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영, 인류미래 위해 기여할 때"…영국 의회서 영어 연설
FTA 개선 협상…"공급망, 디지털, 무역 협력 기반 다져 나갈 것"
(런던=뉴스1) 나연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영국 의회에서 한국과 영국이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고 강조하고, 양국의 협력 지평을 다방면에서 대폭 확장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국 런던의 영국의회에서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A friendship to turn our challenges to pure opportunity)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연설에 나섰다. 이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응용해 인용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약 15분간 진행된 이날 연설을 통해 한영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이 근현대 세계사의 개척자로서 자유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고, 시장경제 질서를 꽃 피웠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확립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영국이 주도한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선도하고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인류의 자유와 인권 신장, 그리고 비약적인 성장과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이러한 위대한 영국을 이끌어 온 핵심이 바로 영국 의회"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과 한국의 과거 관계도 되돌아봤다. 1883년 수호통상조약 체결, 어니스트 베델 기자가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한국 독립에 앞장섰던 점,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 온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가 독립운동을 하며 장학회를 설립하고 어려운 이들을 보살폈던 점 등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6·25 전쟁 당시 영국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영국은 한국전쟁 당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8만명의 군대를 파병했고, 1000명이 넘는 영국 청년들이 목숨을 바쳤다.
윤 대통령은 "1950년 영국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며 "영국군의 숭고한 희생은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현장을 찾은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 명예 보훈장관인 콜린 태커리씨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재건 과정에서 영국의 도움도 언급했다. 영국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에 2번째로 많은 2684만달러를 출연했고 울산 조선소, 고리원자력발전소, 울산공대 설립 등을 지원해 한국이 신흥공업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도움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기적과도 같은 성공 신화를 써내려 왔다"며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반도체, 디지털 기술, 문화 콘텐츠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문화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수교 14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한영 관계는 새롭게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사이 정보 공유, 사이버 안보 체계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가상화폐 탈취, 기술 해킹 등에 대해 공조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영국의 FTA 개선 협상을 개시, 공급망과 디지털, 무역의 협력 기반을 다져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양국의 협력 지평은 디지털·AI·사이버 안보·원전·방산·바이오·우주·반도체·해상풍력·청정에너지·해양 분야 등으로 크게 확장돼 나갈 것"이라며 영국 의회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과 영국이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기후 대응, 디지털 분야 격차 등 새로운 도전과제에 긴밀히 연대해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혼자 지켜낼 수 없다"며 "한국은 영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불법적인 침략과 도발에 맞서 싸우며 국제규범과 국제질서를 수호해 나갈 것이다. 한국과 영국은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의 정치적 안보와 경제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함께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국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AI 질서 정립을 위해서도 함께 국제사회와 소통과 협력을 견인해 나가자고 했다.
윤 대통령은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협력도 강조하며 "영국이 비틀스, 퀸, 해리포터,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엔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해리포터, 베컴과 손흥민 오른발 얘기를 할때 좌중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이 창조적 동반자로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며 "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증진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인용해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이 연설을 종료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 약 30초간 박수를 이어갔다. 존 맥폴 영국 의회 상원의장은 윤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던 것을 언급하며 이날 노래를 듣지 못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 정상이 영국 의회에서 영어 연설에 나선 것은 윤 대통령이 2번째다. 앞서 2013년 11월 영국을 국빈방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한바 있다.
yjr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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