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재단 중심 보수 행동주의자들 ‘트럼프 재집권’ 실행 나섰다
30년 넘게 워싱턴 현지에서 미국 정치의 속살을 관찰해온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내년 11월 대선 때까지 한달에 한번 이번 선거의 핵심을 짚는 연속 기고를 한다. 김 대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로 압축된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은 물론 한국 사회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가 미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폴 댄스와 러셀 보트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후반기 백악관 내에서 대통령의 가장 충성스러운 관료였다. 댄스는 인사실(OPM)을, 보트는 예산실(OMB)을 관리했다. 이 두 사람은 2020년 11월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이듬해 1·6 의회 습격 사태를 일으킨 뒤에도 계속 그를 옹호하고 곁을 지켜왔다. 댄스와 보트처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했으며 트럼프 정치를 신념으로 여기는 대담하고 과감한 보수 우파 행동주의자들이 백악관 재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 앞서면서,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트럼프 선거운동의 실체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오리무중이다. 2016년 트럼프 캠프는 이해관계로 모여든 선별되지 않은 파워 브로커들이 중심이 됐다. 이들은 대부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 트럼프가 재선에 뛰어들자 이들이 (트럼프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로 대거 몰려들었다. 트럼프 선거팀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전략적 역할을 맡기고 있다.
가능성이 높아진 ‘트럼프 2.0’ 행정부에 대비하려면, 이들의 선거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댄스와 보트 같은 이들은 트럼프의 재집권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댄스의 ‘프로젝트 2025’, 보트의 미국재건센터(Center for Renewing America), 미 국내정책위원회의 이사를 지낸 브룩 롤린스와 국가경제위원회에서 일한 래리 커들로가 2021년 공동 설립한 ‘미국우선정책연구소’ 등이 트럼프의 선거운동과 직접 연계하며 조직과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도 트럼프 유세를 따라다니면서 캠페인을 주도하는 전국적인 청년조직인 ‘터닝 포인트 유에스에이’, 보수주의 정치지망생을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워싱턴에 설립된 ‘아메리칸 모멘트’가 활동 중이고,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마크 메도스가 회장을 맡고 있는 보수주의파트너십연구소도 트럼프 재선운동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는 주요 거점은 헤리티지재단이다. 보수주의의 영구집권 전략이라고 알려진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는 2022년 초 트럼프의 재기를 염두에 둔 댄스가 헤리티지재단의 케빈 로버츠 회장을 설득해 재단의 공식 사업으로 시작됐다. 대선을 일년 앞둔 지금 ‘프로젝트 2025’는 워싱턴 내의 가장 유력한 싱크탱크의 활동으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헤리티지재단의 웹사이트에 올라오기 전까지 워싱턴 의회 부근에는 ‘트럼프의 당선을 대비하는 사업’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또 이와 관련한 몇쪽짜리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여기에는 80여개의 범보수주의 운동 재단들이 망라되어 있다. 2021년 부임한 로버츠 회장은 트럼프가 아니고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가깝다. 댄스가 진행하는 트럼프 재집권 프로젝트 2025는 로버츠 회장의 디샌티스 지지와 충돌이 예상되지만,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의 확정된 상황이라 큰 문제는 되지 않을 듯하다.
프로젝트 2025가 세상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11월 초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되면서부터다. 댄스는 이 프로젝트가 수천명의 보수주의자를 워싱턴에 모아 트럼프의 비전에 더 가깝게 연방정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일 행정론(The unitary executive theory)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선 연방정부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관된 방식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 연방 공무원의 선임과 해임은 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에 의한다는 지금 시스템과 대조되는 주장이다. 즉, 연방 공무원의 선임과 해임을 대통령 마음대로 하겠다는 내용이다. 보수주의 관점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의 ‘뉴딜 정책’(대공황 극복을 위해 루스벨트 행정부가 추진한 적극적 경제 정책)과 린든 존슨(1908~1973)의 ‘위대한 사회’(빈곤 해소, 교육 확대, 인종차별 철폐 등을 목표로 1965년 시작된 존슨 행정부의 사회개혁 정책)로 만들어진 워싱턴은 방대하고 무책임하다고 주장하며 자유주의적 관료제를 뒤집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100만명 정도인 연방 근로자를 대폭 축소할 방침이다. 법무부 자금을 삭감하고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를 해체하며 교육부와 상무부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지난 몇년 동안 트럼프의 정치적 존재를 방해했던 텔레비전과 인터넷 회사에 대한 규칙을 만들고 시행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 연방거래위원회(FTC)와 같은 독립기관을 대통령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프로젝트 2025는 정책·인사·훈련 세 분야로 나누어졌다. ‘비판적 인종이론’(CRT: 미국의 인종차별이 사회제도 등 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이를 개혁하려는 이론)을 반대하고, 이민을 규제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즉각 추방하고 국경을 철저하게 단속하려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를 거부하며 화석연료의 추출 및 사용을 촉진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첫날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취소하려 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고 성소수자(LGBT)의 권리를 부정하고 지원을 금지할 예정이다.
이런 내용은 트럼프의 귀환이 현실화될 경우 지난 첫번째 임기(2017.1~2021.1)와는 차원이 다른 미국이 등장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들은 또 살생부를 만들어 백악관 입성 첫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연방 공무원들을 즉각 해고하려 한다. 트럼프는 얼마 전 선거운동 영상에서 “연방정부의 교육부에 침투한 급진주의자, 광신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찾아내 축출할 것”이고, “미국 대통령이 모든 행정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배신한 이전의 부하들도 처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윌리엄 바 전 법무장관,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전 백악관 변호사 타이 코브 등을 언급했다. 복수와 보복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은 미국 국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국민 가운데 3분의 2가 이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은 상식적인 미국인들에게 기본적인 민주주의 통치 원칙을 재확인할 것인가, 폐기할 것이냐의 선택이다. 그래서 이번 미 대선은 2020년 선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아니고 정상 상태에서 치러진다는 점이다. 선거를 꼭 일년 앞둔 11월 초 뉴욕타임스가 경합주 6곳에서 지지율 조사를 했다. 5곳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보수주의 확장 운동과 자신의 정치적 성격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보인다. 딥 스테이트(권력적 기득권층)를 공격하는 연대 전선이다. 바이든의 선거운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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