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풍자인 사람 [K콘텐츠의 순간들]

“한국 코미디는 글렀다. 제대로 된 정치 풍자 하나 못하면서 무슨 코미디언이라고….” 〈개그콘서트〉가 3년 만에 부활한다는 기사 아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다. ‘제대로 된 정치 풍자’란 대체 무엇일까? 나 또한 〈개그콘서트〉의 코미디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의견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 코미디에 ‘정치 풍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 코미디의 문제가 정말 ‘정치’ 풍자를 못해서인지 묻고 싶다.
코미디언들은 세상의 심기를 헤아리며 장사를 한다. 한국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꺼내기만 해도 ‘불편러’로 낙인을 찍고, ‘다수’의 심기를 거스르면 사상 검증부터 하려 드는 사회다. 외부와 내부를 오가며 위계에 흠집을 내야 하는 ‘풍자’가 사실상 금지된 이곳에서, 그들이 은폐하는 키워드가 비단 ‘정치’뿐인가? ‘정치 풍자를 못한다’는 평가가 한국 코미디에 대한 상투적이고 게으른 비난으로 읽히는 이유 역시 이 지점에 있다.
무언가를 풍자하는 일은 어렵다.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예리한 균형감각과, 관념을 깨고 질문을 거듭 이어가게 하는 구성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다. 용기를 잃은 풍자는 ‘내부’와 ‘외부’를 철저하게 구분 짓고 ‘내부자 되기’ 또는 ‘외부자 되기’를 선택한다. 전자가 보편성을 흉내 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에 집착한다면, 후자는 목소리가 없는 약자와 소수자의 취약성을 타깃으로 삼는다.
이런 코미디를 보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이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풍자일까’보다 ‘이것을 풍자로 볼 수 있나’라는 판단에 생각을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괴롭히고 싶은 대상을 혐오한 뒤 그것을 ‘풍자’라 말하는 코미디에 질릴 대로 질린 나는 뉴스를 보다 멈추고 구글 검색창에 ‘풍자’를 입력해본다. 열 줄이 넘는 자동완성 키워드가 떴지만, 풍자의 정의나 용례 같은 건 없다. 검색 탭에 있는 내용은 ‘풍자 〈또간집〉’ ‘풍자 몸무게’ ‘풍자 성별’ ‘풍자 남자 시절’ ‘풍자 극혐’ 등이었다. 나는 웃고 말았다. 풍자에 질려 풍자를 검색했더니 그 결과가 이미 무언가 ‘풍자’된 것이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풍자 코미디’여서.
‘풍자’에 목마른 세상에 이름이 ‘풍자’인 사람이 나타났다. ‘여자예요? 남자예요?’란 물음에 ‘전 풍자예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풍선’을 많이 모으기 위해 방송을 시작한 트랜스젠더 여성 풍자는 삶의 풍파를 타고 풍진 세상을 위로하며 이름처럼 활약했다. 5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풍자테레비〉에서 경험을 각색해 ‘썰’로 만드는 능력과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시원스레 해결하는 능력을 입증한 그는, 2022년 자신의 채널을 벗어나 웹 예능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의 게스트, 〈바퀴 달린 입〉에 패널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활동 범위를 본격적으로 넓혔다. 선을 지키며 구사하는 독설과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적절한 자학은 ‘한눈에 이목을 끌어야 하지만, 결코 논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유튜브 환경에 적합한 재능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풍자는 ‘모두가 탐내는 유튜브 인재’가 되어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예능에 초대받았고, 마침내 방송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호스트로 낙점되어 현재 가장 뜨거운 맛집 방송 〈또간집〉의 대성공을 이끌었다.
