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땡! 대통령 해외순방 첫 리포트로 올라온 KBS 뉴스
사회적 논란 이슈 불거져도 대통령 순방 앞세워…행정전산망 마비, 주52시간제 등 타사 대비 '뒷전'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정권 낙하산' 의혹을 받아온 박민 KBS 사장이 취임한 이후 KBS 메인 뉴스프로그램인 '뉴스9'도 이전과는 다른 뉴스의 시작을 선언했다. 과거 '9시 종이 땡하고 울리면 전두환 대통령 동정으로 뉴스가 시작됐다'는 뜻의 '땡전뉴스'에 빗대어, 지금의 KBS 뉴스가 '땡윤뉴스'가 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KBS '뉴스9'을 뜯어봤다.
박민 사장이 취임한 첫 이틀, 앵커가 교체된 '뉴스9'는 박 사장 입장을 대변하고 재생산하는 창구가 됐다. 박 사장이 취임사에서 “KBS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주장한 13일, 이날부터 뉴스9 진행을 맡게 된 박장범 앵커가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흔들었던 정파성 논란을 극복하고 앞으로 공영성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반성문으로 뉴스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박 사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주로 여권이 비판해온 보도 4건을 '불공정 보도'로 규정한 14일엔, 뉴스9 앵커도 해당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사과했다. 박 앵커가 읽었지만 기사를 누가 썼는지는 공개되지 않은 이 보도를 두고 “보도 자체를 사장이 주문했는지 지시가 있었는지 의심될 정도”라면서 “이례적 9시 뉴스 사유화”라는 KBS 기자협회 비판을 불렀다.
전국 행정전산망 마비 혼란에…대통령 해외순방 '톱'
그리고 지난 17일 전국민이 혼란을 겪은 초유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를 계기로 '뉴스9가 땡윤뉴스가 됐다'는 비판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당시 시·군·구를 막론한 행정 기관에서 기본적 민원 서류 발급도 되지 않고, 정부는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 지상파·종편 등 주요 방송사 메인 뉴스 모두 정부의 책임과 시스템의 취약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KBS 뉴스9는 시작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APEC(아시아·태평양 정상회의) 참석 등에 집중했다. △APEC서 한일·한미일 정상 회동…한중 회담도 열릴까? △중·일 '오염수' 입장 차 속 '대화 해결' 합의 △바이든 “미-중 관계 안정이 세계 이익”…후속 대응 본격화 등의 리포트가 이어진 것이다. 이어진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보도는 '민원인 불편'이 있었다는 리포트, 행정안전부 설명을 전하는 기자 출연 등에 그쳤다.
이후로도 뉴스9는 다소 '튀는' 뉴스를 이어갔다. 행정전산망이 사흘 만에 복구된 19일, 행안부는 네트워크 장비에 이상이 있었다면서도 문제 발생 원인은 밝히지 못했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는 첫 세 꼭지, SBS 8뉴스는 첫 두 꼭지를 할애해 행안부 해명의 한계를 지적했다. 같은 날 '뉴스9'는 △북한 정찰위성 발사 사실상 임박…신원식 “발사 시 9.19 합의 효력정지 논의” △“북한, 러시아에 컨테이너 3,000개 보내”…우리 군 대책은? △북중 화물열차 운행 절반 축소…北 열차 화물칸 부족 때문? 등에 이어 네 번째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이튿날인 20일에도 정부가 근본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뉴스9 첫 번째 리포트엔 <사흘간 마비됐던 행정전산망 재개…“원인 신속 분석”>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네트워크 장비 장애의 상세 원인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분석해서 국민 여러분께 소상히 밝혀드리도록 하겠다”는 이상민 행안부장 장관 발언을 인용한 내용이다. 뉴스데스크 <오류 원인 모르는 행안부‥"언제 또 마비될지 걱정”>, 뉴스8 <사회"곧 복구"라는 말만 되풀이…무색해져버린 '디지털 정부'> 등의 관련 보도 제목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이날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3차 방류를 종료하고 내년 초에 4차 방류를 진행한다는 소식은 '뉴스9'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 택지공급, 주52시간제 등 뉴스 배치 및 논조 온도차
타 방송사와 온도차가 드러난 또 다른 사례로 정부의 택지 공급 계획 관련 보도가 있다. 1기 신도시 등 오래된 택지의 재건축 및 재개발 규제 완화법이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15일 8만 가구를 지을 수 있는 신규 택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일이다. 뉴스데스크는 첫 네 꼭지에서 해당 발표와 정치권의 '메가 시티' 논의, 시장 반응 및 총선을 앞둔 속도전 우려 등을 전했고, 8뉴스는 첫 두 꼭지에서 정부 발표와 형평성 논란을 다뤘다. 뉴스9는 '미국 물가지표' '글로벌 증시'에 이어 3번째로 배치한 리포트 <구리·청주·제주에 신규 택지 8만 호 공급…“지방 부동산 경기 부양에 초점”>에서 정부 발표 내용을 전했다.
주52시간제를 유지하되 일부 업종에 한해 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던 13일의 경우, 뉴스9는 한미 양국간 안보 이슈를 '톱' 아이템으로 띄웠다. 근로시간 개편안 뉴스는 정부가 한 발 물러섰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3~5번째 순서에 배치했다. 뉴스데스크와 8뉴스는 모두 1~2번째 리포트에서 정부 방침에 대한 우려와 노사 입장을 다뤘다.
뉴스 배치의 순서 면에선 윤 대통령 및 주변인물과 관련된 보도들도 눈에 띈다. 행정안전망 마비 사태에 대한 행안부 해명 문제가 지적되던 19일, 타 지상파와 달리 이 사태에 비중을 두지 않았던 '뉴스9'는 윤 대통령이 다음날 영국 및 프랑스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는 소식을 5번째로 전했다. 뉴스데스크는 12번째, 8뉴스는 17번째로 전한 뉴스다.
윤 대통령 장모인 최은순씨가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징역 1년이 확정된 사안의 경우 그 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16일 뉴스데스크는 첫 두 꼭지, 8뉴스는 11번째 꼭지로 소화한 내용이다. 뉴스9는 뉴스 후반부인 17번째 순서에 관련 리포트(대통령 장모 최은순 징역 1년 확정…보석 청구도 기각)를 배치했다.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명수 합참의장 후보자에 대해 북한 미사일 도발 당시 주식거래 및 골프, 자녀 학교폭력 논란 등이 불거진 사안도 뉴스9에서 후순위(17번째)로 밀렸다. 뉴스데스크는 6~7번째, 8뉴스는 3~4번째 순서로 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연이은 검증 실패 문제 등을 연이어 지적한 것과 대비된다.
이 같은 뉴스9를 두고 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KBS 뉴스9를 보니 '땡윤뉴스'의 시대가 도래해버렸다”며 “정권의 낙하산 박민이 취임하기 전과 후, 하나의 변수만 작용했을 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익명을 요청한 KBS 기자는 21일 “우리는 언제나 정파적인 비판을 받는다. 지금은 '땡윤뉴스'라 하지만 민주당 뉴스라는 비판도 받았다”며 “늘상 있는 굴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이 큰 뉴스 메이커인 것은 맞지만 큐시트의 변화가 너무 뚜렷하게 대비된다”며 “평기자들은 취재나 제작 자율성이 위축될까봐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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