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세계 유일의 햄버거 굽는 로봇' 테슬라 같은 로봇 만든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채용난 겪는 고된 조리 일 로봇이 대신해 국내 6개사 도입
전기자동차의 대명사가 된 테슬라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스스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동차를 만들어 혁신을 일으켰다. 자동차를 디지털 도구로 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인터넷으로 소프트웨어를 갱신해 자동차의 기능을 계속 개선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굴러 다니는 스마트폰을 만든 셈이다.
에니아이는 테슬라 같은 로봇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황건필(33) 대표가 2020년 창업한 이 업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햄버거를 굽는 조리 로봇 '알파 그릴'을 개발했다. 알파 그릴은 테슬라처럼 인터넷으로 소프트웨어를 갱신하면 다양한 신메뉴를 계속 추가하고 각종 기능을 발전시킬 수 있다. 미처 생산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드는 것도 테슬라를 닮았다. 서울 상원1길 에니아이 사무실에서 황 대표를 만나 조리 로봇이 여는 신세계를 들여다봤다.
로봇이 알아서 패티 굽고 청소까지 해
에니아이 연구실에서 만난 알파 그릴 로봇은 팔, 다리가 달린 로봇과 달리 가슴 높이 크기의 직사각형 오븐처럼 생겼다. 일부러 식당 주방에 설치하기 쉽게 기존 조리기구들과 모양과 크기를 맞췄다. 오히려 주방에서는 팔, 다리가 달린 로봇이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로봇 한복판에 햄버거용 다진 고기(패티)를 굽는 2개의 그릴이 있다. 여기에 각각 패티 4장씩 총 8장의 패티를 올려놓고 스위치를 누르면 위에서 또 다른 그릴이 내려와 동시에 패티 앞·뒷면을 굽는다. "패티를 뒤집지 않아 빠르게 구워요. 1분이면 패티 앞·뒷면을 동시에 구워서 시간당 약 200장의 패티를 굽죠."
로봇의 장점은 빠르면서 한결같이 정확한 조리다. 사람은 패티를 더러 태우기도 하고 덜 익힐 수 있다. 하지만 로봇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패티를 올리는 순간 그릴의 온도가 변하는데 알파 그릴은 온도 변화까지 정밀하게 제어하고 초 단위로 정확하게 조리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품질로 패티를 구울 수 있죠. 같은 상표의 햄버거라면 로봇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어요. 매장마다 일하는 직원이 다른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하죠."
조리가 완료되면 알파 그릴은 패티를 자동으로 선반에 밀어낸다. 그러면 주방 직원이 이를 햄버거 빵에 끼워 내놓으면 된다. 조리 후 로봇이 알아서 그릴 청소까지 한다. 그만큼 주방 일손을 덜어준다.
알파 그릴이 돋보이는 것은 진화 능력이다. 신메뉴나 새로운 로봇 기능을 개발하면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소프트웨어를 갱신해 로봇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황 대표는 모든 로봇에 인터넷 접속 기능을 내장해 클라우드로 연결시켰다. "부품을 바꾸거나 새로 교체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갱신만으로 로봇을 새롭게 발전시켜요. 계속 가르쳐서 똑똑한 로봇을 만드는 셈이죠."
로봇의 오작동도 인터넷으로 잡아낸다. "모든 알파 그릴의 조리 상황이 에니아이 서버로 실시간 전송돼요. 로봇의 이상 유무를 매장 주방보다 먼저 발견하죠. 직원 실수로 로봇이 오작동하거나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관제센터의 인공지능(AI)이 발견해 알려줘요. 원격 수정이 가능하면 즉석에서 바로잡고 그렇지 않으면 직원이 매장으로 출동하죠."
"사람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고된 주방 일을 로봇이 대체"
하지만 로봇의 등장으로 주방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황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식당 주방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노동 현장 중 하나여서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해요. 특히 패티 조리 과정에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고 구울 때 해로운 유증기도 나오죠. 그래서 사람들은 되도록 주방에서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사람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로봇이 대신 해준다는 설명이다. "로봇이 고된 일을 대신해 사람이 편한 일을 하도록 돕죠. 그래서 알파 그릴이 설치된 매장의 주방 직원들은 좋아해요. 매장 점주들도 로봇 이용료가 최저 임금의 인건비보다 저렴해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위험한 일을 시키지 않아 복지가 좋아지는 셈이니 일석이조죠."
알파 그릴 로봇은 월 165만 원을 받는 구독형 임대 서비스로 제공된다. "유지보수 비용까지 포함돼 신메뉴를 추가하거나 기능을 갱신해도 비용을 더 받지 않아요."
국내 6개사 도입, 공급 부족 사태 빚어
황 대표가 햄버거 로봇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다. 전 세계 단일 요리 메뉴 중 햄버거 시장이 가장 크다. "햄버거 시장이 전 세계 요식업계에서 40%를 차지해요. 햄버거를 먹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죠."