‘뉴 미디어’의 ‘뉴 캐릭터’를 항상 주시하는 텔레비전 방송사 또한 풍자를 탐냈다. 풍자가 처음으로 초대받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였다. 해당 방송에서 풍자는 태어난 성별과의 불화를 시작으로 어머니의 사망과 아버지와의 갈등,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자신의 지난 과거와 가정사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이런 솔직한 고백은 의도치 않게 ‘사연에 약한’ 특정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반향은 그가 레거시 미디어로 입지를 넓히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후 〈히든싱어〉 〈고딩엄빠〉 〈세치혀〉 〈미운 우리 새끼〉 등 다양한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 풍자는 “모든 세대에게 인정을 받아야 진정한 대중 방송인”이라는 본인의 목표를 지키듯 방송 장르, 소재, 출연자, 시청자의 특정성에 구애받지 않고도 자신의 고유한 유머를 잃지 않는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역사를 되짚으며 설명이 길어졌지만, 풍자가 현재 유튜브·케이블·지상파를 종횡무진하는 ‘대세 예능인’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기존 미디어가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이자, 기존 미디어가 원하는 ‘일 잘하는 경력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그는 기존 미디어가 지워낸 ‘잊힌 얼굴’이자, 자신을 배척한 세상에 침입해 마치 그 세상이 그를 초대하고 환대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천부적 ‘풍자꾼’이기 때문이다.
‘꽃자’는 풍자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지만 먼저 인기를 끈 트랜스젠더 여성 유튜버다. 꽃자의 말은 풍자보다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고 그래서 중독적이다. 그는 언제나 ‘나는 너희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태도를 유지하며 성소수자 혐오, 트랜스젠더의 건강, 페미니즘 등 이른바 ‘민감한’ 주제에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내놓는다. 그래서인지 꽃자가 언젠가 방송에서 ‘트랜스젠더가 된 걸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하던 모습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응. 후회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성별, 수술(트랜지션) 같은 걸 후회하는 건 아냐. 그냥 어딜 가든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이에요’ 하고 밝혀야만 하는, 이런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고 지겨운 거지.”
풍자가 풍자하는 것
풍자, 꽃자를 비롯한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은 대중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갖는 호기심을 충족하며 인지도를 쌓는다. ‘트랜스젠더 신검 1급 받은 썰’ ‘호르몬을 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드립니다’ ‘남자 시절 사진 대방출’…. 그들의 채널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동영상은 대부분 그들의 ‘몸’에 관한 이야기다. 보편적이지 않은 몸의 경험과 자학에 익숙한 이들 특유의 유쾌함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구독자는 빠르게 늘어난다.
그러나 채널이 커질수록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소통’ 방송의 특성은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에게 매일 자신의 몸과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청문회가 되고 만다. ‘성실하게 듣고 과도하게 공감’하는 텔레비전 속 풍자의 모습 또한 이런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의 공통된 경험에서 비롯된 방어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풍자는 몸에 대한 이야기는 유튜브에 두고, ‘아무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로 시치미를 떼며 텔레비전 세상에 존재한다. 그가 사용하는 소수자의 은어를 알아듣거나, 그의 방송에 한 번이라도 댓글을 단 적 있는 사람만이 풍자의 이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래서 사람들이 풍자를 향해 ‘선을 지키고’ ‘논란을 만들지 않는다’는 칭찬을 할 때, 은밀하게 박장대소한다. 풍자에게 ‘다음’ 전략이 있든 없든, 그는 원래 ‘존재 자체가 논란’인 사람이며, 이미 무수한 선을 넘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풍자를 비롯한 많은 트랜스젠더 유튜버로부터 나는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깨달음은 동시에 나에게 사회의 권력관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이 관점에서 ‘풍자 코미디’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풍자는 권력의 차이를 이용해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주류 미디어’에서 완전히 지워지거나, 거부당하거나,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존재들이 끝내 아무도 자신을 환영하지 않던 곳에 제 발로 들어와 마치 그곳에 원래 있었던 사람처럼 태연하게 웃고 떠들며 세상을 풍자한다.
풍자의 ‘정상적인’ 행보를 응원하는 것은 타인의 몸에 대한 ‘다름’과 ‘이상함’에 친숙해지고 무뎌지는 일, 그들을 향해 품은 숱한 질문들을 나에게 던져보는 일과 함께 가야 한다. 아직도 ‘제대로 된 풍자 코미디’를 기대한다면 풍자의 대상에 나를 두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자리를 바꿔 앉는 것은 무척 효과적일 것이다. 진정한 풍자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없애는 용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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