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 12·12 신군부 반란 다룬 영화
- 2019년 받은 첫 시나리오는
- 다큐처럼 생생한 팩트 묘사
- 오히려 승자의 기록같은 느낌
- 10개월간 고민하며 대본 수정
- 자칫 악당의 승리 미화될 우려
- 1%의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
- 황정민의 연기로 완전히 불식
- 흔들림 없는 수도경비사령관 역
- 신념 강하고 올바른 정우성이 딱
김성수 감독이 44년 전 겨울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갈랐던 역사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신군부의 군사반란과 이를 막으려는 군인들의 긴박한 대결 상황이 스크린 속에 펼쳐진다. 영화 ‘서울의 봄’(개봉 22일)은 도대체 그날 9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41분의 상영시간 동안 보여준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79년 12월 12일에 집에 큰 잔치가 있어서 어머님이 제가 입시를 앞둔 고3인데도 나가서 놀라고 했다. 집 밖으로 나가니 장갑차가 보여 따라갔는데 나중에 도로를 통제하고 총소리가 나더라”며 그날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만큼 놀라고, 무서웠던 당시 기억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뇌리에 남았고, 이후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날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 됐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9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에게서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게 됐다. 김 감독은 “제가 남들보다는 그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아 잘 알고 있다는 자부가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니 실제 기록에 근거해 굉장히 생생하게 잘 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저 혼자만의 생각이긴 했지만,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뇌리 속에 박혀 있던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 같은 만남은 있었지만 ‘서울의 봄’이 영화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무래도 너무 큰 사건이고, 생존한 사건 당사자나 유가족이 있기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인명은 전두광이나 이태신처럼 실제와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또한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이야기가 자칫 승자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김 감독에게 지난할 수밖에 없었던 ‘서울의 봄’의 제작과정에 대해 들었다.
▮누구 시각으로 어떻게 그릴 것인가
잘 알다시피 12·12 군사반란은 주동자인 신군부가 권력을 얻게 되고, 이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시발점이 된다. 김 감독은 “군사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승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바꾸면 역사 왜곡이 되지 않나”라고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였던 점을 이야기했다. 있는 그대로 영화를 만들면 신군부의 승리를 기록하는 영화처럼 될 것이 우려됐던 것이다.
또 김 감독이 받은 ‘서울의 봄’ 시나리오는 당시 사건을 거의 그대로 압축해서 그렸기 때문에 오히려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들어 흥미롭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다. 그는 “‘만약에 내가 연출한다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거의 10개월간 한 듯하다. 그리고 굉장히 하고 싶다는 생각과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광과 그 무리, 그리고 그들의 대척점에서 맞서는 이태신이라는 구도를 잡았다. 이태신 캐릭터는 실제로 역사적으로 있었던 분이지만 더 부각시켜 그 사람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보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서울의 봄’이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전두광과 그 무리가 얼마나 잘못했는지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영화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이유를 설명했다.
그날 사건 기록을 압축했던 시나리오도 방향 전환을 했다.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맞은 사람들이 욕심, 권력욕, 정의감, 두려움 속에서 내리게 되는 결정과 결심, 판단 과정을 보여주고, 그 안에 흥미진진한 액션 스릴러적인 요소를 결합해 대중성도 확보했다.
▮황정민과 정우성, 두 축이 되다
김 감독은 “전두광은 반란군의 리더이자 무시무시한 야욕과 탐욕을 지닌 인물로, 무조건 황정민 씨가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는 어려운 분장 과정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가발을 쓰고 그 인물이 돼서 근사한 연기를 펼쳤다.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황정민을 칭찬했다.
실제 황정민은 대머리 특수분장을 하기 위해 촬영때마다 4시간 먼저 촬영장에 나와야 했다. 김 감독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발 특수분장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첫 촬영하는 날 썼던 가발이 1번이고 맨 마지막 촬영에 쓴 가발이 5번이었다. 찍는 과정에서도 가발이 다섯 번 바뀌면서 더 디테일해졌다”고 가발 후일담을 전했다.
전두광을 표현하기 위해 김 감독과 황정민은 고민을 많이 했다. 역시 목소리, 말투, 행동거지 등이 너무 잘 알려진 인물이고, 자칫 멋진 악역으로 보일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김 감독은 “황정민 씨가 역사 속 그 사람처럼 연기해야 되냐고 묻길래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황정민 씨가 해석한 인물로 연주하면 됐다. 다만 영화라고 해도 실제 역사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대머리 분장은 해야 한다고 했다”고 황정민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황정민은 단 1%도 연민을 느끼지 않게 탐욕의 괴수를 삼킨 인물로 전두광을 표현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가장 어려운 전두광 역할이 풀리자 다음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맡을 배우를 찾아야 했다. 이태신은 나라와 국민을 지킨다는 군의 원래 사명에 충실한 인물로, 반란군에 맞선다. 캐릭터를 볼 때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로 김 감독과 네 번이나 호흡을 맞춘 정우성이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김 감독은 “정우성 씨는 제일 좋아하고 신뢰하는 배우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 이태신 역할을 부탁드린 건 아니다. 조금 가까운 사람으로서 정우성 씨는 신념이 강하고, 생각이 바른 사람이다. 그리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정우성 씨가 이태신을 연기하면 잘 완성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정우성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정우성은 이태신의 마음을 자신에게 이입시켜 반란군에 맞서는 진짜 군인이 됐다.
‘서울의 봄’에는 황정민, 정우성 외에도 비중 있는 조연을 비롯해 대사가 있는 배우가 60여 명 출연한다. 따라서 영화, 방송은 물론 연극까지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김 감독은 “지방 촬영이 많았는데 이분들이 먼 곳까지 와서 분장하고 오래 기다렸다가 주인공들 뒤에서 걸어가는 연기를 하고 가시기도 했다. 이 영화에 모든 분이 십시일반으로 마음과 정성을 보탰다. 너무 훌륭한 분들이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편 ‘서울의 봄’은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촬영을 진행했다. 86회차의 촬영 중 김 감독의 기억에 남는 촬영은 역시 세종로에서 신군부 부대와 이태신 부대가 대치하는 후반부 장면이다. 그는 “실은 그 장면 전체가 다 CG다. 광양 바닷가에 있는 큰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주로 찍었는데, 정부종합청사, 중앙청 세종로 등 보이는 건물은 모두 CG다. 또 워낙 많은 인물이 대치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 장마 기간 푹푹 찌는 날씨에 겨울 군복을 입고 촬영했다. 또 밤 장면인데 바리케이드를 깔고, 탱크를 갖다 놓고 하면 실제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힘들었다. 저희 스태프들이 워낙 베테랑이고, 영화 ‘감기’ 때부터 팀워크를 다져온 터라 다행이었다”고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김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 세력의 기념사진을 보고 관객분들이 역사를 돌아보고,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잘 몰라도 재미있는 영화지만, 그날의 사건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걷게 됐는지 살펴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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