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던 ‘백남준의 시간’
어맨타 킴 제작·스티브 연 총괄 프로듀서
“예술가는 파괴자다. 우리 사회의 도화선이다.”
20세기 최초의 디지털 크리에이터이자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은 활동 초반 파괴적인 예술 행위에 초점을 뒀다. 텔레비전을 부쉈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도 거침없이 파괴했다. 그는 심지어 관객석에 앉아 있던 예술 동료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기도 했다. 백남준이 이를 두고 “그 친구가 모든 전통을 거부한 사람이었는데 넥타이를 맸더라고. 그래서 잘랐지”라고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고상한 예술이 주를 이루던 당시 그의 예술 행위는 급진적이고 전위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의 파격적인 예술에 불을 지핀 사람은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전위 예술가인 존 케이지였다. 백남준의 삶은 1958년 케이지의 콘서트를 다녀온 전과 후로 나뉜다. 케이지는 당시 무대에서 악기로 괴상한 소리를 내고 물건을 파괴하면서 야유와 멸시를 받았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의 무대가 묘하게 좋았다. 백남준은 그의 무대가 끝날 무렵,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백남준과 케이지는 이후 평생지기가 됐다. 잘린 넥타이의 주인공도 케이지였다.
백남준은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활용한 작품에 매진했다. 나아가 영상, 조각, 설치 작품을 결합해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하는 등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1980년대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시작으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당시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송출된 전위 예술 무대는 온갖 실수와 소통 문제로 엉망이 됐지만, 백남준은 “시도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그 자체에 의미를 뒀다. 요즘은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공유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엔 혁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백남준의 해외 예술 활동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었다. 독일로 유학을 처음 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동양인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었다. 서양인이 지배하는 예술 영역에서 그는 예술가이기 전에 그저 미지의 나라에서 온 황색의 아시안에 불과했다. 그에겐 예술가로서 큰 희망을 찾지 못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모두가 알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던 백남준의 시간을 탐구한 백과사전이다.
영화는 암울했던 그의 독일 유학기, 케이지를 만난 사건부터 세계 전위 예술가 단체 ‘플럭서스’ 참여, 비디오 신디사이저 개발, ‘굿모닝, 미스터 오웰’ 기획 등 그의 굵직한 삶의 궤적을 촘촘히 따라간다. 아울러 오늘날까지 예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그의 행보와 기술적으로 발전된 우리의 미래를 예측했던 그의 시간들을 쫓아간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백남준에 관한 최초의 영화다. 영화는 올해 선댄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텔아비브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코펜하겐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영화는 영국 유력지 가디언이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큐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어맨타 킴 감독은 5년에 걸쳐 다큐를 제작했다. 백남준 영화 제작은 그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킴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던 백남준 아카이브와 영상을 수집하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앨런 긴즈버그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번 영화 제작을 ‘백남준을 사랑하고 탐구하기 위한 노동’이라고 정의한 킴 감독은 “백남준을 단순히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정의할 수 없다”며 “그는 언제나 패턴을 읽었고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영화 내레이션은 유명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인 스티브 연이 맡았다. 그는 백남준 유가족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내레이션은 물론,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도 맡았다. 영화 테마곡은 세계적 영화음악가였던 고(故) 류이치 사카모토가 헌정했다.
12월 6일 개봉.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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