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쓰고 휙' 버리는 플라스틱 빨대 연 24억 개, 재활용도 안 돼
커피산업 성장에 일회용 빨대 사용량 폭증
99% 화석연료 원료·미세 플라스틱 문제도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저감 위한 협약 논의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한 잔, 점심 먹고 또 한 잔. 하루에 커피나 음료 한두 잔 마시는 게 습관이 되신 분 많으시죠. 요즘 같은 쌀쌀한 날씨에는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차가운 음료를 시킬 때면 빠지지 않는 게 바로 '플라스틱 일회용 빨대'입니다.
환경부가 2019년 '1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발표하며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플라스틱 일회용 빨대의 연간 사용량은 20억~24억 개, 젓는 막대는 2억 개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기존에는 음료를 간편하게 마실 수 있어 아동 위주로 사용되던 일회용 빨대가 커피 전문점 산업의 성장과 함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사용량이 폭증했다고 하는데요.
이 플라스틱 빨대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이 화두가 되자 한국 정부도 1년 계도기간을 거쳐 이달 24일부터 카페 등 외식업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었는데, 정부가 지난 7일 이 규제를 철회했기 때문입니다.
환경단체들은 '빨대를 비롯한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 감축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는데요. 빨대가 왜 그렇게 문제인 것일까요.
크기 작은 빨대·병뚜껑 사실상 재활용 안 돼
우선 일회용 빨대는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팀장은 "플라스틱 빨대도 재질로 보면 원칙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수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심코 일반 쓰레기통(생활폐기물)에 버린 경우도 문제지만, 소비자가 신경 써서 분리수거함에 배출했어도 재활용 여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재활용품 선별시설 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연구진이 충청북도 내 공공 선별시설 4곳을 찾은 결과 분리배출된 빨대를 재활용 목적으로 선별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선별시설이란 가정 등에서 분리배출한 재활용 가능 자원을 품목과 재질별로 선별하는 곳을 뜻하는데 보통 수거된 물품들을 쏟아낸 뒤에 작업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선별대 앞에서 수작업으로 재활용 가능 자원을 추려내게 됩니다. 분류되지 않은 잔재물은 매립되거나 소각되고요.
그런데 빨대를 비롯해 병뚜껑, 물티슈뚜껑같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 물품은 수작업 공정상 선별이 어려워 '기타 쓰레기'와 같이 잔재물로 처리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 빨대 안에 이물질이 끼여있는 점도 재활용을 곤란하게 하고요. 선별시설 내 작업자 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세척이 안 돼서 이물질, 오물 등으로 오염된 경우(29명·58%) △뚜껑과 빨대처럼 크기가 작은 품목(6명·12%)은 재활용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70년 사이 생산량 260배 폭증한 플라스틱
빨대를 비롯한 일회용 플라스틱이 '환경 오염 주범'으로 지목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①사용량 자체가 너무 많고 ②대체품도 있는 데다가 ③미세 플라스틱 문제로 생태계는 물론 인체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플라스틱 관리전략 연구'(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중 일회용 플라스틱이 절반 가까이(46.5%)를 차지해서, 일회용품 사용만 줄여도 플라스틱 오염을 줄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99% 화석연료로 제작되다 보니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문제도 있고요.
그린피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대에는 약 150만 톤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3억9,000만 톤에 달해 70년 사이 약 260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너무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거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전 세계 플라스틱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중 9%만이 재활용되고 있다고 하고요.
미국의 비영리단체 '5대 환류대 연구소(Five Gyres Institute)'는 올해 3월 전 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입자가 171조 개에 달하고, 이를 모으면 총무게만 230만 톤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 조직 염증 유발, 면역세포 억제 등 인체에도 유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종이 빨대, 스테인리스·실리콘 소재 다회용 빨대 등 여러 대체품들을 사용하려는 연구와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일회용 컵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빨대 없는 뚜껑'을 도입하는 곳들이 생겼고요. 박정음 팀장은 "탄소배출과 미세 플라스틱 문제에 있어 플라스틱이라는 소재 자체를 점차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공감대"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린피스 "2040년까지 생산량 75% 줄여야"
정부는 7일 플라스틱 빨대 사용 제한 규제 계도기간을 무기한 유예했습니다. 환경부는 '일회용품 감량 정책을 포기한 바 없고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규제 없이 감축 노력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죠.
역설적이게도 한국 정부의 플라스틱 규제는 후퇴했지만, 세계 플라스틱 사용 억제를 위한 첫 국제 협약은 내년 한국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부터 유엔 차원에서 국제 플라스틱 감축을 위해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규제안을 두고 각국 정부가 협상을 벌이고 있고, 내년 하반기 부산에서 열리는 5차 회의에서 협약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플라스틱 빨대 생산과 사용 모두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환경부가 우직하게 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규제 철회라는 굉장히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며 "빨대뿐 아니라 비닐봉투 등 전반적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고 재사용 기반으로 시스템을 전환해야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생산량을 2040년까지 2019년 대비 75% 감축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퇴출시켜야만 '플라스틱 오염'에서 인류와 지구가 해방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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