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등본에 전세계약 의무등록… 전세사기 잡은 볼리비아 [심층기획-주거안정이 민생안정이다]
김나현 2023. 11. 21. 20:04
<3회> 투명한 거래, 투기 과열 막는다
집값 40% 보증금, 통상 2∼4년 계약
만기 시 전세금 반환 등 한국과 유사
현지 등기부등본 ‘알로디알’ 큰 역할
상환 우선순위·이전계약 등 다 기록
등기소 자체도 계약서류 접수되면
대출·담보내역 총검토 ‘문지기 역할’
“사기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
산타크루스(볼리비아)=글·사진 김나현 기자
집값 40% 보증금, 통상 2∼4년 계약
만기 시 전세금 반환 등 한국과 유사
현지 등기부등본 ‘알로디알’ 큰 역할
상환 우선순위·이전계약 등 다 기록
등기소 자체도 계약서류 접수되면
대출·담보내역 총검토 ‘문지기 역할’
“사기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
“이 서류가 X-ray 같은 거죠. 임대인과 매물 정보가 투명하게 나오니 전세사기도 많이 줄었어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남아메리카 대륙 중부에 위치한 볼리비아의 경제 중심 도시 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산타크루스)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 비트리스 모레노는 ‘알로디알(Alodial)’이라는 명칭의 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한국으로 치면 ‘부동산 등기부등본’이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전세계약을 맺으면 법무부 등기관리소에 의무적으로 계약 사항을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등기부등본으로 이전 세입자들의 전세계약 시점·기간·금액부터 임대인이 집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 시점·내역과 그의 채무 이력까지 볼 수 있다. 통상 등기부등본에 전세권 설정을 하지 않는 한국과는 달랐다.
모레노는 “등기부등본에 전세계약 사항을 의무 등록하기 전에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기가 잦았다”며 “지금은 매물에 어떤 대출이 껴있는지, 상환 우선순위가 어떤지, 이전 계약들은 어땠는지 모두 알고 계약을 하니 사기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정보 투명공개, 사기 예방
흔히 전세제도를 우리나라 고유의 주거 제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볼리비아에도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라는 이름의 전세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문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부동산을 사용하는 것에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의미다. 볼리비아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11배 규모지만, 인구는 한국의 4분의 1 수준인 1238만여명이 살고 있다.
21일 국내외 취재를 종합해보면 볼리비아의 전세 ‘안티크레티코’는 한국의 전세와 구조는 동일했다. 하지만 전세금 미반환 사태를 이르는 ‘전세사기’와 여전히 사투를 벌이는 한국과 달리, 볼리비아는 전세사기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지난달 10∼13일(현지시간) 볼리비아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볼리비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거래하는 암시장이 크게 발달해 직업이나 잔고 등이 불분명한 경우 공식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다. 이에 임대인들은 사업이나 투자를 위해 큰돈이 필요한 경우 집값의 40% 수준으로 전세를 내놓는다.
임대인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거액의 전세금으로 별도의 수익을 창출하고 통상 2∼4년의 계약 기간 종료 후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전세가 일종의 사금융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안티크레티코’는 어떻게 ‘안심전세’가 될 수 있었을까.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오후 산타크루스 시내에서 각각 만난 부동산 중개업체 대표 에스테반 안토니오와 부동산 개발업체 법무팀장 마르코스 라모스 변호사는 한목소리로 “등기부등본의 투명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안토니오는 “우리 회사에는 40명의 중개인이 있는데, 모두 이 문서(등기부등본)를 절대 신뢰한다”며 “이 문서를 기반으로 매물에 대출이 껴있는지 확인하고, 과도한 은행 대출이 잡혀 있으면 전세계약을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모스 변호사도 “전세제도의 안전성은 등기부등본 등록 시스템이 자리 잡은 2006년 전과 후로 나뉜다”며 “등기부등본에 전세계약 사항이 세세하게 모두 기록되면서 전세계약이 안전해졌다”고 짚었다.
◆등기관리소 직접 가보니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오전 찾은 산타크루스 도심부의 법무부 등기관리소 ‘데레초레알(Derecho Real)’에는 등기부등본을 떼러 왔거나 임대차 계약을 등록하러 온 이들로 북적였다. 법무부 입구에는 ‘신이시여, 이곳에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이들에게 빛을 내려 주소서’라고 정갈히 적힌 글자가 빛났다. 등기부등본 신청·등록 장소인 2층 창구마다 직원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며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는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임대인들도 임차인이 법무부의 등기관리소에 들러 등기부등본을 조회하는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인식했다. 부동산 대지분양도 맡은 라모스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전세계약 전, 임대인은 임차인이 등기관리소에 들러 매물의 역사를 확인하고 계약하도록 허락한다”며 “만약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등본에 등록한 순서대로 상환 우선순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임차인들은 계약이 끝나면 (등본에) 등록을 하러 간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법무부 등기관리관 하레린 바르가스는 “전세계약 서류가 접수된다고 바로 등록되는 게 아니라, 우리(등기관리관)가 대출, 담보내역 등을 총괄 검토하고 세금납부 여부도 확인한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법무부 등기관리소 직원들이 전세계약 사항에 대해 누락된 서류나 계약상 미비점을 최종 확인해주는 문지기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바르가스는 “전세계약 사항을 의무적으로 등록하기 전에는 한 임대인이 집을 7명에게 전세 놓는 사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투명성이 확보됐다”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볼리비아의 전세제도가 임대인과 임차인 간 투명한 정보 공유를 기반으로 ‘안심전세’로 거듭났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전세제도를 연구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한국주택학회장)은 “전세계약이 등기부등본에 의무 등록되는 게 부럽다”며 “볼리비아의 경우 다가구주택 세입자가 등기부등본만 봐도 다른 가구의 전세계약 사항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확정일자만 받는 것과는 수준이 다른 판단자료”라고 평가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산타크루스(볼리비아)=글·사진 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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