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오진 날’ 이성민, “너무 가까이 있다. 살인자 유연석이..”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난 너무 가까이 있다. 놈의 헛소리가 고막을 찌를 만큼.
난 너무 가까이 있다. 놈의 시선이 관자놀이를 쪼을 만큼.
그리고 또 난 너무 가까이 있다. 어느 순간 살의를 품은 놈의 손길이 언제든 내 목을 조를 만큼.
지난 20일부터 tvN 월화드라마로 방영을 시작한 티빙오리지날 드라마 ‘운수 오진 날’(극본 김민성·송하나, 연출 필감성)이 공포의 질주를 시작했다.
그 날, 택시기사 오택(이성민 분)의 하루는 돼지 꿈으로부터 시작됐다. 어딘지 불쾌하고 불안했지만 어쨌건 마지막은 수 십 마리 돼지들과 함께 하는 꿈이었다.
슬리퍼 차림으로 날 듯이 뛰어가 로또를 샀다. 출근해서도 돼지 꿈의 영향력은 십분 발휘됐다. 끊이지 않는 손님들에 상경한 전처와의 해후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 좋고 매사 긍정적인 오택에겐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후배를 믿고 시작한 사업은 후배의 배신으로 오택에게 전과를 남겼고 빚을 남겼다. 아들과 딸은 이혼한 아내가 키우고 오택은 택시기사 일을 하며 근근히 빚을 갚아나가는 중이다.
유쾌한 하루를 보내는 중 아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승현(홍사빈 분)이 사고 쳐 제 누나 대학등록금 400만 원을 날려 먹었고 그 누나에게 휴학을 설득하러 아내가 상경한다는 첩보를 받았다. 어렵사리 아내를 태운 오택은 그 400만 원을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큰소리 쳤다.
빚쟁이가 돈 만드는 방법이라야 뻔할 뻔. 산지사방 돈을 빌리려 애를 쓰지만 100만원 남짓이 영 해결 안되던 중이었다. 그 때 올라탄 예의바른 손님 금혁수(유연석 분)가 제안한다. 묵포까지 가자고. 회사택시 교대시간이라 주저하는 오택에게 100만원을 제시했다.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서울을 벗어나고 고속도로를 올라타면서 알았다. 뒷자리의 손님 혁수는 뜻밖에 수다스러웠다. 오택 입에서 불현듯 튀어 나온 “보기보다 냉혈한이시네!”는 말 그대로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의 맞장구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귀가 의심스러운 반응이 돌아왔다. “야! 나한테 그런 거야?”라면서 터져나오는 욕설. 그 뜻밖의 광기에 오택이 굳어버렸을 때 혁수는 다시 예의바른 손님으로 돌아갔다. 영화 따라한 거라며 고등학교 연극반 때 연습 많이 했다는 넋두리로 상황을 무마했다. 하지만 오택으로선 등줄기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이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혁수는 여전히 수다스러웠다. 그 수다에 넋을 놓다 캠핑카 운전자와 다툼도 있었다. 손해 보는 것이 일상인 오택으로선 한참 나이 어린 캠핑카 운전자의 막말에도 사과하고 속으로 분을 삭일 뿐이었다.
손님의 제안으로 휴게소 화장실을 찾았을 때 다시 캠핑카 운전자와 마주쳤다. 녀석의 안하무인은 이어졌고 지켜보던 손님의 빈정거림도 오택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담배를 피우며 속을 다스리던 오택 눈에 문제의 캠핑카가 들어왔다. 오택은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휴게소를 떠날 때 혁수는 뒷자리가 아닌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이번엔 첫사랑 얘기를 꺼냈다. 이름이 윤세나라 했다. 그저 그런 친구가 아닌 소울메이트였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이별을 통보했단다. 혁수는 세나의 새 남자친구와 맞짱 뜨다 체육특기생인 녀석에게 죽도록 맞았다고 했다. 그 수치심에 무작정 올라탄 버스가 졸음운전 끝에 교통사고를 냈고 그 사고 후유증으로 뇌를 다치는 바람에 혁수는 공포감과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이야기. 하지만 멜로는 여기까지였다. 장르는 호러로 넘어갔다. 전능감을 느낀 혁수는 녀석을 다시 불러냈고 맞아도 맞아도 웃으며 녀석의 공포감을 촉발, 옥상에서 추락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담담함에 귀를 의심한 오택이 “사람을 죽였다고요?”놀라 물었을 때 “아뇨. 그냥 지 혼자 떨어진건데.”란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혁수의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자기가 죽인 사람은 따로 있다고. 노숙자였다고. 혁수는 지갑을 훔치려던 노숙자에게 돈을 건네고 때려죽인 이야기를 같은 톤으로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휴지에 싼 잘린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오택은 확실히 알았다. 내 옆자리를 차지한 손님은 미친 살인마였다.
놈은 말했다. 자신은 묵포 가서 밀항선만 타면 끝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지만 한시가 불안한 오택은 택시 캡의 비상등을 켜고 누군가 알아봐 주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그 신호를 알아챈 승용차 한 대가 따라 붙었고 혁수는 그 신경 쓰이는 승용차를 따돌리고자 졸음운전 쉼터로 접어들자고 요구했다. 그리고 오택은 그곳까지 쫓아온 승용차로 도피하지만 혁수는 승용차 일행 둘을 해치우고 오택마저 노린다.
10부작으로 예정된 이 드라마는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아포리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 없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금혁수 손에 아들을 잃고 그 뒤를 맹렬히 쫓는 열혈엄마 황순규(이정은 분)가 그렇다.
공개된 2회까지의 주 무대는 택시 안이다. 당연히 카메라는 기사와 손님에 집중된다. 주연을 맡은 이성민과 유연석의 연기가 드라마의 추력을 책임진다.
선하고 낙천적인 인물 오택을 연기한 이성민은 공력이 느껴지는 생활 연기로 소시민의 전형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맞닥뜨릴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며 어떻게 각성하고 성장해 나갈 지 자못 궁금하게 만든다.
인상 선한 유연석이 연기한 살인마 금혁수도 성공적이다. 그 선한 인상이 표변할 때 발산되는 뒷 골 서늘한 생경함은 금혁수란 캐릭터가 보통 사람과 사뭇 다른, 이질적인 ‘무엇’이란 느낌을 충분히 완수했다.
제목 ‘운수 오진 날’은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패러디임은 분명하다. 이때 쓰인 ‘오진’이란 형용사는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는 뜻과 ‘허술한 데가 없이 알차다’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드라마의 전개로 볼 때 전자의 의미보단 후자의 의미가 강해 보인다. 그래서 풀어 ‘운수가 오지게 징한 날’ 정도가 적당한 느낌이다. 드라마의 끝에서 주인공 오택도 현진건의 김첨지처럼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고 넋두리 할 것만 같다.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외피를 두른 이 드라마의 여정 끝엔 무엇이 있을까. 너무 가까운 채로 길을 떠난 오택·금혁수 두 사람의 앞으로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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