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읊고 손흥민 소환한 윤 대통령…영국 의회서 영어 연설
"영국이 비틀스·퀸·해리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갖고 있다면, 한국엔 BTS·블랙핑크·오징어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습니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웨스트민스터 의회 로열 갤러리에서 한 영어 연설에서 양국의 문화예술 매력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영국 의원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양국이 기존 관계를 '글로벌·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가운데 음악·영화·스포츠와 같은 '소프트 파워'를 공통점으로 내세워 상호 친밀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연설문 제목은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A friendship to turn our challenges to pure opportunity)이었습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라는 해당 구절을 영어로 그대로 읊었습니다.
이외에도 영국 인사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이 창조적 동반자로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며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는 윈스턴 처칠 수상의 어록을 인용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처칠 수상을 꼽아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북한의 핵 위협 등으로 국제사회가 분열하고 있다면서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의 말도 인용했습니다.
"문명은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발전한다"는 표현입니다.
윤 대통령은 "역동적인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온 한영이 긴밀히 연대해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영국 출신 인사들도 함께 소개됐습니다.
1887년 신약성서를 한국어로 최초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뒤 한국 독립에 앞장선 어니스트 베델 선생, 1916년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 와 독립운동을 한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등이 거명됐습니다.
한국 전쟁 참전도 한영 관계의 결속력을 상징하는 핵심 소재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1950년 영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8만 명의 군대를 파병했다"며 "이들 중 천 명이 넘는 청년들이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연설에는 6·25 전쟁 참전 용사인 콜린 태커리 옹이 자리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의 명예 보훈장관인 콜린 태커리 옹을 모셨다"며 "깊은 감사와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태커리 옹이 2019년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최고령 우승자라고도 소개하자 좌중에는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태커리 옹이 올해 7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아리랑'을 불렀던 일화도 언급하면서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였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제임스 칸 중령이 이끄는 영국의 글로스터 1대대가 임진강 설마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도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외국 의회에서 외국어로 연설한 것은 지난 4월 국빈 방미 때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현지 언어로 연설해 정치인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는 시도라는 게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셰익스피어 등의 인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입니다.
이날 의회에는 존 맥폴 상원의장, 린지 호일 하원의장, 자민당 당수이자 한영 친선의원협회장인 에드 데이비 하원의원, 데이비드 얼튼(북한에 관한 초당적 그룹 의장) 상원의원 등 총 450여 명이 빼곡히 들어섰습니다.
17분가량의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약 30초간 박수를 보냈습니다.
연설 중간에는 한 차례 박수가 나왔습니다.
시작과 끝을 포함 총 3번의 박수입니다.
맥폴 상원의장은 연설이 끝난 뒤 감사 인사를 전하며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국빈 방미 당시 불렀던 '아메리칸 파이'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오늘은 노래를 못 들어서 아쉽다"고 농담하자 좌중에는 다시 한번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윤 대통령도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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