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얻고도 산재 인정받기까지 수년…나이롱환자 취급 마세요”
분노한 당사자들 규탄 대회
“저희를 ‘나이롱환자(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인 척하는 사람)’로 취급하는 데 화가 납니다. 저희는 나이롱환자가 아니라, 진짜 아픈 것입니다.”
한혜경씨(45)는 19세 때 삼성전자 LCD(현 삼성디스플레이) 기흥공장에 입사해 일하다 악성 뇌종양을 얻었다. LCD 고온 납땜을 하며 납, 플럭스, 이소프로필알코올 등 여러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다 생긴 병이었다. 2005년 10월 수술로 뇌종양을 제거했지만 후유증으로 시력과 보행, 언어에 장애가 생겼다. 한씨는 휠체어를 탄다.
한씨는 2009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한 뒤 10년 만에 이를 인정받았다. 공단은 6차례 한씨의 산재를 불승인했다. 당시만 해도 한씨가 다룬 복잡한 유해물질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자료가 부족했다. 공단이 한씨의 작업현장이 아닌 신축 공장에서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한씨는 2017년 대법원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뇌종양 산재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온 뒤에야 2019년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한씨는 현재 장해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산재 당사자·유족·동료들은 21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산재환자 모욕하는 대통령실 규탄 긴급 증언대회’를 열었다.
최근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국정감사를 기점으로 산재보험 재정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환자들의 요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에 ‘나이롱환자’들이 장기요양을 하며 과도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국감에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심각한 문제”라고 화답했고, 노동부는 국감 직후인 지난 1일부터 근로복지공단 감사에 돌입했다. 대통령실도 “지난 정부의 방치로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 참석자들은 산재 보상을 받는 것 자체가 ‘산 넘어 산’이라고 입을 모았다. 17년째 학교 급식노동자로 일하는 정경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구지부장은 “7년10개월 근무한 분이 폐암 확진을 받았는데도 ‘근무기간이 짧다’며 산재 불승인을 받았다”면서 “개인이 산재를 입증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폐암에 걸린 분은 한 달을 뛰어다니며 동료들이 일하는 모습을 찍고 진술을 받고 근무기간 동안의 메뉴를 받아 분석해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정부·여당의 인식이 산재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산재사고로 화물기사 아버지를 잃은 심성훈씨는 “유족 입장에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남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유족들, 치료를 받는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모욕”이라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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