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원하는 곳에 쏘면 탄착 모여 있어, 마치 꽃잎이더라”

김양희 2023. 11. 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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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인터뷰]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 이장호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 이장호가 16일 경기도 이천 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의 노동은 일찍 시작됐다. 중학생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할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3시간 동안 일을 하고 학교에 가기 일쑤였다. 고교 때는 나이키 신발이 너무 갖고 싶어서 가끔 주말마다 막노동을 했다. 트럼펫 부는 것을 좋아해서 육군 군악대에 지원하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상 육군 부사관으로 직업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4년 뒤 덜컥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한 살, 이장호(청주시청)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군의관은 응급수술이 잘 됐다고 했는데 아니었어요. 재수술 시기를 놓친 게 컸죠. 6개월만 재활하면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갑작스럽게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삶. 휴가 도중 사고여서 국가유공자가 되지는 못했다. 사고 등으로 후천적 장애를 안게 된 이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수년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는 한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인데 후회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현실을 바로 받아들였어요.”

2011년 국립재활원에서 처음 장애인 사격을 접했다. 군인 신분일 때 사격 교관도 했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다. 3~4년 간 의료기기 영업을 하면서 운동을 했는데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운동에만 전념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신인 선수 발굴 프로그램이 많은 도움이 됐다.

2016년 리우패럴림픽 참가 자격을 따기 위해 대출을 받고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패럴림픽 첫 종목(R1 남자 공기소총 입사 SH1)에서 덜컥 4위를 했다. 마지막 발 실수로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아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주위에서는 많이 안타까워 했으나 스스로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사(R3 남자 공기소총 SH1) 종목에서는 깜짝 동메달을 땄다. 엉덩이에 염증이 생겨 매일 밤 고름을 쥐어짜면서 경기에 임했던 터라 더욱 기억이 남는다.

리우패럴림픽의 성과는 그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막연하게 휠체어만 타고 다니던 이장호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그는 표현했다.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 때는 은메달(복사)을 목에 걸었다. 도쿄패럴림픽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여러 사정이 겹치며 메달을 따지 못했다.

이장호는 “난 늘 절실하게 살아왔다”고 했다. “항상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에 간절하게 매달린다”고도 했다. 작년 세계선수권 때도 그랬다. 입사 경기 도중 열이 40도까지 올랐는데도 사대에서 표적에만 집중했고, 당당히 1위를 했다. 경기 뒤 그는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링거까지 맞아야 했다. “사격은 정말 기본이 되어야 10.9점을 쏠 수 있어요. 주변 환경이나 몸 컨디션에 상관없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데, 한 발을 쏘기 위한 행위는 기계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 이장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공기총의 무게는 5.46㎏. 그는 총을 들어 자세를 유지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격발 직전까지의 행위를 무한 반복한다. 실탄은 많이 쏘지 않는 편이다. 기본자세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총알은 원하는 곳에 꽂힌다는 사실을 안다. 일단 총을 들면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그렇게 그는 한다. 이장호는 “경기 도중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실수를 의식하면 다음 발을 못 쏜다”면서 “결국 실수를 덜 하는 선수가 시상대에 오르는데 훈련할 때부터 심리, 멘탈적으로 잘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10월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때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목표는 이제 “그랜드슬램(장애인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패럴림픽에서 모두 1위를 하는 것)을 달성하는 것”이 됐다. 2024 파리패럴림픽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지금껏 화약총 복사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온 적이 없어서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요즘에는 클레이 사격에도 관심이 간다. 총으로 하는 종목은 다 시도해볼 참이다.

사격은 과연 그에게 무엇일까. “사격은 내가 그동안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줬어요. 나 자신을 온전히 보게 됐죠. 사격할 때는 진짜 너무 차분해져서 ‘나도 섬세한 부분이 있구나’ 깨달아요. 다른 사람들도 사격 전후로 달라진 제 모습에 아주 놀라워하지요.”

그는 “총을 잘 쏘면 탄착이 모여 있는 데 정말 예쁘다”고도 했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그러면 탄착이 하나둘 엇나가 있는데 원하던 대로 쏘면 탄착이 모여 있어 마치 꽃잎 같다. 이장호는 “요즘에는 막연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 이장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장호는 최근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옆에 있던 소방관들 십수 명이 모여서 생일 축하하는 모습을 보고 몰래 밥값을 계산해줬다. 이를 알고 다가온 소방관에게 그는 “너무 많이 고생하시는 것을 잘 안다. 저도 나라 세금으로 사는데 이렇게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제가 더 영광”이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는 “음식값 결제하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더 많이 베풀기 위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직업 군인일 때도 총을 쐈고, 지금도 총을 쏜다. 하지만 과거의 총과 현재의 총은 다르다. 그가 당기는 방아쇠에는 목표가 있고, 그 끝에는 또 다른 성취가 있다. 이장호는 “장애를 갖고 집에만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한 번 여는 것이 어려울 뿐 이후에는 별것 없다”면서 “어차피 계단으로 올라가느냐, 돌아서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운동하면서 삶의 다른 희망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른넷, 이장호는 오늘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삶의 예쁜 꽃을 그리고 있다.

이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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