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현실 속 ‘라이온킹’에 무파사는 없다, 스카만 있을 뿐

정지섭 기자 2023. 11.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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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포착된 수사자의 잔혹한 새끼 살육 현장
무리 점령한 수사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피붙이 아닌 새끼 제거
암컷들도 홀로 남거나 병들어 약한 새끼를 죽이는 경우 보고돼
수사자가 새끼를 물어죽이는 장면. 여러 정황상 무리를 평정한 침입자일 가능성이 크다. /Jose Carlos De Melo Melo Lucy Genlen Facebook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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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월트디즈니 창사 100주년을 맞아 여러가지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중입니다. 디즈니 만화영화 중에서도 역사를 새로 쓴 획기적인 작품을 이야기할 때 어찌 ‘라이온킹(1994)’을 빼놓을 수 있을까요? 침체와 몰락을 거듭하던 디즈니가 인어공주(1989)로 부활을 알린 뒤 미녀와 야수(1991)와 알라딘(1993)을 잇따라 메가히트시켰고, 그 폭발적 상승세는 라이온킹에서 정점을 찍었죠. 공교롭게도 라이온킹을 정점으로 이후 디즈니의 위세는 한풀 꺾입니다. 내년 개봉 30주년을 맞아서 정말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릴 겁니다. 프리퀼(주인공의 이전 이야기를 담은 속편)로 심바의 아버지 사자왕 무파사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작품도 나온다죠.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라이온킹만큼 철저히 인간의 관점으로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왜곡한 작품도 없다는 점입니다. 음모에 의해 사악한 악당에게 빼앗긴 왕국을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되찾아 마침내 왕위를 되찾는 용감한 사자의 이야기 때문에 모든 새끼 사자들을 심바로, 그 아비사자를 무파사로 바라보면 안됩니다. 실제 사바나의 사자들은 권력욕이 날뛰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악의 화신 스카에 가까우니까요. 실제 사자왕국의 속성을 보여주는 동영상(Jose Carlos De Melo Melo. Lucy Genlen Facebook)으로 먼저 시작합니다.

갈기가 덥수룩한 수사자와 대략 생후 8개월 안팎정도 되어보이는 새끼 사자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라이온킹의 한 장면을 떼어다 실사화해놓은 것 같아요. 자신의 피붙이이자, 사자 왕국을 물려받을 왕세자 심바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대자연의 법칙과 왕조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무파사의 근엄하고 자애로운 모습처럼 보였어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사자가 새끼사자의 가슴팍을 급습합니다. 캥…캥…끄으윽…혈맥을 뚫린 새끼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칩니다. 실처럼 흐릿한 새끼사자의 눈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놈은 가련한 새끼를 놔줄 생각이 없습니다. 방금전까지 내일의 사바나의 제왕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던 새끼가 숨통이 끊기고 혼이 빠져나가며 사체가 되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호주 모나르토 동물원에서 새로 온 수사자와 기존 새끼들이 합사하는 모습. 야생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Monarto Zoo

축 늘어진 몸뚱이를 물고, 놈은 어슬렁거리며 사라집니다. 이 살육은 포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90% 이상입니다. 그저 죽이기 위한 공격이었죠. 놈은 자신이 목숨을 빼앗은 동족 새끼를 대충 내다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짐승의 행동은 섣불리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살점을 찢어내고 파먹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종내에는 재칼이나 산미치광이 같은 최하급 스케빈저들이 이를 마무리할 겁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비참하게 대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카메라는 이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암컷을 비춥니다. 죽은 새끼의 어미였을 공산이 커보여요. 그게 맞다면 가련한 어미는 눈앞에서 제 새끼를 잃어버린 겁니다. 이 비참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약간의 상상을 곁들여서 서사를 붙여봅니다.

동족 새끼를 무참히 살해한 수컷은 며칠전 점령군으로 사자왕국을 침탈한 정복자로 보입니다. 아마도 다른 수컷들과 떠돌이 해적처럼 사바나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자신들의 침탈·정복욕을 극대화시키 알맞는 무리를 발견했을 거예요. 그리고 자신만의 왕조를 구축해오던 늙고 병든 우두머리는 침탈자들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축출됐을 것입니다. 싸움에서 입은 치명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름시름앓다가 하이에나 밥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면, 사자와 가축을 노리는 식인사자로 돌변했을지도 모릅니다.

