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전기톱' 든 경제학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김혜영 기자 2023. 11. 22. 14:03
한때 세계 5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142%가 넘는 인플레이션에 국민의 40%가 빈곤 상태에 놓일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한 아르헨티나가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유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극우 성향의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 때문입니다. 그는 55%가 넘는 득표율로, 집권 여당 소속 세르히오 마사 현 경제부 장관을 10%p 이상 큰 격차로 눌러 당선됐습니다.
밀레이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급격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점진주의, 미온적인 태도, 적당주의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괴짜' 극우주의자의 당선
이런 그는 특히 서방언론을 중심으로 '괴짜' 극우주의자와 같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 스스로가 주장하듯 '무정부주의자'나 다름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작은 정부'와 시장 만능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놓은 핵심 공약은 중앙은행 폐쇄와 자국 통화인 페소화 폐지, 미국 달러화 도입입니다. 우리로 치면 한국은행을 없애고, 원화 대신 달러화를 법정 통화로 쓰겠다는 과격한 주장입니다.
이 외에도 장기 매매를 합법화하고, 총기 규제를 완화한다는 공약도 내놓았는데, 이 공약의 기저에는, 총이든 인간 신체의 장기든 모두 개인이 가진 자산인데 왜 국가가 개인 자산의 거래를 규제하느냐, 이런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삼은 것입니다.
밀레이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무엇보다 자유의 수호자입니다.
또 현재 18개인 정부 부처를 최대 8개로 줄이는 등 정부 규모도, 정부 지출도 GDP의 15% 수준까지 줄이겠다며 전기톱을 들고 유세하는가 하면, 교황을 "더러운 좌파"라고 비난하는 등 과격한 언행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정치 경력은 정작 2021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게 사실상 전부인데,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에게 향후 4년간 나라를 이끌 막강한 권력을 쥐어줬습니다. 이 선택에 담긴 아르헨티나의 민의는 무엇일까요?
"현재 집권 세력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좌파는 물론이고, 한때 집권했던 중도 우파도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했으니, 아예 해법을 달리할 정치 신인에게 권력을 맡겨보자."
그를 선택한 아르헨티나의 민의는?
이게 저희에게 자문해 준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아르헨티나의 '민의'입니다.
간디니|밀레이 지지자
그(밀레이)는 적어도 (집권당 후보인) 마사처럼 정치적 난맥상이나 마피아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사람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손혜현|고려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
아르헨티나는 10년 동안 불황이었어요. (중략) 이런 경제 위기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능력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고 더욱더 상황이 악화되니까 이에 대해서 불만이 커진 거죠.
경제 위기가 지난 4년간 집권한 현 좌파 정부 시기에 더욱 악화됐기 때문에 집권 좌파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우선 이 민의가 나오게 된 결정적 요인인 경제난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말 그대로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년 대비 94%가량이던 지난해 말 소비자물가지수는 점차 오르기 시작해 지난달에는 142% 넘게 급증했는데, 연말까지 185%로 뛰어오를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4천577만 명의 국민들 가운데 약 40%가 빈곤 상태에 놓여있고, 공식 환율은 1달러당 365페소이지만, 암시장 환율을 의미하는 이른바 '블루 달러'는 달러당 900페소가 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런 경제난을 현재의 집권 좌파 페론주의자들은 물론 반페론주의자인 우파 야당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이번 밀레이 당선의 근본적 요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수진 ㅣ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우파 정권과 좌파 정권을 모두 경험을 해봤지만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반복적으로 나타났고요.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도 컸습니다. (중략) 급진적 변화가 아니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밀레이의 승리 요인이라고 봅니다.
"페론주의, '본산'에서 참패"... 페론주의 뜻은?
그런데 여기서 페론주의라는 말, 생소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페론주의는 1940년대 처음 집권했던 페론 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는 정치 이념을 뜻합니다. 주로 복지 확대나 임금 상승과 같은 대중주의 정책이 주목받아서 좌파 포퓰리즘의 원조 격으로 해석되는데, 사실 정치적 스펙트럼이 꽤 큰 이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문남권|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남미학과 교수
(페론주의는) 포퓰리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집권을 위한 정치연대 세력이고, 민족주의적 성격을 가진 경제 모델입니다.
손혜현|고려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
페론주의는 흔히 유기체에 비유됩니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굉장히 유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 적응을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세력도 페론주의죠.
전문가들은 이 페론주의의 '본산'인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가 참패한 게 이례적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도 관련이 깊다고 보고 있습니다. 페론 계열 정당이 아닌 우파 정권이 집권을 하더라도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그 결과 국민들이 급진적인 변화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손혜현|고려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
밀레이가 유세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정치 계급'이라고 표현을 했거든요. (중략) 기득권 정치인들이죠. (중략) 유권자들의 강한 불만과 분노, 그리고 절망감의 표출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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