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곡예, 영롱한 물방울…‘태양의 서커스’는 ‘예술’이었다
한 남자가 낙하산을 타고 둥둥 허공을 날며 주황색 국화 셈파수칠이 만개한 들판으로 내려왔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태양의 나라’ 멕시코에 자유낙하한 주인공이다. 관객은 이 주인공과 함께 현실에서 일탈해 멕시코의 신화와 마법을 경험하는 여행자가 된다. 주인공이 땅에 박힌 열쇠를 돌리자 거대한 나비 날개를 펼친 요정이 무대를 휘젓고, 알록달록한 벌새들이 뛰어나와 흥겨운 음악에 맞춰 펄쩍펄쩍 공중제비를 돈다. 세계적인 아트 서커스 그룹 ‘태양의 서커스’의 신작 <루치아(LUZIA)>의 첫 장면이다.
기자가 <루치아>를 관람한 지난 8일은 평일이었는데도 공연장인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빅탑(대형 천막)의 객석 대부분이 채워졌다. 어른과 아이가 손잡은 가족 관객이 가장 많았고 외국인 관객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통상 공연은 공연장에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지만, <루치아>는 야구 경기처럼 팝콘과 치킨을 먹고 콜라, 맥주, 하이볼을 마실 수 있었다. 관객들이 마음껏 웃고, 소리지르고, 발을 구르고, 박수를 쳤다.
공연 제목인 <루치아>는 스페인어 ‘빛(Luz)’과 ‘비(Lluvia)’의 발음을 합친 합성어다.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아찔한 곡예에 빛과 물을 더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입혔다. 물줄기로 ‘레인 커튼’을 만들어 벌새, 꽃, 선인장 등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무대에 쏟아지는 1만ℓ의 물은 여과·소독 과정을 거쳐 재활용한다. 장비와 무대는 곡예사들이 물에 미끄러져 다치지 않도록 특수 제작한 것들이다. 치밀한 물적 토대 위에 펼치는 기상천외한 묘기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술’이라고 부를 만했다.
남성 곡예사가 한줄 스트랩에 몸을 의지해 우아한 공중 곡예를 펼치는 ‘에어리얼 스트랩’은 <루치아>의 백미였다. 곡예사는 고대 멕시코 신화의 재규어 인형과 교감하고, 무대 한가운데 ‘세노테(물웅덩이)’ 위에서 회전하며 사방으로 물을 흩뿌렸다. 육체의 선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과, 물방울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이 독특한 신비로움을 연출했다.
‘아다지오’는 여성 아크로바트(Acrobats)를 남성 포터(Poter) 3명이 공중에 던지는 묘기다. 아크로바트는 마치 무게가 없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던져지면서 다양한 동작을 선보인다. 힘과 균형 감각은 물론 완벽한 호흡이 필요하다. ‘콘토션’에선 인간을 초월한 수준의 유연성을 볼 수 있다. 관객은 정체 모를 덩어리가 사실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곡예사가 차곡차곡 접혀 있던 팔다리를 하나씩 펼칠 때마다 객석에선 신음 소리가 났다. 곡예사는 마치 척추가 없는 생물처럼 허리를 굽힌 뒤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빼내 객석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밖에도 절로 입이 벌어지는 볼거리가 즐비하다. 빗줄기 속에서 후프와 공중그네를 타는 ‘CYR 휠 & 트라페즈’, 6m까지 막대를 쌓아올리며 한 팔로 균형을 잡는 ‘핸드 밸런싱’, 3개로 시작해 7개까지 늘려가며 핀을 공중에 던지는 ‘저글링’, 최대 10m 높이의 두 그네 사이를 오가며 곡예를 펼치는 ‘스윙 투 스윙’, 머리카락을 줄에 연결해 공중을 날아다니며 춤추는 ‘헤어 서스펜션’ 등의 묘기가 이어진다.
서커스의 생명은 ‘흥’이다. 무대를 정리하며 다음 묘기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관객의 흥을 돋우는 볼거리를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 역의 곡예사가 비치볼과 호루라기만으로 관객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내며 시간을 버는 ‘비치 크라운’ 장면을 보면서 ‘태양의 서커스’가 공연을 얼마나 영리하게 운영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후프에 발이 걸리는 등의 실수들이 종종 나왔지만 자연스럽게 수습했다.
<루치아>는 오는 12월31일까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빅탑에서 공연한다. 서울 공연 이후에는 부산으로 무대를 옮겨 1월13일~2월4일 신세계 센텀시티 빅탑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공연 시간은 휴식 25분을 포함해 130분. VIP석 29만원, SR석 19만원, R석 16만원, S석 13만원, A석 9만원, B석 7만원. 전체관람가.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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