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법 난망인데 예산부터 내놓으란 정부…예결위 간사도 “기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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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 첫 회의가 열린 지난 13일, 회의장에선 야당 예결위원 여럿이 얼굴을 붉혔습니다.
"관련 제도가 미비하거나 누가 봐도 감액이 뻔하게 논의되는데 (감액에) 동의하지 않고 이걸 우리가 다 보류로 넘겼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권위를 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듭니다. 다음주에 법안 심사가 있으니까 예산을 통과해 달라는 걸 우리가 눈가리고 아웅 하듯이 '보류로 하자'고 하는 것은 너무 황당한 일 아닙니까? (정부의 행태에)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위원회의 권위와 권능에 스스로 침 뱉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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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을 통과시키고 나서 예산을 요구해야지, 예산부터 턱 올려놓고 이러면 누가 동의를 하겠어요?” (박재호 민주당 의원)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기재부 차관님! 이거 근거 없지요? 근거 마련하고 하시지요. 추경으로 하시든가.” (조응천 민주당 의원)
2024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 첫 회의가 열린 지난 13일, 회의장에선 야당 예결위원 여럿이 얼굴을 붉혔습니다.
정부가 올린 예산안의 한 사업 항목 때문입니다. 정부는 모바일신분증 플랫폼 구축 및 운영 사업에 163억원을 편성했는데, 야당 의원들은 입을 모아 감액을 주장했습니다. 아직 국회에서 입법도 마치지 못한 사업인데 행정안전부가 예산을 올린 탓입니다. 입법은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위한 사전 절차인데, ‘긴축 기조’를 강조하는 정부가 법적 근거도 없는 예산을 편성한 것이지요.
예산소위 회의에서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법적으로는 내일 모레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이 법안을 논의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안 유지를 원합니다.”
‘법안이 곧 통과될 것이니 예산을 통과시켜달라’는 것인데요. 이에 야당 의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민주당 소속인 박재호 의원은 “진짜 그런 말을 하면 좀 부끄럽지 않나. 그동안 뭐했나”라고 비판했고, 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차관이 어떻게 아나. 우리가 동의 안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예결위를 거쳐 간 국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선 예산 확보, 후 입법’이 드문 사례는 아니라고 합니다.
5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 정권의 역점사업을 구현해야 하는 정부·여당이 종종 입법과 동시에 예산 처리를 진행한다는 거죠. 이렇게 ‘지름길’을 찾는 경우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입니다. 적어도 쟁점 없이 여야가 동의하는 사업에서만 용인되는 관행이란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릅니다. 모바일 주민등록증 사업을 위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은 해킹 등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인해 몇 년째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는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 2023년 예산안 편성 당시에도 상임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입을 모아 예산부터 편성한 행안부를 나무랐습니다.
“차관님, 국정감사 때 제가 모바일 운전면허증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도용이 가능하다는 것 직접 보여 드렸지요? 모바일 운전면허증 문제부터 해결하시고 주민등록증 하겠다고 하세요.” (김웅 국민의힘 의원)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여기 국회에서 예산을 지금 다루고 있는데, 법적 근거에 의해서 예산을 다루잖아요. 법적 근거가 있은 다음에 이런 것들을 추진해야 되는 게 순서적으로 맞고요.”(박정 민주당 의원)
결국 우려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로 지난해와 똑같은 장면이 다시 한번 펼쳐진 겁니다. “그동안 뭘했냐”는 비판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삭감.”, “삭감.”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모바일 주민등록증 사업 예산 처리는 “보류해 놨다가 나중에 법안 안 되면 날리자”(송언석 국민의힘 의원)는 여당의 주장에 밀려 결국 ‘보류’되었습니다.
예결위 예산소위 단계에서 ‘보류’는 불패 카드입니다.
모바일 주민등록증 사업 예산만이 아닙니다. 까다로운 사안들은 2주간의 소위 심사가 끝나면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만 참여하는 ‘소소위’로 미뤄뒀다 ‘밀실협상’으로 보내집니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감액심사’에서만 271차례 ‘보류’가 언급됐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보류된 예산들은 거대양당 정치인들의 숙원 또는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날(13일) 예산소위 회의 막바지에 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이 마지막 의사진행발언에서 내놓은 말은 국회의 예산심사 절차를 무력화하는 이런 관행을 꼬집은 걸로 보입니다.
“관련 제도가 미비하거나 누가 봐도 감액이 뻔하게 논의되는데 (감액에) 동의하지 않고 이걸 우리가 다 보류로 넘겼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권위를 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듭니다. 다음주에 법안 심사가 있으니까 예산을 통과해 달라는 걸 우리가 눈가리고 아웅 하듯이 ‘보류로 하자’고 하는 것은 너무 황당한 일 아닙니까? (정부의 행태에)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위원회의 권위와 권능에 스스로 침 뱉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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