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전쟁'에 불안한 민항사 조종사들…전자전에 운항 악영향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적국에 전자 공격을 가하는 첨단 '전자전'(電子戰)이 벌어지면서 민항기 운항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연합(EU) 규제당국과 항공사 내부 문건에 따르면 전파 방해나 가짜 신호를 보내는 '스푸핑'으로 항공기들이 위성 신호 수신을 방해받고 잘못된 위치정보나 부정확한 경보를 받는 등 운항에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
미 연방항공국(FAA) 역시 조종사들에게 중동 지역에서 위치정보시스템(GPS) 전파방해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로켓이나 드론이 사용하는 위성 신호를 방해하려는 목적의 무선 주파수 간섭이 부쩍 늘었으며 지난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전쟁이 시작되면서 더욱 늘었다.
현재의 항공기 시스템으로는 이같은 가짜 GPS 신호를 대체로 감지하지 못한다.
항공산업 감시단체 옵스그룹에 따르면 지난 9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향하던 브라질 항공사 엠브레어의 항공기 한 대가 이란 영공에 진입할 뻔했다가 거짓 신호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기수를 돌리는 일이 있었다.
승무원들은 "오토파일럿이 좌우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야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분쟁지역에서 전파 방해는 흔히 사용돼 왔으나 가짜 신호를 보내는 '스푸핑' 공격은 드물었다.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너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 발달로 비용이 낮아지면서 아마추어도 스푸핑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토드 험프리스 오스틴 텍사스대 항공학 교수는 "지난 2년새 달라진 점은 스푸핑이 연구 논문과 실험실 속 이론에서 현장의 실제 사건으로 옮겨 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파방해의 강도와 정밀도가 크게 올라갔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에어버스 항공기에서 발생한 전파 간섭 사건이 전년의 4배 수준인 5만건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했다.
심지어 전장에서 300㎞가량 떨어진 곳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군사 작전상 효율성을 넘어선 문제로 보인다고 유럽항공관제기구(유로컨트롤)는 지적했다.
이 기구는 2018년 이후 부쩍 늘어난 전파방해 대부분이 전장의 드론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곳은 튀르키예부터 아제르바이잔까지 흑해, 키프로스에서 리비아까지 지중해, 폴란드와 라트비아 인근 발트해, 핀란드와 노르웨이 인근 북극 지역의 상공이다.
험프리스 텍사스대 교수의 연구팀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항공기에 텔아비브 공항 상공에 있다는 거짓 신호가 전달되는 스푸핑이 확산한 것으로 파악했다.
옵스그룹 역시 비슷한 보고가 약 50건 있었으며 그중 일부 항공기에는 이집트나 레바논, 이라크 등지의 공항에 접근하고 있다는 가짜 정보가 떴다고 전했다.
전파 방해나 가짜정보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고 그 배후가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스푸핑은 적법한 신호로 보이기 때문에 다루기가 더욱 어렵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인 지난달 중순 이스라엘은 역내 GPS 신호를 제한하면서 조종사들에게 착륙시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의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항공기는 보통 위성 신호 없이도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으며 대형 상업기에는 최소 6종의 대체 항법 체계가 있다.
그러나 전자전 확대에 따른 항공업계의 부담은 전반적인 경제·안보상 문제의 전조일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통신, 전력, 방송, 금융시장 등 전 세계 산업이 정확한 위성 신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성신호가 닷새간 잘못되면 영국에 63억달러(약 8조1천억원)의 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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