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타는 작품』 윤고은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려는 능동적 인물들⋯ 골목을 막 돈 느낌”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11. 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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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집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그에게 머리를 감는 순간은 어떤 생각들이 모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색 신호를 기다릴 때처럼. 불현 듯 며칠 전 인터뷰와 답변이 떠올랐다. 마당이 딸린 개?

“개요!” 그러니까 언젠가 인터뷰에서 어떤 동물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소설가 윤고은은 흔쾌히 대답했다. 대답은 조금 더 이어졌다. “이왕이면 마당 딸린 개였으면 좋겠어요.”

윤고은 작가.
그때 내가 왜 그런 답을 했지? 내 심리에 어떤 게 있었던 거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순식간에 상상으로 바뀌었고, 다양하게 퍼져 나갔다. 사람과 개가 나란히 있을 때, 사람들은 사람을 개의 주인으로 보고 생활의 배경이 되는 집을 당연히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 생각을 약간 바꿔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개가 집의 주인이고, 사람은 거기에 잠깐 초대되거나 잠깐 세 들 듯이 들어온다면, 그렇다면⋯.

“소설의 출발점은 많았습니다. 맨 앞의 출발점은 역시 인터뷰의 답변이었어요. 며칠 뒤 머리를 감으며 다시 인터뷰 답변을 떠올렸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것이죠. 두 순간이 아무래도 소설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와 관련, 그는 ‘작가의 말’에서 영화 「트루먼 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트루먼이 후보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었고, 하마터면 트루먼에 될 뻔했던 다른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고. “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짐작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보이지 않는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접는다. 그 궁금증이 이 소설의 많은 출발점 중 하나였다.”(345쪽)

다만, 시간 부족이 아쉬웠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소설 집필에만 올인할 수 없었다. 그는 대신 먼 길을 출퇴근하는 시간을 소설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소설 집필에만 푹 빠져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그렇게 소설을 써본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다른 일을 하면서 소설을 썼으니까요. 쓰다가 중간에 멈추고 라디오 진행을 위해 출근을 해야 했죠. 솔직히 완전히 고립된 느낌으로 몇 달간 한 작품만 쓰는 게 저랑 잘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소설가 윤고은이 로버트라는 인지 능력을 갖춘 개를 미술계의 큰손으로 등장시킨 발칙한 상상력의 장편소설 『불타는 작품』(은행나무)을 출간했다. 문학잡지 『악스트』에 1년여 연재한 뒤 다시 1년간 수정과 탈고를 거쳤다.

“마당이 딸린 개”를 꿈꾸던 주인공 안이지는 화가를 꿈꿨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뒤 생존을 위해 배달 라이더로 살아간다. 어느 날 예술가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으로 유명한 미국 ‘로버트재단’에서 전폭적인 후원을 하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로버트재단의 로버트는 개인데, 재단의 후원 조건은 전시회 마지막 날에 로버트가 선택한 작품 한 점을 소각해야 한다는 것.

안이지는 재단 후원을 받은 모든 작가들이 큰 성공을 거뒀기에 조건을 수락하고 미국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작품을 불태우라는 스폰서와, 작품을 태워 버릴 수 없다는 작가적 자존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점차 긴장이 고조되는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소각되어도 상관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말이 쉽지만 그런 목적으로 시작했다가도 작가의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걸 놓쳤던 것이다. 정말 그랬다. 한 작품을 소각용 제물로 삼음으로써 다른 작품들을 화염의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소각용 제물을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 로버트를 유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에 그 작품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그러다 정이 들어버렸다. 그것을 제물로 써도 괜찮은 것이었나?”(259쪽)

작가 윤고은은 왜 생각하는 개와 작품 소각을 다룬 작품을 써야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상상력 가득한 윤 작가를 지난 7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작가 후원자가 로버트라는 개인데, 왜 개를 후원자로 설정한 것인가.

“이번 작품의 전신이 된 짧은 동명의 단편 「불타는 작품」이 있다. 역시 개의 후원을 받는다는 설정이었는데, 당시 소설을 쓸 때 만난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개? 다들 이런 반응이었다. 저는 생각하는 실물의 개를 말했지만, 사람들은 자꾸 은유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개에 대해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는 생각과 함께 비하의 존재로 여기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로버트는 출발점이 됐던 캐릭터였기에 어렵진 않았다. 로버트가 속 뒤집어지게 쓰는 편지를 쓸 때에는 은근히 묘한 희열까지 느꼈다.”

―완성된 미술품을 소각한다는 설정은 왜 했는지.

“현대에는 예술과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과 작품 안에 스토리가 부여돼 시선과 관심을 끌어야 한다. 로버트재단 역시 작품을 우쭈쭈하는 방식이 아닌 완벽하게 파괴시키는 방식으로 예술을 스토리텔링해 관심을 끌려 했다. 주인공도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눈길을 끌지 못하면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로버트재단의 설득에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각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적인 방식이었다. 처음 어떤 작품을 완전히 없애는 것, 즉 한 작가가 작품을 만든 다음 누군가 그 작품을 선택하면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정도의 조건만 생각했다. 없애는 방식, 훼손 방식은 다양한데, 소각이 상징적이면서도 완벽하게 복구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창작자가 불타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작품이 불태워져 진짜 한 줌의 재가 되고⋯.”

