근도 추락하지는 않았다.

기중기 운전 실수를 한 하청노동자 A씨는 “중대한 과실”을 했다는 이유로 감봉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금속노조 현대ISC지회는 “부당징계”라며 반발했다. 미리 사고 위험을 감지한 하청노동자가 원청에 이를 보고하고 ‘작업중지’를 요청했지만 원청이 이를 무시하다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대ISC지회는 원청인 현대제철이 처음부터 작업중지 요구를 수용했으면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2일 현대ISC지회에 따르면 현대ISC 노동자 B씨는 지난 8월28일 오전 4시쯤 기중기 운전석에서 일하던 중 기중기 상단 주행 레일에서 충격을 느꼈다. 운전석에서 나와 확인해보니 레일이 휘어져 있어 사진 촬영을 했다. 10분 뒤 레일이 결국 파손되자 B씨는 원청 기중기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레일 사진도 전송했다. ‘일단 대기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B씨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파손 부위에 스토퍼(stopper)도 스스로 설치했다.

압연을 거친 철근 제품이 계속 밀려오자 B씨는 원청 생산 담당자에게 무전기로 “작업중지”를 요구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청은 작업 중지 대신 철근을 쌓아두는 장소를 바꾸도록 했다. 평소엔 공장 왼편 제품장에 철근을 쌓지만 기중기가 왼쪽으로 이동하는 경로의 레일이 파손됐으니 가공이 필요한 제품을 보관하는 공장 오른편에 가능한 만큼만 철근을 임시로 쌓아두라는 것이었다. B씨는 오전 5시10분 작업교대 준비 중에도 생산이 멈추지 않자 다시 작업중지를 요구했다. 이후 B씨는 오전 5시30분 교대근무자 A씨에게 인수인계 뒤 퇴근했다.

A씨도 B씨처럼 평소와 달리 제품을 공장 왼편이 아니라 오른편에 쌓는 작업을 계속했다. 오전 6시30분 현장에 기계정비팀이 도착했고 1시간가량 생산이 중지됐다. 정비팀은 파손된 레일 3m가량을 절단하고 아래로 내리는 작업을 했다. 이후 3m가량 레일이 비어 있는 상황인데도 원청은 생산을 재개했다. A씨는 오전 7시30분 공장 오른편이 아니라 레일이 비어 있는 왼편으로 기중기를 운전하는 실수를 했다. 평소 습관대로 왼편으로 이동시키다 보니 운전석이 레일에서 이탈하는 사고로 이어졌다. 바퀴 4개 중 1개가 미리 설치해둔 스토퍼를 타고 넘어갔지만 나머지 3개는 그렇지 않아 운전석이 더 왼쪽으로 이동하진 않았다.

사고 이후 원청은 현대ISC에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현대ISC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B씨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며 감봉 처분을 내렸다. 현대ISC지회는 기중기 레일 파손은 운전석이 추락하거나 기중기가 옮기던 철근이 떨어져 아래에 있던 작업자가 다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이어서 작업중지 요건에 해당한다고 본다.

지회는 “원청이 수익을 위해 생산을 강행하지 않고 처음부터 작업중지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사고 자체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하청 관계에서 하청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은 무용지물이라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다. 이어 “사고 책임은 무리하게 생산을 한 현대제철에 있고, 어쩔 수 없이 작업하다 실수를 한 A씨는 면책돼야 한다”고 했다. 지회는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현대제철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인천공장에서 기중기 레일 파손을 확인하고 파손 구간에 스토퍼를 설치했지만 작업 중 기중기가 스토퍼를 넘어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작업자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지속해서 현장 안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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