두 번째로 햄버거는 요리법이 정형화돼 있어 로봇을 도입하기 좋다. "햄버거 요리 방법은 복잡하지 않고 빵과 패티, 채소, 양념 등으로 정형화돼 있어요. 로봇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도 사람이 굽는 것보다 맛있는 패티를 만들 수 있죠."
이런 이유로 지난해 선보인 알파 그릴 로봇은 국내 6개사 매장 6곳에 도입됐다. "다운타우너버거, 바스버거, 크라이치즈버거와 CJ프레시웨이가 관리하는 일부 식음료 매장,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식당, 서울 한남동 더백 식당 등에 알파 그릴 로봇이 설치됐어요. 이 업체들은 만족도가 높아 추가로 다른 매장에 알파 그릴 로봇 설치를 원해요."
특히 롯데는 롯데리아의 모든 매장에 알파 그릴 로봇을 도입하기 위해 에니아이에 전략적 투자까지 했다. "내년부터 롯데리아 햄버거는 로봇이 만들 수 있어요."
로봇 개발에 걸린 기간은 1년 6개월이다. 황 대표는 연구실 한편에 전쟁터 같은 주방 환경을 꾸며놓고 로봇을 개발했다. "주방은 덥고 습하며 유증기와 전열기구가 많아요. 연구실에 주방과 똑같은 가혹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로봇을 시험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섭씨 25도 환경에 맞춰 개발한 로봇을 모 업체 주방에 가져갔는데 옆에 놓인 튀김기 때문에 로봇이 뜨겁게 달궈져 온도 감지기가 오작동을 했죠. 결국 전선 피복을 고온에 견디도록 바꾸고 공랭식 냉각장치로 로봇이 달아오르는 것을 막았죠."
이처럼 연구실과 다른 주방 환경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로봇이 주변 환경을 감지기로 자동 수집해 전송하는 기능을 넣었다. 시행착오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로봇이 나온 것이다.
문제는 공급 부족이다. 저렴한 비용과 여러 장점 때문에 주문이 많지만 미처 생산이 따라가지 못한다. "선주문 물량이 500대예요. 일일이 본사에서 조립해 내보내다 보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황 대표는 내년에 새로 공장을 가동해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연간 최대 1,0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인천에 마련했어요. 내년 1분기 가동 예정입니다."
'눈으로 먹는 음식' 기능 추가 개발…미국 진출 예정
여기 그치지 않고 황 대표는 햄버거 요리 전 과정을 처리하는 후속 로봇도 개발 중이다. 연구실에 설치된 후속 로봇은 패티를 구워 빵 위에 얹고 채소를 끼운 뒤 양념까지 뿌리는 모든 과정을 컨베이어 벨트처럼 처리한다. "모든 공정을 처리하는 햄버거 로봇은 내년 말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방 직원들은 매장 관리만 하면 되죠."
기존 알파 그릴 로봇에 시각 효과도 새로 추가된다. "음식은 노르스름한 삼겹살처럼 시각 효과도 중요해요. 그래서 패티가 일정 색깔을 유지해 불 맛을 내는 기능을 내년 말 로봇에 추가할 예정입니다. 필요한 비용은 캡스톤파트너스, 롯데벤처스 등에서 약 40억 원을 투자받아 마련했죠."
햄버거 본고장 미국에도 진출 예정이다. 이를 위해 황 대표는 미국의 대형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와 실증 시험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알파 그릴 로봇 2대를 보내 시험 중입니다. 약 24개월 걸리는 실증 시험은 2025년 종료 예정입니다."
미국 공략을 위해 본사도 델라웨어에 있다. "햄버거 본고장에서 승부를 걸고 싶어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뉴욕에도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미국 증시 상장 목적도 있죠. 미국 투자사들은 현지 법인을 선호해요."
미국 사무실은 영업 조직 위주이며 로봇 개발과 생산은 모두 한국에서 한다. 국내 사무실 직원은 30명이며 이 가운데 로봇공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AI 등을 전공한 25명이 로봇 개발과 생산을 담당한다.
"세계 1위 로봇회사 될 것"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에 입학해 AI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황 대표는 2013년 석사 과정 때 뇌 촬영 의료기기를 만드는 스타트업 오비랩을 공동 창업했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2020년 로봇 개발 회사로 눈을 돌려 에니아이로 두 번째 창업을 했다. "자동차와 로봇 자율주행에 필요한 AI 감지기를 개발하려고 했는데 시장이 크지 않아 성장성이 큰 로봇으로 방향을 틀었죠. 햄버거 로봇을 택한 것도 시장 규모 때문입니다."
마침 황 대표는 햄버거를 아주 좋아한다. "미국 출장 가면 매일 햄버거를 먹고 서울에서도 매주 한 번 이상 햄버거를 먹어요. 시중에 나와 있는 햄버거는 거의 먹어 봤죠."
앞으로 그의 목표는 세계 1위 로봇회사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로봇뿐입니다. 앞으로 로봇 시장도 자동차 산업처럼 몇몇 업체들이 시장을 좌우할 겁니다. 여기서 살아남아 1위가 되는 것이 목표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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