―주인공 안이지는 마지막에 자신의 원작을 보존하려 하는데.

“주인공이 마지막에 진짜 원작을 빼내는데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주인공은 자신이 빼낸 작품이 원작이길 바라지만, 처음 긴가민가 한다. 빼낸 것이 원작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트 딜러는 불타고 있을 때만 진짜이고 빼돌리면 진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사람들도 결과와 스토리에 집착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빼돌리기 위해 두 개의 작품을 만드는데, 작품을 만들 때의 마음만은 진짜일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에는 늘 마음과 영혼이 들어간다.”

―주인공 안이지 작가는 상당히 역동적인 캐릭터이다.

“실제 모델은 없고 모두 상상으로 탄생한 인물이다. 저는 소설 속 인물들이 더 많이 이동하기를 바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을 미국으로 가게 한 것 같다. 전작인 『밤의 여행자들』이나 『도서관 런웨이』 속 인물들 역시 되게 많이 움직였다.(주인공과 작가가 닮았는가) 저도 역시 안이지 작가처럼 미국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다만, 픽업을 하러 오지 않은 로버트재단에 전화를 많이 했을 것 같다(웃음).”

―처음 문예지 연재를 했는데, 단행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1년 2개월간 이뤄진 연재는 작품의 끝은 단행본으로 만나세요, 하고 미완성으로 끝냈다. 주인공 안이지 이야기를 빼고 많은 부분이 바뀐 것 같다. 예를 들면, 작품 속 인턴 직원 샘은 영향력이나 지분이 좀 더 커졌다. 처음 연재할 때에는 주요 인물로 생각했던 게 아닌데, 연재하다가 더 역할을 부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반면, 대니의 경우 처음엔 비중이 컸지만, 샘의 비중이 커지면서 변화를 겪게 된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선 좋아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쓴 작품이다. 나중에 이 작품과 연결될 수 있는 다른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꾸 돌아보고 싶은 지점이 되는 작품 같다. 윤고은의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까. 저는 그 동안 부품이 되거나 소모되는 인물을 많이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인물들은 계속 움직이고 날뛴다. 주인공 안이지가 계약과 달리 위작을 그려서 바꿔치기를 하려고 하는 등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려 한다. 인물들에 능동성을 좀더 부여하려고 한 작품이었다. 그런 면에서 골목을 막 돈 느낌이 든다.”

“선생님, 제가 소설을 쓴 게 있는데 한 번 봐 주실 수 있으세요?” 문학 수업이 끝나자 성일여고 2학년생 윤고은은 복도로 달려가 문학 선생의 앞에 섰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를 닮은 문학 선생은 소설가와 시인 등 작가를 예찬한 뒤 학생들 중에 글 쓰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내 이름을 알까. 내가 어떤 아이인지 알까. 담임도 아닌 문학 선생이, 반장도 아니고 공부도 아주 잘하지 않는 나를 알고 있을까.

“다음 시간까지 가지고 오너라.” 문학 선생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고여서 소설 쓰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물론 문예반 소속으로 소설 읽기를 좋아했던 그 역시 소설을 쓴 적이 없었다. 만약 선생이 봐준다고 하면 쓸 생각이었다.

그는 그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3일 정도 썼을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 행성 교신하듯이,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무려 40대 후반 아저씨를 화자로 내세운 소설이었다.

“도입부가 시처럼 아름답네.” 소설 원고를 받아간 문학 선생은 수업이 끝난 뒤 복도에서 피드백을 줬다. 도입부가 시처럼 아름답다고? 나중에 대학에 입학한 뒤 자신이 썼던 소설을 다시 봤지만,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도입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썼고, 자신이 만든 세계를 읽고 평을 해주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 대학 2학년 때 창작수업 과제로 두 번째 소설을 썼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에서 문창과 교수를 만났다. 교수는 한 마디 툭, 던졌다. “너 이 녀석, 지각만 하는 줄 알았는데, 소설은 재밌더라.” 내가 만든 세계를 재미있어 하다니. 어느 순간 소설 창작이 재미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됐다. 소설가 윤고은의 원점이었다.

“전 채찍 싫어요, 당근이 좋아요. 대학 시절 다른 선생에게도 저는 당근과 채찍 중에서 당근이 먹히는 스타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께서는 나중에 세상에서 귀한 윤고은아, 라고 말해줘 웃기도 했고 늘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죠. 격려와 인정이 힘이 됐던 것 같아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고은은 2008년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도서관 런웨이』를,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등을 발표했다. 이효석문학상,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 등을 수상했다.

