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지원 축소, 한국 영화 5년 뒤 결정할 것”
지난 14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에미, 오스카 등 국제적 권위의 상을 받는 ‘킬러 콘텐츠’를 5년 동안 5편 만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가 나오기 전 문체부는 산하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예술 영화 제작과 독립·예술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 창구인 영화제의 지원 예산을 반 토막으로 축소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 문체부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투자를 추진한다는 대규모 프로젝트와 예산을 삭감한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는 서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까.
영화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모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화제작 ‘지옥’은 연 감독이 2000년대 초반 서울독립영화제에 경쟁 출품했던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에서 싹튼 프로젝트다. 독립 단편 ‘지옥’과 ‘서울역’이 없었다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드라마 ‘지옥’도, 천만 관객의 ‘부산행’도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연 감독뿐이 아니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비트’ ‘서울의 봄’의 김성수부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밀수’의 류승완, ‘추격자’ ‘곡성’의 나홍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잠’의 유재선 감독까지 한국영화 산업을 이끌고 가는 감독들 대부분이 서울독립영화제의 출품과 수상 경험을 안고 오늘에 이르렀다. 독립·예술영화와 상업 대작 영화는 결국 같은 토양에서 자라나는 문화적 결실이라는 의미다.
국내 독립·예술영화의 대표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SIFF)가 이달 30일 49회 행사를 개막한다. 내년이면 반세기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의 김동현 집행위원장을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영화 산업의 동력은 상업영화지만, 미래는 언제나 독립영화에 있다”며 “지금의 독립영화 지원 축소는 한국 영화의 5년 뒤, 10년 뒤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프로그램 팀장으로 서울독립영화제에 합류한 김동현 위원장은 2017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왔다.
김 위원장은 “우리 영화제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 가운데 가장 많은 게 ‘영화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상을 받게 돼 계속할 힘이 생겼다’는 말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받으며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영화인으로 성장해나간다는 뜻”이라며 “독립영화 지원 축소는 영화산업의 미래가 되는 싹을 뽑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영화제엔 장편 152편, 단편 1222편이 출품됐다. 한국영화 위기론이 대두하고 있지만 국외 영화제 관계자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의 출품 열기는 줄지 않았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창작자뿐 아니라 관객도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젊은 영화제다. 그만큼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이슈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신진 영화인들이 도전하는 단편들의 경향이 빠르게 바뀐다”면서 “미디어의 다양화 영향으로 화면 비율도 16대 9 같은 고전적 시네마스코프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많고, 같은 주제라도 서사나 흐름이 더 세밀화,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관한 영화라면 전에는 이들의 정체성이나 이로 인해 빚어지는 어려움 등에 주목했다면 지금은 이들의 서로 다른 일상을 깊숙이 다루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어릴 때부터 영상을 직접 만지면서 노는 세대인 만큼 영화 창작의 문턱이 낮아져 영화 비전공자들의 출품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김 위원장은 “사회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이전 독립영화에 비해 자신을 사유하는 영화가 많아지면서 개인이나 가족, 친구의 울타리는 넘어 바깥을 조망하는 시선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영화제는 이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서울독립영화제가 진행하는 포럼의 주제는 ‘함께 영화를 만드는 힘!’이다.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의 압력을 벗어나 사회적 네트워크와의 협업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이를 통해 창작의 영감도 더 넓힐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하는 취지다.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는 장편 43편, 단편 87편 등 총 130편이 다음 달 8일까지 압구정 씨지브이(CGV)에서 상영되며 개막작은 임정환 감독의 ‘신생대의 삶’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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