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 바글…인간 이기심 흐르는 ‘구피천’
인근 반도체공장서 물 유입
기온 0도 날씨에도 미지근
다양한 열대 어종 목격담
유명세에 방생 늘어난 탓
외래종 생태계 교란 우려
경기 이천시 부발역 인근에 있는 죽당천은 전국적인 명소지만 얼핏 보기엔 특별한 점이 없다. 허허벌판에 위치해 주변에 딱히 볼만한 것도, 특별한 즐길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죽당천이 전국에서 찾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는 이 하천의 ‘수온’과 ‘어종’ 때문이다. 하천 인근에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있다. 이 공장의 반도체 공정에서 열을 식히는 등의 용도로 쓰인 물은 정화된 뒤 죽당천으로 흘러든다. 이 때문에 죽당천 수온은 겨울에도 20도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365일 따뜻한 물이 흐르게 된 죽당천에 누군가가 열대 어종인 ‘구피’를 버렸고, 구피는 하천에 정착해 살고 있다. 언제부터 구피가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인터넷 등에서는 2018년부터 ‘죽당천에서 구피를 봤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구피가 살기 시작한 죽당천은 본래 이름보다 ‘구피천’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일 오전 찾은 죽당천에서는 구피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구피는 주로 유속이 약한 곳에 있는 수초를 들추면 나왔다. 꼬리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성체부터 쌀알보다 작은 치어도 있었다. 하천변에는 누군가 두고 간 채집망 등도 보였다. 이날 최저기온은 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웠지만, 손을 넣어 확인한 물속은 가정집 어항 정도로 미지근했다.
죽당천은 그동안 ‘열대어가 사는 신기한 곳’ 정도로만 여겨졌다. 구피 자체는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이 거의 없는 어류로 분류된다. 구피가 살 수 있는 곳도 온수가 공급되는 상류부로 한정돼 있어서 다른 곳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염려도 적었다.
하지만 최근 죽당천을 두고 각종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죽당천에서 구피 이외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목격담이 늘고 있어서다. 환경부 지정 ‘유입주의종’을 발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네이버 카페와 유튜브 등에서는 죽당천에서 흔히 청소물고기로 잘 알려진 ‘플레코’를 비롯해 ‘세일핀몰리’ ‘시클리드’ ‘플래티’ 등 다양한 열대 어종을 봤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튜브 ‘생물도감 TV’는 최근 죽당천에서 ‘마블가재’를 발견했다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환경부가 정한 유입주의종인 마블가재는 ‘단성생식’이 가능해 단 한 마리만 있어도 빠른 속도로 번식할 수 있어 생태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 이런 현상은 죽당천이 열대어가 사는 곳으로 유명해진 뒤부터 일부 사람들에게 ‘열대어 방생장’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죽당천의 수온과 이 하천에 서식하게 된 어종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한다. 송미영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천이 열대어가 살 정도로 따뜻하고, 외래 어종이 서식한다는 것 자체가 생태계 교란이다”라면서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천시 관계자는 “하천법상 생태계 교란종이 아니라면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까지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우선 죽당천 인근에 ‘물고기 방생 금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들어 시민들을 계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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