“온라인 시상식에 참가해 주세요.”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수여하는 대거상 시상식을 앞두고, 출판사로부터 수상식 참가를 부탁하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장편 『밤의 여행자들』이 다른 5명의 후보작과 함께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냥 소식으로 들으면 안 될까요.” 처음 난색을 표했다. 시상식은 팬데믹 때문에 2년째 영국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 반에 열렸다. 다음날 라디오 방송을 위해서 자고 있어야 할 시간. 수상할 확률도 6분의 1에 불과했고. 출판사는 수상 소감만 문자로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 다시 부탁했다. 아무래도 참가하는 게 좋겠다고.

2021년 7월2일(한국시각) 새벽, 오랫만에 서재에서 혼자 깨어 있었다. 마침 『도서관 런웨이』를 마감 중이라 마감이나 하자며 버텼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컴퓨터 줌에 접속했다. 자신의 소설을 번역한 번역가 리지 뷸러(Lizzie Buehler)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줌으로 수상식에 접속하고 있었다.

진행자는 와인 잔을 들고 행사를 진행했다. 차례로 호명된 수상자들 역시 술잔을 들고 있었다. 잠옷이 아닌 평상복을 걸친 그도 물을 담은 잔을 하나 준비했고, 수상에 대비해 소감문도 미리 준비하긴 했다. 지금 뭐하는 건가.

“윤고은!” 집중력도 점점 떨어지던 순간, 갑자기 그의 이름이 호명됐다. 그를 작게 보여주는 화면도 갑자기 커져서 전체 화면으로 바뀌었다. 순간 당황했다. 미리 준비해둔 수상소감문이 생각나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웜홀에 접속하는 느낌이었다.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거머쥐던 순간이었다.

―작품 세계를 조금 소개해 달라.

“저의 소설이, 작품이 산뜻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약간 무서운, 거대한 주제인데도 산뜻하게 전달하고 싶다. 굉장히 무서울 수 있는 산뜻함 같은. 재미나고 특이하고 신선한 접근법으로 주제에 들어갈 문을 내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구멍을 내서 들어가고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나만의 풀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평론가 염승숙씨는 윤고은 소설의 특징을 ‘재기발랄한 화술’과 ‘색다른 상상력’ 두 가지를 분석하더라.

“그럴 수 있다. 제 소설에는 많은 새로운 직업이나 산업이 나온다. 진부한 방식으로 쓰지 말고, 쓰고 싶은 방식으로 쓰고 싶다. 시치미를 떼고 딴청을 부리는 것 같은데, 막 웃다가 알고 보면 네 이야기야, 어 내 얘기였어, 하며 풍자적이고 블랙 유머 같은 걸 좋아한다.”

―소설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정해진 원칙이 있진 않지만, 글을 쓰는 내내 리듬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 찍기 위해서 좋은 위치를 선점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쓸 때 가상의 좋은 위치를 두런두런 찾다가 여기서 써야지 하는 위치가 있는 것 같다. 이 문장과 저 문장 사이가 계속 흐르듯이 연결이 돼야 쓸 수가 있다. 어떤 사건의 연속일 수도 있지만, 문장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있어야 쓸 수가 있다. 뭔가 아주 미세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있어야 쓸 수가 있다. 조명 같은 것에도 기대려고 하고, 음악 없어도 쓸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음악 같은 것에 기대려 하기도 한다. 리듬감이 속도일 수도 있고, 지루하면 안된다라는 느낌일 수도 있다. 작품을 쓸 때는 지루한 반복이나 부연을 없애려고 하는 편이다. 결국 문체이겠지만. (리듬감이 부족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몰입하고 싶은 지점들은 혼자 소리 내서 읽기도 하고, 글을 출력해 읽기도 한다. 글을 덜어내기도 한다.”

―앞으로 어떤 작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조금 욕심을 내자면, 전작을 읽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어느 집 책장에 넓게 한 줄, 혹은 두 줄을 꽉꽉 채우는 작품을 쓰고 싶다. 그렇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제 소설 중에 단 한 권, 혹은 단 한 페이지, 단 한 줄이라도 어느 독자의 마음속을 일렁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근사하지 않은가, 하고. 사랑은 그런 찰나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볼 것이다. 오전 7시쯤 일어나서 간단히 씻은 뒤 천천히 아침을 먹는 그를. 빈속에 물부터 채운 뒤 채소를 시작으로 코스 요리를 먹듯이. 마치 하루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처럼. 당신은 볼 것이다. 라디오 방송이 있는 날이면 일산으로 출근해 일하고, 약속이 없으면 오후 4시 무렵 귀가하며, 오후 11시쯤 꿈나라로 향하는 그를.

만날 것이다. 왕복 네 시간 안팎의 긴 출퇴근 동안 부지런히 메일을 주고받거나 글을 쓰는 등 여러 일을 하는 윤고은을. 우리는 만날 것이다. 마감이 다가오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도 백화점 화장실에서도 글을 쓰는 소설가를. 장소에 상관없이 조각조각 글을 풀어가는 소설가 윤고은을. 발칙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놀래려는 그의 분주한 마음을.

“일이 시작되면 글을 잠깐 덮어놓습니다. (일과 글쓰기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다녀오니까 머리가 식혀지고 환기가 돼서 그런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요. (일과 글쓰기의)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정서적으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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