월트디즈니 계열 여행사인 월트디즈니 트래블 컴퍼니가 파리디즈니랜드 관련 상품을 홍보하면서 제작한 실루엣. 내년 개봉 30주년을 맞는 라이온킹은 디즈니역사를 새로 쓴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Walt Disney Travel Company

우두머리 휘하의 암컷들은 이제 반강적으로 새로운 수컷과 무리를 이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눈엣가시들이 제거됩니다. 바로 축출된 직전 우두머리의 씨를 받아 태어난 새끼들입니다. 왕국을 정복한 침략자들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새끼들부터 가차없이 처단합니다. 이 동영상은 그 와중에 벌어지는 장면이 드물게 포착된 것으로 보여요. 이 과정에서 정의나 윤리 따위는 없습니다. 누가 더 힘세고, 누가 더 포악하고, 누가 더 그악스러운지를 처절한 육탄전으로 겨룹니다. 그 과정에서 합종연횡도 벌어지겠죠. 이 권력투쟁의 사자들의 모습에 정의로운 사자왕 무파사의 모습은 없어요. 권력욕에 불타 갖은 음모를 꾸미는 수많은 스카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자의 삶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가 영아살해(Infanticide)입니다. 라이온킹에서 새끼 사자 심바의 탄생은 심지어 사자 사냥감인 초식동물들까지 참석해야 하는 거룩하고 장엄한 의식으로 그려지지요. 하지만 사바나에서 새끼 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저주이자 천형에 가깝습니다. 야생에서 한배에 태어난 사자가 어른으로 자라날 생존율은 고작 12.5%입니다. 자라는 순간마다 영아살해 위협과 직면해야 하는 숙명입니다.

18세의 나이로 2016년 삶을 마감한 미국 휴스턴 동물원의 수사자 '조너선'. 야생에서 많은 사자들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 /Houston Zoo

가장 일반적인 케이스가 위에 소개했던 점령군 수컷의 범행이에요. 어렵사리 무리를 점령한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혈통을 널리 널리 뿌리려는 본능이 발산합니다. 하지만, 암컷들이 새끼를 기르는동안에는 짝을 지을 준비가 돼있지 않죠. 점령군 수컷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가혹합니다. 새끼를 제거하는 동시에 어미사자의 모성을 함께 박탈하고, 강제로 짝짓기 준비된 암컷으로 돌려놓는 일이죠. 무럭무럭 자라나던 새끼들이 그렇게 흘레 욕구에 눈이 뒤집혀있는 수사자들에게 무참히 물어뜯기며 살해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태어난 새끼들이 빈자리를 메우겠죠. 그들의 목숨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요? 또 호시탐탐 힘센 숫놈들이 패권장악에 나서는순간, 살육전은 반복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드물긴 하지만, 암컷에 의한 영아살해도 발생합니다. 수컷의 경우 혈연관계가 전무한 별개의 개체끼리 발생하는 살육이지요. 반면 암컷의 경우 자신이 기르고 있던 새끼를 물어죽이는 상황이 대다수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무조건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혹한 짐승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암컷이 아마도 제 뱃속으로 낳은 새끼로 추정되는 어린 개체에게 무슨 일을 벌이는지 보여주는 영상(Latest Sightings Facebook)입니다. 매우 잔혹한 서사인만큼 심장이 약하신 분은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이 어린 놈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인으로 병들고 쇠약한 모습이 완연합니다. 그런 몸뚱이를 암사자가 물고 터벅터벅 걷습니다. 여느 암사자처럼 제 새끼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려는 듯 보였어요. 충격적인 장면으로 전환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새끼의 목덜미로 암컷의 입이 깊숙히 파고들더니 섬뜩한 방법으로 몸뚱이를 훼손합니다. 드물게 사람 눈에 포착됐지만, 이런 암컷의 영아살해는 한배에서 낳은 새끼가 모두 죽고 한마리만 남았을 때, 혹은 병들고 가녀린 새끼를 돌봐야 하는 순간 발생합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충격적이고 경악스런 장면이지만, 이 같은 영아 살해는 다음번 짝짓기 타이밍을 좀 더 앞당겨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다시 가혹한 적자생존과 생존투쟁을 벌이면서 더욱 잔혹한 놈들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게 현실 속 사자들의 세상입니다. 스카처럼 냉혹한 권력욕을 갖고, 비열한 음모까지 꾀해야 사자왕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수사자 다섯마리가 나란히 물을 마시고 있다. 야생에서 수사자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를 쫓아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Wikipedia – Nette Pa’trice

기품와 우아함의 상징으로도 인식되는 사자는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는 족속입니다. 덩치가 커다란 초식짐승을 탁월한 협업과 개인기로 쓰러뜨리는 특유의 사냥법만 구사하는 게 아녜요. 몸뚱이가 자기 몸 절반도 안되는 혹멧돼지를 잡겠다며 굴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끄집어낸뒤 돼지 멱따는 소리가 사바나를 쩌렁쩌렁 울리는 동안 그 자리에서 입가에 피를 묻혀가며 산채로 헤쳐먹는 장면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곳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곳, 이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 바로 사자들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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